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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수 시인 "문학판이 곪을 대로 곪아간다고 여기저기서 문인들이 술렁댄다. 요즘의 문학은 소통의 부재와 왜곡으로 신음하는 것이 사실이다" |
[정성수 칼럼니스트]
-패거리 해악은 진입 장벽을 높이는 배타성과 폐쇄성
-학연과 지연으로 묶어서 상습적으로 ‘마녀사냥 자행’
-모든 패거리들 ‘동일 이념과 동일한 이해’ 관계 공유
-감히 맞장을 뜨자고 나섰다가는 십중팔구 케오패당해
-‘음해와 매도’ 폭력, 갑들의 절대 권력의 힘은 핵폭탄
-문학상이 건강하려면 고유한 색깔확보와 객관적 심사
● ‘패거리’ 어울려 다니는 무리
속어 ‘패거리’는 같이 어울려 다니는 무리를 말한다. 부정적 의식이 짙게 깔린 ‘패거리’는 끼리끼리 뭉치고 서로 봐 주면서 날 뛰는 무소불위다. 뿐만 아니라 혼란을 야기하고 질서를 무시함으로서 문학판은 물론 사회를 불안스럽게 한다.
패거리는 나약한 개인들이 집단을 만들어 그 안에서 무력감을 달래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 자신의 위안이자 방어 자세다. 같은 목표를 위해 학연과 지연으로 뭉쳐 한 학교를 졸업한 동기나 선후배로,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굳건하게 뭉쳐 서로에게 기대면서 상부상조한다. 패거리의 해악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배타성과 폐쇄성에 있다. 패거리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수혜자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 상황이 뒤집혀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생기는 패거리는 본래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패거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이기적인 생각들이 팽배함으로서 부패한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잘못된 것을 정당화하고 서로 간에 합리화하면서 급기야는 뻔뻔해지기도 한다.
패거리를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획일성을 강요하고 명령과 복종을 요구해 창조성이나 다양성을 말살시킨다. 개구리 귀는 같은 종(種)이 내는 울음소리만 듣고 입은 같은 소리만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다. 마찬가지로 패거리의 귀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소리만 들리고, 입은 유리한 말만 한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육중한 오토바이들이 패거리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 자체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핸들을 잡고 머플러를 날리며,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고 달린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윗옷을 훌러덩 벗은 채 양팔이나 등에 새긴 문신을 자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떼를 지어 질주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요즘 문인들 사이에서도 문단이니 협회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만들어 정치판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사장이니 회장이니 하면서 감투 쓰기에 혈안이 되었다. 원래 감투라는 것은 쓰고 있는 동안 폼 잡고 목에 힘주기 딱이다. 감투에는 주와 색이 따르기 마련이다.
문학 패권을 잡기 위해 술판을 벌리면서 몇몇이 헤게모니(Hegemony)를 쥐고 문학판을 흔든다. 거기에다가 패거리를 조성하고 상 매매를 당연시하기도 한다. 배금주의에 빠져 문인으로나 지성인으로서 갖추어야할 덕목을 스스로 버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함량미달 작가들은 수상을 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쌓기 위해서 저명하거나 인지도가 높은 작가와 친분 쌓기와 끈적이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뿐이 아니다. 창립 멤버라는 이름으로, 동향인이라는 이유로 학연과 지연으로 묶어서 패거리를 만들어 상습적으로 마녀사냥을 자행하기도 한다.
● 문학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쌍방 폭력
문학판이 곪을 대로 곪아간다고 여기저기서 문인들이 술렁댄다. 요즘의 문학은 소통의 부재와 왜곡으로 신음하는 것이 사실이다. 소통의 부재는 패거리 집단의 결과이고, 왜곡은 칼자루를 쥔 자들의 힘이자 특권이다. 그것은 문학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문학인들의 폭력이 초래한 결과다.
뿐만 아니라 패거리들은 자기 영역 수호를 위해서 거부하기, 밀어내기를 서슴없이 자행한다. 눈에 거슬리는 문인들은 거만하가거니 못됐다느니 하며 난도질을 한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반경환은 문단 패거리들이나 그런 단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독설을 퍼부어댄다.
