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형' 소크라테스와 역사의 '아이러니' [허준혁한방]

허준혁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4-02-29 01: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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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혁 UN피스코 사무총장

 

[일요주간 = 허준혁 칼럼니스트] 미국 역대 대통령 평가 순위

미국 휴스턴 대학교와 코스털 캐롤라이나 대학교가 미국정치학회(APSA) 회원 등 정치 분야 전문가 52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15일~12월 31일 실시한 '2024 위대한 대통령 프로젝트'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1위는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2위는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3위는 초대 조지 워싱턴 등의 순이었다. 7위 버락 오바마, 10위 존 F. 케네디, 12위 빌 클린턴, 16위 로널드 레이건, 22위 지미 카터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재대결을 앞두고 있는 조 바이든은 14위, 도널드 트럼프는 사상 최악의 꼴찌였다. 재미있는 것은, 상위 순번으로 평가받은 바이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 '트럼프에게서 대통령직을 가져왔으며, 트럼프로부터 대통령직을 지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화당 성향 응답자들도 트럼프를 45명 중 41위로 평가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대선과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을 앞서고 있다.

푸틴과 나발니

러시아의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러시아 정부의 살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나발니는 지난해 9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했듯이 러시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면서 “희망에 대한 나의 믿음은 확고하다”라며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였다.

나발니는 또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 “정말 공포스럽다”라며, 트럼프의 재선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나발니의 돌연사에 침묵을 고수하던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바이든=푸틴,트럼프=나발니”라고 적었다. 바이든과 자신의 관계가 푸틴과 나발니의 관계처럼 자신도 탄압받고 있다는 뜻을 빗댄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의 당선을 우려한 나발니를 자신과 비유한 것이다. 나발니가 외부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푸틴 통치 기간 중 이뤄진 러시아 교도소 시스템의 디지털화 덕분이었다.

찰리 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

채플린은 1889년 4월 16일에 태어났고 히틀러는 같은 해 4월 20일에 태어났다. 비슷한 모양의 콧수염을 길렀고 예술가를 꿈꿨으며, 쇼펜하우어의 애독자였다. 찰리 채플린은 1940년 그의 첫 유성영화로 감독, 제작, 각본, 주연을 맡은 '위대한 독재자'를 개봉했다. 영화에는 독재자 힌켈과 똑같이 닮은 탈옥한 유대인 이발사가 등장한다. 체포대가 힌켈을 이발사로 오인하여 체포하는 바람에 이발사가 힌켈의 자리에 오른다. 권력자가 된 이발사는 '민주주의를 위해 단결하자'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연설을 한다.

히틀러가 연설할 때마다 영화가 화제에 올랐으며, 채플린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히틀러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히틀러가 카메라 연설을 기피하고 라디오 연설을 선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위대한 독재자'를 상영 금지한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포르투갈을 통해 필름을 입수해 감상할 정도로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로서, 현대 국가들의 동물보호법은 히틀러의 동물보호법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아이와 동물을 사랑했고, 동물의 권리증진에 앞장섰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의 어원과 소크라테스

아이러니(Irony)의 어원은 '감추다', '위장하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eironeia이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주장에 모순이 되는 내용을 스스로 승인하게 하여 말문이 막히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방식을 '소크라테스의 에이로네이아(eironeia 위장)'라 하는데, 플라톤의 국가론에 등장한다. 저서를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어록은 대부분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서 약자이지만 현명한 '에이론(Eiron)'과 강자이지만 우둔한 '알라존(Alazon)'을 각각 이름붙여 등장시키고 '에이론(Eiron)'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고 하였다. 에이론(eiron)이란 이름은 eironeia에서 착안하였다. '소크라테스의 eironeia'는 키에르케고르가 '소크라테스의 irony'로 칭한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이러니(iroy)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과 함께 억울한 사형을 당해야 했던 그 삶과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그의 대표적인 말로 전해져 오는 자체가 '테스형'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이러니와 교훈

프랑스 대혁명 당시 수많은 반대파를 단두대로 처형했던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자신도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히틀러의 독일에 가장 먼저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소련이었다. 덕분에 서구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흑인이지만 노예해방을 한 링컨은 최초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금지곡으로 묶었던 박정희의 애창곡은 '동백 아가씨'였다. 푸틴이 서방국가를 맹비난하던 날 입고 있던 재킷은 고가의 서방 브랜드였다.

슈퍼선거의 해와 재외동포

건국과 관련한 영화가 4.10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연일 화제이다.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세계최초로 민주공화국 체제를 헌법에 명기했던 재외동포들이다. 때마침 총선도 상해임시정부 수립 105주년(4.11)이 되는 하루 전날 치러진다. 4년 주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에 즈음하여 치러지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정작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재외동포를 대표하는 후보나 정당은 여야를 통틀어 찾아볼 수 없는 것 또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올해는 세계 76개 나라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선거의 해’이다. 80억 명의 세계인구 중 절반이 넘는 42억 명이 투표한다. 입으로만 지구촌, 세계화를 외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제22대 국회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보장, 한국어 UN공용어지정, UN 제5 사무국 한반도 유치, 복수국적 나이 완화, 세계한인 지원법 제정, 재외 선거구 개설 등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역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교훈을 준다. 반면교사로 삼느냐 정면교사로 삼느냐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바뀐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갈파는 시대를 초월하는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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