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은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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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시인은 선비이자 지사의 길을 걷는 동안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따뜻한 상차림으로 그를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상상해 봅니다. 고봉의 하얀 쌀밥과 시원한 오이냉국, 큰 조기 한 마리와 아삭한 겉절이. 하루만이라도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처럼 빳빳하게 풀 먹인 모시 이불을 준비하고 싶은 여름입니다.
나라를 잃어본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어요. "나라를 잃으면 안 된다. 나라가 없으면 서럽다"라고요. 직접 겪어본 서러움에서 나온 애국심이었지요. 그런데 언제쯤이면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는 여름이 올까요. 시 속의 그 하얀 돛단배는 아직도 멀리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청포도」를 통해 우리에게 기다림과 맞이함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으니까요. 그 믿음이 있었기에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겠지요.
우리 삶은 크고 작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천천히 우러나는 차의 맛처럼, 사랑도, 꿈도, 성취감도 모두 기다림에서 깊어지지요. 우리 8월만큼은 소중한 사람을 맞듯 이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맞아보면 어떨까요. 언젠가는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는 그런 따뜻한 여름이 오기를 꿈꾸면서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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