‘모든 패거리들은 동일한 이념과 동일한 이해 관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 동일한 이념과 그 동일한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어떠한 나쁜 짓도 서슴없이 자행하게 된다. 사적인 개인으로는 모두가 착하고 선량해 보이지만, 집단의 패거리로서의 그들은 마치 제 정신을 빼어놓고 살아가는 미치광이들과도 똑같다. (반경환의 '명시감상 1'에서)
그에 의하면 ‘사적으로 만나면 대립할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나 문단의 일원으로서 보이는 태도를 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문학판이 썩어 가는 것은 바로 문학을 권력의 수단으로 알고 패거리를 만들어 저희들끼리 상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에 빠지면 위아래도 보이지 않는다.
● 문학도 약자인 을에게 부당 행위 ‘성행’
갑을 관계에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 갑질이다. 땅콩회항에서 시작하여 모 병원 수술실에서 간호사의 실수에 폭언과 폭행을 한 흉부외과 전문의, 백화점 판매사원이나 알바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언행, S대 수리과학부 교수의 직위를 이용한 제자와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 등 이른바 갑질 논란은 갑의 횡포가 끊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문학판에도 갑질은 있다. 창립멤버 또는 원로라 하여 후배들에게 훈계성이나 지시성 말을 서슴지 않는 옹(翁)들이 많다. 그들은 대접받기를 원한다. 옹들에게 밉보이거나 눈 밖에 나면 될 일도 안 된다. 갑질을 일삼는 자들은 물귀신 작전을 쓰기도 한다. 그들에게 감히 맞장을 뜨자고 나섰다가는 십중팔구 케오패 당하기 마련이다. 갑들의 절대 권력의 힘은 핵폭탄에 버금간다.
그뿐이 아니다. 문학판이 썩은 것은 문학을 권력의 수단으로 알고 끼리끼리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상을 주고받고, 출판기념회를 열어주는 것은 말뚝에 목줄이 매인 개의 행동반경 정도다. 이런 일 역시 갑질이다.
● ‘통탄’ 타락한 문학상 안타깝기 그지없어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학상이 난립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문단에서 행세하기 위해서 패거리들이 문학지 발간하고 그 지면을 이용해 문학상을 만들어 끼리끼리 나누어 갖기 시작했다.
문학지를 가졌다는 것은 곧 문단권력을 가진 것이 되고 문인들은 문학상 하나쯤은 받아야 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문학상의 기본인 문학성이 있는 작품 발표나 활발한 문학 활동이 아니라 어떤 줄을 잡았느냐 어느 줄에 섰느냐 패거리와 어떤 인맥을 쌓았느냐가 문학상 수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패거리는 문학상 수상자 선정에도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끼리끼리 상을 주고 칭찬한다. 자기들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패거리가 아니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수상권 안에 든 수준 높은 작품이나 작가일지라도 모른 척하거나 배척한다. 자기 패거리 작품이 보잘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덮어놓고 칭찬이고 축하하기 바쁘다. 수상자 발표를 보면 패거리들의 형님 아니면 아우다.
문학상은 수준 높은 작품이나 작가를 선별하여 칭찬함으로써 창작을 후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나 주관사들은 문학적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문학상은 문학권력의 생산과 분배와 소비 과정이 압축적으로 나타난 문학 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을 문단에서 주류를 이루는 보수적 문인들이 나눠 먹기식으로 시상과 수상을 하면서 문단의 패권을 장악한다.
문학상이 건전하고 건강하려면 고유한 색깔 확보와 객관적인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관사와 심사위원들의 공정한 심사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패거리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고집은 견고한 문학상 정착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타락한 문학상은 일차적으로 권위주의로 볼 수 있다. 이런 일이야말로 통탄할 문학적 현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 감성과 지성 사라져… 마녀사냥까지 자행
언제부터인가 문학인들이 문단이나 협회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조직을 만들어 정치판을 연상시키는 해괴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패거리를 형성했다. 문단 원로나 신인들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문인으로서 부끄러운 음해와 매도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문인으로서 갖추어야할 덕목들을 스스로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함량과 자질 미달의 문인들이 문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도 모자라 시중 잡배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어떤 문인은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 심지어 마녀사냥까지 자행하는 패거리도 있다.
