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도화 속도 여전히 더뎌...투자 확대 속 리스크 관리·제도 정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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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제공) |
[일요주간=임태경 기자] 가상자산이 국제 금융 질서의 재편을 이끄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금융 주권 확보를 위한 제도 정비와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 4일 ‘가상화폐, 금융의 新 패러다임 전환인가’ 세미나에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을 중심으로 가상자산의 제도화, 투자 가치, 글로벌 파급력 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미국의 정책 변화, 신흥국의 대응, 스테이블 코인의 실물시장 영향력 확대 등 주요 현안이 도마에 올랐으며, 한국의 제도 정비 지연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 美, ‘디지털 패권’ 강화·비트코인 전략자산화 본격화
신영증권 임민호 연구원은 비트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디지털 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국가전략 자산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2024년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이어,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이 비트코인 전략자산 비축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정책적 뒷받침을 강화했다. 지니어스(GENIUS) 법안 등 스테이블 코인 관련 소비자보호와 금융시스템 편입 관련 법안도 의회 표결을 앞두고 있다.
특히 뉴햄프셔주는 주 정부 준비금의 5%를 비트코인으로 보유하기로 결정했고, 미국 통화감독청(OCC)도 은행의 가상자산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 이런 움직임은 디지털 자산을 ‘국가경쟁력’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전략적 접근이라는 게 임민호 연구원의 분석이다.
임민호 연구원은 “미국뿐만 아니라 신흥국들도 가상자산을 외환보유고 및 자산 다변화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미 국채에 집중됐던 글로벌 자산 순환 구조가 보호무역주의와 재정불안 등으로 약화되면서, 가상자산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IMF에 따르면 정치적 불안정성과 자국 통화가치 하락이 클수록 가상자산의 보유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일부 신흥국에서는 인구 대비 비트코인 보유율이 선진국을 웃돌고 있다.
비트코인은 금과 유사하게 공급 한계(2100만 개), 탈중앙화 구조, 희소성 등을 바탕으로 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특히 전통 포트폴리오(주식 60%·채권 40%)에 비트코인을 5% 혼합할 경우 수익률이 2% 포인트 상승하며, 변동성 대비 수익률인 샤프지수도 다른 자산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연구원은 “그러나 적정 가치 평가방식의 부재, 양자컴퓨터에 의한 보안 리스크, 중국 중심의 채굴장비 공급망 불안 등은 여전히 리스크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 스테이블 코인, 가상자산의 기축통화로 부상
경희대 김상래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이 가상자산 시장의 결제수단이자 실물금융에 영향을 미치는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은 전체 가상자산의 7% 수준이지만, 거래소 내 결제 수단으로는 필수적이다.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테더(USDT)는 담보 내 미국 국채 비중을 66%까지 확대하면서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초당 거래 건수가 SWIFT보다 적더라도, 대량 송금에는 오히려 경쟁력이 크다. 페이팔 등 민간 기업들은 자사 스테이블 코인 보유자에게 4% 수준의 이자를 제공하면서 유인책을 강화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담보로 보유 중인 미 국채가 약 1300억 달러에 달하면서, 대규모 발행 시 국채 수요 증가로 금리가 변동하는 현상도 감지됐다. 특히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파급효과는 비선형적으로 확대될 수 있어, 실물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게 김상래 교수의 설명이다.
김상래 교수는 “그러나 발행사 신뢰 훼손, 코인런, 외화 유출 등 부작용도 도마에 올랐다”며 “특히 2022년 루나 사태처럼 갑작스러운 신뢰 붕괴는 가상자산은 물론, 연계된 실물시장까지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한국, 입법 지연...원화 스테이블 코인 논의 시급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박사는 한국의 가상자산 관련 제도 정비가 미국, 유럽에 비해 현저히 지연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투자와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토큰형 증권(STO)을 제도화했지만, 여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2단계 법안 논의 중이다.
김갑래 박사는 “발행자격, 공시의무, 투자자 보호 기준 등을 포함하는 체계적인 입법이 절실하다”며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도 강조하면서 “현재 가상자산 송금에서 달러 스테이블 코인 점유율이 98% 이상인 상황에서, 통화주권 확보 및 외환통제 유연성을 위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이종섭 교수, 조진석 한국디지털에셋 대표 등은 패널토론을 통해 “가상자산은 글로벌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며 육성과 규제의 균형을 강조했다.
이들은 규제의 명확성과 자율성 보장을 통해 시장의 예측가능성과 투자신뢰를 제고해야 하며, 규제 샌드박스 및 민간 협회 주도의 자율규제도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가상자산이 이제 단순한 투기성 자산을 넘어 국가정책·실물금융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로 진입했다. 그러나 제도적 공백과 신뢰 리스크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가상자산을 둘러싼 국내외 정책과 제도의 방향성에 따라, 미래 금융 패러다임의 향방도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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