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계 젤렌스키 대통령 러시아에 결사항전
우크라이나 유대인! ‘유럽에서 세 번째 규모’
러침공 ‘유대기구 조력’ 이스라엘 속속 입국
[일요주간 = 소정현 기자] “푸틴 대통령이 구렁이처럼 입을 벌리고 토끼라 여기는 우크라이나를 먹으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토끼가 아니며 삼킬 수 없다는 사실도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며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2022년 7월 2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Zelensky) 대통령>
![]() |
▲ 젤렌스키는 1978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photo source pesident.gov.ua |
●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 대통령
2019년 5월 20일,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가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젤렌스키는 이날 수도 키예프의 의회 건물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고, 세계에서 우크라이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라는 선서를 했다.
젤렌스키는 뒤이은 취임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동부 지역(돈바스 지역) 주민들을 향해 “우리의 일차적 과제는 돈바스 지역의 전쟁을 중단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이전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등 친서방 견해를 밝혀왔다. 이처럼, 젤렌스키는 전반적으로 적극적 친서방 행보를 보이면서 러시아의 푸틴과 앙숙이 되었다.
결국,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폭격을 가하며 쳐들어왔다. 서방은 즉각 러시아 제재에 들어갔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각종 지원이 시작되었다. 개전 직후 사흘 이내에 함락될 것이라 여겨졌던 키이우(키예프)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열흘이 지나도록 함락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우크라이나는 세계 각국의 지원을 받아 악조건 속에서 전쟁을 버텨내고 있다. 그의 용기와 외교술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 |
▲ 우크라이나는 세계 각국의 지원을 받아 악조건 속에서 전쟁을 버텨내고 있다. photo source understandingwar.org |
● 유대인학자 집안 출신의 젤렌스키
젤렌스키는 1978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다.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Дніпропетровська область) 크리비리흐(Кривий Ріг)에서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올렉산드르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경제 연구소에서 사이버 네트워크 및 컴퓨터 하드웨어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그의 어머니인 림마 젤렌스카는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젤렌스키는 문법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4년 동안 아버지가 일하던 몽골 에르데네트에 거주했다. 몽골에서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몽골에서 살다 어머니 건강 문제로 4년 만에 귀국했다.
유대인의 인생관은 할 수만 있다면 “아낌없이 즐기라”는 것이다. 이런 교육 덕분에 젤렌스키는 어려서부터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남을 웃기는 재주가 탁월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젤렌스키는 1997년 코미디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는 코미디언이 되었다. 젤렌스키는 일과 공부도 병행해 명문 키이우(키예프)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법률가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젤렌스키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우크라이나의 텔레비전 방송국 인테르의 이사 겸 총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2015년부터는 방영된 ‘국민의 종’이라는 51부 작 대하드라마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여기에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30대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바실 페트로비치 홀로보로디코’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는 인터넷 동영상에 출연한 이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부패 정치인들을 몰아낸다는 게 드라마 줄거리다.
시청자 수가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2,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젤렌스키는 ‘국민의 종’ 출연진과 함께 같은 이름의 정당을 2018년 창당해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 젤렌스키는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을 어필하여 현직 대통령을 3배 가까운 차이로 꺾으며 당선되었다. TV 드라마가 극적 현실이 된 것이다.
![]() |
▲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유대인들 photo source timesofisrael.com |
● 구소련 당시 ‘우크라이나 유대인 실상’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지만,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전까지 소련의 구성 공화국에 속했기 때문에 양국 간 외교관계는 없었다. 다만, 이스라엘이 건국하기 이전부터 시오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 유대인들 중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골다 메이어를 들 수 있다. 메이어는 ‘골다 마보비츠’(러시아어: Голда Мабовиц)라는 이름으로 1898년 5월 3일 구소련(현재 우크라이나)의 키이우(키예프)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남편인 모리스 마이어슨과 함께 1921년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고 키부츠에 가입하였다
1970년대에는 소련이 유대인들의 이민을 허가하자 일부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민하였으며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내 유대인 이민 제한을 해제하고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되고 경제적으로 심각한 혼란을 겪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세계유대인회의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공동체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1959년 기준 유대인 인구는 840,311명으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전체 인구의 2.0%에 달했던 유대인 인구는 냉전 기간 동안 계속해서 현저하게 감소했다.