요즘 문인들의 수난 시대다. 어떤 웹툰 작가는 성매매 알선으로, 어떤 소설가는 성추행으로, 어떤 시인은 성폭력으로 또 성추문으로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야말로 감성과 지성을 잃은 야수로 전락해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있다.
문인들의 이런 행위들은 과거에도 암묵적으로 자행되어 오던 일들이 이제 드러난 것일 뿐 새롭지 않다는 것이 문단의 반응이라고 한다. 어린 제자들이나 문학에 뜻을 둔 습작생 또는 신인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일들은 부끄러움을 넘어서 범죄 행위다.
문제가 된 어떤 문인은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내세워 협박의 무기로 사용하거나, 상대방의 동정심을 유발하였다고도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인간의 선의를 배반한 죄가 크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문단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을 해도 독자들은 시큰둥하다. 문단의 서글픈 단면이다.
요즘 문단은 감성과 지성은 사라지고 문단에 빌붙어 노래하는 기생과 몸을 파는 여인과 상업적 글을 쓰는 장사꾼으로 전락해 한국문학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자조적인 말들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특히 문인은 외로움을 더 많이 탄다. 글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고독한 일이다. 물론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문인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지기도 하고 문학의 저변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억울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이 있다. 문제는 누구나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도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문제가 된 경우도 분명히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문인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한 건을 올리면서 자아 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문인으로 마땅한 소명의식을 버린 채 패거리를 만들어 저질 문인들을 양산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례식 비평을 한다. 자만에 빠지는 풍토를 정화해야 문학은 살아남는다.
●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은 엄연한 갑질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2014~2015년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명단은 약 1만여 명으로 현 정부에 비협조적인 문화계 인사들이다. 이들을 정부 지원 프로그램 참여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데에 사용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인물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진위를 알 수 없다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2016년 10월경 다시 이슈화되다.
한국일보는 16년 10월 12일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각계인사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 보낸 구체적 명단을 공개했다.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5월 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것이야말로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의 윗선으로 꼽히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직권남용이자 갑질이다.
● 나가는 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먹을 가까이 하면 먹물을 뒤집어쓰거나 옷을 더럽힌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들에게 물들기 십상이니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와 음해가 무성한 문학판에 기생하면서 추천, 당선, 수상 등에 목을 매는 속물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술과 밥을 사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로 끈끈한 인간관계와 각별한 유대를 맺으면 이득이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속 보이는 처세다. 진정한 문학인은 작품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좀 부족하더라도 투철한 문학 정신으로 작품을 쓰고 아직도 신인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작품이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으스대면서 문학단체 이사장이니, 협회장이니, 사무국장이니 하며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까지 우습게 보인다. 꼴불견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야박한 말일지 몰라도 작품을 제대로 쓸 의지조차 없다면 미련 없이 문학판을 떠나야 한다.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집어 치우던지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권과 시류에 편승하는 이기적 패거리 문학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시류에 가려져서 좋은 작품들이 진가를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게 요즘이다. 고루한 현실에서 우매함이 난무하지만 훌륭한 글이나 뛰어난 작품은 진흙 속에 묻혔다가 나중에 발굴되는 보석처럼 언젠가는 가치가 드러나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인간들이 모인 곳에 패거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패거리를 공동체 의식 또는 인간성 회복이라며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패거리가 꼭 잘못 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것은 본래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거리가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면 그때부터 부정과 부패가 시작된다.
잘못돼 가는 줄 알면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며 서로가 눈을 감아주는 것이 패거리들의 큰 실수다. 끝내는 뻔뻔해져도 뻔뻔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패거리는 명령과 복종이 있을 뿐 획일성이 주가 되고 다양성과 창조성을 말살시킬 뿐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학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패거리가 문학판을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 정성수 프로필 ■
• 서울신문으로 문단 데뷔
• 저서 : 시집/공든 탑. 동시집/첫꽃. 장편동화/폐암 걸린 호랑이 외 다수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외 다수
• 현) 전라북도교육문화회관 시수필전담강사. MRA이사. 향촌문학회장. 사단법인미래다문화발전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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