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집회용품 가족 업체 거래…노조의 정당성과 신뢰에 오점
노란봉투법의 범위 쟁점…노동권과 경영 자율성 사이 균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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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훈 편집인 |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인공지능(AI)과 로봇, 자동화로 대표되는 거대한 산업 전환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기업의 생존은 얼마나 빠르게 혁신하고 변화에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노동권의 행사가 기업의 혁신과 경쟁력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기업과 근로자, 나아가 국가경제 전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뜻의 당랑거철(螳螂拒轍)이 떠오른다. 거대한 산업구조의 변화 앞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변화 자체를 막으려 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수레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앞을 가로막은 사마귀만 다칠 수 있다.
◇ 로봇 막는다고 일자리 지켜지나
자동차 산업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도요타는 2028년부터 공장 자동화에 연간 약 1조 엔을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도요타와 계열사, 주요 협력사 등에 필요한 로봇 규모를 약 40만 대로 추산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물론 기존 산업용 로봇과 물류 자동화까지 생산현장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방향도 분명하다. BMW 등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생산현장에서 시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에 2028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투입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부품 시퀀싱 등 제한된 작업에서 성능을 검증한 뒤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세계가 사람과 로봇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만 과거의 생산방식에 머물 수는 없다. 현대차 노조가 국내 공장의 로봇 도입과 관련해 고용과 근로조건을 이유로 노사 협의를 요구하는 것 자체는 노동조합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협의가 혁신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을 막는다고 기존 일자리가 영원히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 생산시설 자체가 해외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舊)시대의 일자리를 지키려다 미래의 일자리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노조가 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로봇 도입 반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로봇과 인간의 협업을 전제로 한 직무 전환과 재교육, 고용 안전망, 성과 공유 등 미래형 노사관계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혁신을 거부하는 노조가 아니라 혁신의 충격을 관리하고 그 과실을 노동자와 함께 나누는 노조가 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의 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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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현대자동차 노사가 2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6년 임금협상 조인식'을 개최한 가운데 최영일 대표이사(오른쪽)와 이종철 노조 지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우) 동행노조는 23일 검찰청을 방문해 '노조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엄벌탄원 탄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하고 검찰에 송치된 초기업노조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진=newsis) |
◇ 삼성 노조의 ‘가족 거래’가 던지는 질문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지부에서도 최근 노조의 도덕성과 이해충돌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승호 위원장이 집회용 조끼 등 물품을 자신의 장인이 운영하는 업체와 계약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가족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최 위원장은 해당 업체가 장인 회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가격과 납품 일정 등을 비교해 계약했으며, 자신에게 리베이트나 수수료 등 어떠한 금전적 이익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후에는 조합원 입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해당 업체를 계약에서 원천적으로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별 거래의 사실관계를 넘어 노조의 이해충돌 관리와 내부 통제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는 문제다. 기업 경영진이나 공직자에게 엄격한 이해충돌 방지 기준을 요구한다면 노조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노조비는 조합원이 낸 돈이고, 노조 집행부는 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할 책임이 있다. 특혜가 없었다고 해명하는 것만으로 논란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고, 공개적인 비교견적과 심의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더구나 최 위원장을 둘러싼 이른바 ‘노조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서도 별도의 검찰 송치 보도가 나온 상황이다. 서로 다른 사안인 만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가 스스로 높은 윤리 기준을 세우고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과제를 던진다.
노동조합이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려면 스스로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노동권의 정당성은 권한의 크기가 아니라 그 권한을 얼마나 투명하게 행사하느냐에서 더욱 강해진다.
◇ 노란봉투법, 노동권과 기업경영의 균형을 묻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을 둘러싼 논쟁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은 헌법적 가치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판단 영역과 노동쟁의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기업 경쟁력과 경영의 예측 가능성에 직결되는 문제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쟁의행위 범위와 관련한 시행지침을 내놓았다. 경영성과급이나 공장 신설 자체에 대한 반대는 원칙적으로 의무적 교섭이나 쟁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의 변동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를 제시했다. 다만 시행지침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향후 개별 사건에서 법원의 판단에 따라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만 해도 이미 109개 기관이 이전을 완료했거나 이전을 진행 중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109개 기관 가운데 혁신도시 이전 기관이 77개, 세종시가 19개, 개별 이전이 13개다.
공공기관의 이전이나 조직 개편 과정에서 근로조건의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쟁의의 문이 지나치게 넓어진다면 국가정책의 집행과 노동권 사이에 상당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노동자의 생활권과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따른 합리적인 조직개편과 실제적인 노동권 침해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도 안 된다.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법적 장치라면, 동시에 기업의 투자와 혁신,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과도하게 훼손하지 않도록 정교한 경계선을 세우는 것 역시 입법과 행정의 책무다.
◇ 기업이 무너지면 노조도 지속될 수 없다
기업과 노동자는 대립하는 두 개의 섬이 아니다. 결국 하나의 배를 타고 있다. 기업이 성장해야 임금도 올라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생산성이 높아져야 더 많은 성과를 나눌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 역시 결국 노동자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더 높은 임금과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것은 견리망의(見利忘義)의 위험을 낳는다. 당장의 이익을 좇다가 더 큰 공동체의 가치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노사 간 힘겨루기가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기술혁신을 촉진하며, 그 성과를 노동자와 기업이 함께 나누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다. 노조도 변해야 하고 기업도 변해야 한다. 정부 역시 노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조정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 혁신 없는 현실 안주는 공멸
세계의 자동차 기업들이 로봇과 AI를 생산현장에 투입하고 글로벌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인간과 기계의 협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과거의 노사갈등에 발목 잡혀 미래의 경쟁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는 보호하되 기업의 혁신을 막지 않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되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상생의 조건이다.
국가 경쟁력은 정부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노사가 함께 만든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고, 경쟁력에는 혁신이 따른다. 지금 대한민국 노사관계가 답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더 큰 밥그릇’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 밥그릇을 계속 키울 것인가.
오늘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경쟁력까지 담보로 삼는다면 지속가능한 상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산성과 혁신의 토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의 노사관계에 필요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다.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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