1970년 777,126명 1.7%, 1979년 634,154명 1.3%, 1989년 486,628명 1.0%로 감소하면서1989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인구는 30년 전인 1959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 당시와 이후 1989년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던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를 떠나 해외로 이주했다.
2001년 인구조사 기준으로는 103,591명만 우크라이나에 잔류하였다. 구소련을 떠난 유대인들의 61%는 이스라엘로 이민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상당한 수의 우크라이나 유대인 인구가 유입되었다.
![]() |
▲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을 환영하고 있다. photo source timesofisrael.com |
● 러시아 침공! 유대인 엑서더스 가속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면서, 이스라엘 유대 기구와 구호 단체들이 우크라이나 피란민 구출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귀화를 돕는 유대기구는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몰도바, 헝가리, 루마니아 등으로 넘어가는 여섯 군데에 이민 처리소를 설치했다.
이곳에 임시 센터를 세우고, 유대계 우크라이나인과 이스라엘에 가족을 둔 우크라이나인을 대상으로 구출 활동을 벌이면서 이스라엘 입국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이민 물결을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이스라엘 관리들이 이민 적격성을 평가한다.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유대인과 그 자녀, 손주, 배우자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작년 2021년 한 해 동안 약 3천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귀화를 했는데, 이스라엘 외무부는 최소 2천명의 이스라엘인이 올해 2월 24일 이후 우크라이나를 떠났고 또 다른 최소 6천명의 이스라엘인이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총리직에서 물러난 ‘나프탈리 베넷’(Naftali Bennett)은 “우크라이나에서 구출된 100명 이상의 유대인 고아들이 3월 2일 화요일 밤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향하여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그들을 구하기 위한 작전이 종료되었다.”고 말하며 “고아들은 곧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3월 13일, 폴란드와 몰도바에서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600여 명을 태운 비행기 네 대가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3월 6일에는 300여 명, 9일에는 250여 명이 전세기를 통해 입국했으며, 침공 이후 약 2,500명이 귀화했다.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민자들은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비상 대책으로서 미리 마련해 둔 호텔 등의 임시 거주 시설로 안내된다.
전 세계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환을 돕는 유대 기구는 이스라엘이 생기기도 전인 1929년 설립돼 해외에 흩어진 유대인의 이스라엘 이민을 관장한다. 출생증명서 등을 포함한 까다로운 서류 심사를 통과하면 전세기를 타고 이스라엘에 입국할 수 있다.
![]() |
▲ 키이우(키예프)에서 유대인 랍비들과 환담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photo source timesofisrael.com |
유대인의 자격요건은 혈통에 근거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공동체적 성격으로 변해갔다. 유대율법인 ‘미쉬나(구전 토라)’와 ‘탈무드’는 유대인의 자격에 있어서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만 하며, 어머니가 비유대인일 경우 그 아이는 추후 유대교로 개종해야만 유대인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덧붙여 “유대인으로서의 신성함과 율법을 준수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유대인의 정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혈연주의보다는 종교 문화적 동질성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의 재외동포 정책은 이러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귀환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고, 이스라엘로의 이주 후 정착에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마련해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라엘 독립 후 국가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돌아와 살 수 있는 고향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1950년 귀환법(Law of Return)에 근거하여 전 세계 모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정착할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스라엘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기존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와 이익이 보장된다. 1970년 귀환법은 2차로 개정되었는데 개정안에 따르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유대인 자녀들과 손자들까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받도록 하는 의미심장한 결정을 내렸다.
이 개정안은 타교와의 결혼으로 가족들이 분리되는 것을 막고 선조의 신분으로 인해 비유대인으로 취급당하게 될 유대인들의 이스라엘로의 안전한 정착을 위한 배려이다. 하지만 유대인 중 자발적으로 타교로 개종한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며 3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의 구출을 돕는 한편, 난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조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비유대인 난민을 2만5천 명까지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난민 수용 정책이 너무 미온적 이라고 비난을 받자, 이스라엘 내에 친척이 있는 난민의 경우 조건없이 받아 들이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신중하게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거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대신, 인도주의적 차원의 구호 활동을 펼치며 중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