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통찰이 필요하다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5-06-03 13: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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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은 왜 쳐다보나"라는 말이 무색할 손가락의 전성시대다. 정치인이 연일 손가락으로 사인을 보낸다. 민주당은 엄지 척, 국민의 힘은 V 척을 쳐들며 국민에게 읍소하여 막바지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그런데 손가락 가르치는 방향으로 무조건 쳐다보는 세태는 요즘 들어 부쩍 더 옛 선사의 일갈(一喝)을 떠 올리게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사고는 먼 하늘에 떠 있는 달보다 눈앞의 손가락 끝에 더 세밀한 눈길을 보내는 형태로 굳어져 있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 자체의 의미를 새겨듣기보다는 먼저 그 사람의 겉모습을 살피는 데 더 정신을 쏟는다. 특히 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유권자들이 후보 선택을 하는 중요 시점에 달보다 손가락을 보는 경향이 허다하다.

그 원인은 우리 사회의 뿌리 내린 불신 풍조 때문일 것이고 또 그 불신 풍조의 대부분은 정치권의 지나친 정치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오직 정치적 수사학에만 올인하며 이쪽저쪽에서 들쑤셔낸 나머지 굳어진 현상이다. 특히 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정치인의 행상 머리를 돌아보면 서로가 다 한심하다. 문제는 선거 후 들어설 정권의 윤곽이 대충은 그려졌지만 내 편 정서에 굳어진 유권자치고 정색으로 달을 쳐다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선을 치룬지가 3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또 대선이 치러진다. 헌정의 정상궤도를 벗어나는 일탈로 생긴 혈세 지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풍차로 뛰어든 돈키호테처럼 황당한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인가. 탄핵을 남발한 민주당의 책임인가.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한들 그들이 책임질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아마 정치인들에게는 책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진부하고 공허하다.

국민의 힘은 대오 단일도 모자라는 판에 한 솥 사람들이 콩 볶듯 서로 튀며 솥 안에서 서로 찌르고 상처를 내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몰상식은 귀가 막힌다. 최근 선거 유세에서 만난 某 여당 의원과 대화에서 그는 책임을 묻는 현 상황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문을 쓰고 싶다. 오늘의 상황을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까짓 반성문 아니라 무슨 짓인들 못 하랴."라고 했다. 그러나 반성문이라면 오죽 좋으랴만 사과문을 쓰고, 현 정국을 헤쳐나갈 격문을 써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128년 전 민생 도탄에 항거해 일어선 동학농민군의 심정이 그랬을까.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은 1894년 격문인 통유문(通諭文)에서 이렇게 썼다. "도를 빙자하여 속인을 능멸하고 비법(非法)을 행하니…. 선류(善類)가 안 보기 어렵다.“

정치가 뭐길래 세인을 상쟁(相爭) 속으로 몰아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야만적 상태를 초래했는가? 호남접주 전봉준이 무장포고문 (茂長布告文)에서 밝혔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인데…. 지금의 형편이 불더미에 앉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3군 분립의 체제에서 행정부를 탄핵하고 사법부 수장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내 힘 과시를 하는 정치형태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선거 유세 현장에는 잘하겠다며 기회를 달라고 외친다. 그럴 수는 없다. 기회를 핑계로 비법(非法)을 행한 것은 대체 누구이고 그 피해는 누구가 떠안았나. 국민이 피폐하면 선의(善意)의 이론은 악마의 맷돌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얼마나 더 많은 국민이 비탄에 빠져야 국민을 속이는 감언이설을 멈추겠는가.

