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읍 시골 깡촌
아버지 돌아가시고 농사지을 남자가 없었어요
어느 날 동네 반장이 나에게,
공장에 일하러 가야 한다
안 가면 재산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추방시키겠다고 협박했지요
시집가야 하는데 동네에 남자가 없었어요
남자는 모두 징용으로 끌려가버렸지요
제 나이 열네 살이었어요
끌려가서 스물한 살까지 노예로 살았어요
중국 광저우,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콕, 싱가포르 끌려다니는 데는 이유가 없었어요
그냥 트럭에 싣고 갈 뿐이었어요
제가 힘없는 농민의, 힘없고 어린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각해 보세요
열네 살이 잡혀가서 낯선 나라, 낯선 군인들에게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당하는 고통을 상상해 보세요
그곳이 공장이라구요?
제가 열네 살인데
제가 스물한 살까지 팔 년의 세월 동안
군인의 노예로 살았는데
그곳을 공장이라고 믿으라고 하는 건가요?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 자료로도 소개된 이 시에는 소녀들이 겪은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국경을 넘는다는 건 본래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일이지요. 하지만 강제로 끌려간 그 이동에는 도착지라 부를 곳이 없었습니다. 여러 나라로 옮겨지는 행렬 속에서 그녀는 끝내 어느 땅에도 속하지 못했으니까요.
시는 "생각해 보세요", "상상해 보세요"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열네 살 소녀가 낯선 군인들 앞에 놓이는 장면, 시는 이를 직접 그리지 않지요. 대신 그 장면은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완성됩니다. 묘사보다 무서운 건 어쩌면 이렇게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 곧 가해의 풍경과 스스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폭력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에 붙은 이름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며 또 하나의 가해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지요. “그곳이 공장이라구요?”라는 반문은 언어가 사건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트럭에 실려 갔던 열네 살의 소녀는 이제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붙여놓은 이름표를 하나씩 정정해 가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역사는 가해자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걸고 증언한다는 것, 이는 다음 세대가 같은 침묵을 겪지 않도록 길을 내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요. 증언이 시가 될 때 문장은 곧 증거가 되고, 이 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진술 기록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는 늙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가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그녀의 이름이니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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