[ZOOM IN] 되돌아보는 기해년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12-30 20: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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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기해년 한 해의 끝자락에 선 마음은 괜스레 분주하고 어수선해진다. 국회에서 여·야 정치인이 좌충우돌하며 덕지덕지 오점을 남긴 궤적을 되짚기도 하다 보니 '정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고 또 무엇에 쓰이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정치인들에 관한 비관론자가 되기 쉽다.

구조나 이념이란 말이 배제된 정치 세계 해석은 지리멸렬한 ‘미시’ 이론의 진창을 허덕이는 느낌을 준다. 여당과 들러리 야당들끼리 합의는 새로운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야합의 딴 이름이 되었으며 정쟁(政爭)은 처음부터 합의점을 포기한 '진흙탕 개싸움'을 더 자주 닮아 갔다.

세상은 멀쩡한데 정치는 가는 데까지 간 말세다.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 처리해야 할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집단들. 민생을 챙기는 척하며, 정작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 없고, 자기네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미쳐있는 기생충 집단들. 그래 한 가지만 물어보자. 당신들이 눈이 뒤집혀 통과시키겠다는 4+1선거법이 도대체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설명해 좀 봐라." 요즘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글이 있어 퍼 온 내용이다.

모든 것이 데모와 시위로 통하는 세상.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서 뜻대로 안 되었다고 고소, 고발, 삭발까지 하는 극단적 선택과 대규모 군중집회 등으로 정치가 국회가 아닌 거리에서 헤매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 낡은 유물이 된 듯, 마치 정치를 누가 더 못하나를 갖고 경쟁하고 있다. 국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는 중대한 시기에 우리끼리 사분오열되며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하니 볼썽사나운 것을 바라보는 국민은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헌정사 초유 제1야당을 빼고 선거법을 강행처리, 의회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국회에서 통과한 선거법 형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 게리맨더링 선거법으로 여당은 제1야당이 배제한 채 2중대 야당들과 모의해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사표(死票) 방지와 지역주의 완화 차원의 '선거 개혁'이란 명분은 오간 데 없이 저잣거리식의 흥정을 거치면서 이리 찢고 저리 붙인 누더기 괴물 같은 형태로 변질했다. 누가 보아도 이 법은 현 정권 실정에 대한 심판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법이다.

선거는 민심을 얻어서가 아니라 제도를 바꿔 이기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선거가 아니다. 여당과 군소 정당의 모임인 4+1협의체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전체 정원에 각 당의 득표율을 곱해서 각 당 기준 의석을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 수를 빼고 남는 수의 절반만큼을 비례대표로 당선 시기는 제도로 지역구 당선자를 많이 낼수록 비례대표는 적게 가져가는 구조다. 언뜻 보기에는 사표를 방지하고 국민의 뜻을 반영한다는 그럴듯한 명분보다 군소 정당들의 의석수 나누어 가지기의 신 게리맨더링 제도로 꼼수 선거법이다.

현행 소선거구제 선거법은 1988년 여·야 충분한 논의와 합의로 만들어졌기에 30년이 지나도록 그 골격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법 개정은 여당이 사활을 건 공수처법 처리 미끼와 군소 정당들의 잇속 챙기기 흥정의 산물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가 있는 군소정당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생계형 정치인으로 전락된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 여당 2중대를 자처한 것이다. 집권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맘대로 선거룰을 정하는 건 군사독재 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회의원 선출 방식의 선거법도 연동률 캡, 석패율제, 이중등록제 등으로 칠갑해 뭐가 뭔지를 알아먹기가 어렵다. 오죽 어려웠으면 정의당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국민들은 복잡한 것을 알 필요가 없이 투표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한다."라고 했겠는가. 그냥 들러리 당끼리 국회의원 나눠 먹기라 말하면 쉽게 알아먹을 수 있을 텐데...

정치인들에게는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전통이라고 이름해도 좋은 변형된 출세주의의 전통이 있다. 곁으로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 현실 정치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현실 정치 제도에 제법 따가운 비판도 가하지만 내심으로 부르는 노래는 언제나 사미인곡이다. 이번 여당과 군소정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 안건 상정과정에서 중립의무를 지켜야 할 국회의장은 여당 속의 야당이 되겠다는 평소 말과는 달리 오히려 한술 더 떠 마치 군사 작전 사령관처럼 안건을 상정, 의사봉을 쳐 통과를 시켰다. 이는 자신 지역구에 아들 국회의원 세습하는 것과 맞물려 있기에 사미인곡을 노골적으로 부르는 격이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사미인곡 노래를 부르기도 마찬가지다. 직분이 무엇인지를 모른 체 당론을 정하면 따르기에 협상의 정치는 실종된 체 쪽수에 의해 모든 것이 통과되는 불합리한 행태가 만성화되고 있다. 이런 국회라면 차라리 해산시키는 게 더 나을 법도 하다. 당리당략이 우선이고 국민은 뒷전인 국회, 청와대 거수기 노릇만 하는 의원들에게 민의의 대변자니, 국민의 대표자란 말을 쓸 필요조차 없으며 오직 청와대만 향하고 있다. 금배지를 달고 행하는 일이 부끄럽지 아니한 걸 보면 대단히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이다.

기해년 겪은 많은 사건과 모든 정치가 역사라는 두 글자로 묻히고 있다. 분명 세상은 발전하고 점점 좋아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정치는 후퇴하며 뒤로 가고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다툼의 정치사를 어떻게 평가할까?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역사에 죄를 짓는 '최악의 해(Annus horribilis)'가 도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한시름에 기해년을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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