대선에서 각 후보는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다. 거창한 이론은 맞지만, 현장에서 목소리를 들어보라. 현장의 이론에 맞추려면 무엇보다 지불능력이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지불능력을 중심에 두고 정책을 만들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지는데, 지금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방식에는 그것이 없다. 나중에 벌어질 사안은 그때 가서 해결하고 지금은 '쓰고 보자'라는 이런 분위기가 결국 국가 재정을 좀 먹는다. 표만 된다면 국가 부채나 적자투성이 재정은 아랑곳없이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포풀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거짓이 진실인 양 표를 얻기 위해선 어떤 잘못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의 형태로 선악의 경계가 흐물흐물하다. 선악의 이분법이 다시 각인시킬 시대가 되었다. 정치에서 권력, 권리, 소통, 시민, 평등, 정의,법 등의 주요 개념들이 일관성 없게 헝클어졌다. 자신들의 의로운 양심(良心)에 비춰 타인의 양심은 위험한 것이 되었다. 이기적 정치 권력은 그들만의 정의와 그들만의 정치 형식을 독점함으로써 애초부터 상대 당의 비판적 목소리에 대한 배제를 내장하고 있다. 법대로 법치의 자의적 해석이 전형적이다. 이 을씨년스런 풍경이 우리 정치에 맞는 행보인가? 아니다. 선을 앞세운 위선으로 치장한 정치 무능 결과이다. 무능함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정치권이 정치의 주권을 독점한 탓이다.

오직 법대로가 민주주의 삼권 분립 제도에 맞는 것인가. 법대로의 정치는 자신들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도 등지는 비민주적 형태가 속출했다. 정치는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법대로는 날개를 달았다. 문제는 법대로의 시행 방식에 있다. 입법권을 가진 민주당은 자신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여러 혐의에는 규정을 바꾸어가며 법안을 통과시켜 법안이 개정되면 범죄 자체가 없어지는 면소 판결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커피값 원가 120원 문제로 야기된 이재명 후보의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려 문제 삼은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을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이 문제는 누가 잘 봐도 동종 문제인데 어떤 문제는 처벌이 되고 어떤 문제는 면소 판결을 받게 되는가.

후보자 선출 과정이 막무가내식 여당의 궁여지책은 다수의 당원으로부터 유탄을 맞았다. 사분오열로 결정타를 맞은 건 후보자이다. 다 함께 손잡아도 모자랄 판에 후보 혼자서 거리에서 설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게 우리가 믿는 보수의 모습이다. 각자도생을 위해 지리멸렬한 보수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다. 보수는 인물도 없지만 늘 상 인물난을 겪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인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국민을 넓은 공감을 얻는 시대진단을 통해 진부한 구상과 낡은 행보를 쇄신할 정치집단의 출현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 가지 않겠는가. 진중하게 실천하는 그런 집단 말이다. 무엇보다 경제의 파고를 잘 넘길 수 있는 집단의 출현을 기대한다. 한풀이 정치, 청산의 정치와는 단호히 결별하는 그런 집단 말이다.

부자 몸조심의 유세와 흘러간 지난 시간을 강조하는 유세가 거리를 덮으며 선거는 막판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는 정치인이 가르치는 휘황한 달빛에 마냥 취해 입 벌리고 구경만 하지 말고 밝은 달빛 뒤에 다가올 어둠도 봐야 한다. 이제부터야 말로 유권자에게는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할 게 많다. 정치인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그들의 성실성과 진지함을 눈여겨보자.

진작부터 의심해 온 손가락 끝에도 유의하자. 상대방의 결정적 자충수 '한 건'을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정치 매듭을 끊는 '단 칼'로 이용하는 선거 양상에 벗어나 냉철한 판단을 하자. 옛 선사의 말씀처럼 달을 가르치는데 왜 손가락 끝을 쳐다보나.

국내외에서 밀려오는 파고를 넘으려면 절박한 각오에서 바라볼 때 뭐가 성공할 것이고 뭐가 망할 것인가 판별할 통찰을 얻는다. 손가락을 볼 것이냐, 휘황한 달빛에 취해 넋 놓고 있을 것이냐. 우리는 둥근 달 이후에 오는 일그러진 달 모양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선택을 표로 찍을 날이 가까워 왔다. 다 들 잘 보고 잘 읽고 주권행사를 하자.

국가의 내일을 위한 통찰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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