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3년6개월 만에 금리인상 “과도한 빚투, 금융취약성 확대”
국가경쟁력 토대는 거시경제의 균형 “내게 도움을 주는 나라”

세계는 AI 반도체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대체불가(代替不可) 반도체를 국가 성장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세제 지원과 전력·용수 인프라 확충, 대규모 재정투입까지 예고했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수출의 버팀목이고 미래 산업의 심장이다. 정부가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반도체는 국가 성장의 엔진이다. 그러나 국가경제의 뿌리는 특정 산업이 아니라 거시경제의 균형이다. 엔진이 아무리 강해도 뿌리가 흔들리면 경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눈앞의 이익을 좇되 그 이익이 국가 전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먼저 살피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반도체의 장밋빛 낙관론보다 한국은행이 던진 경고를 먼저 읽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은행이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다. 불과 0.25%포인트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중앙은행은 경제가 과열되고 금융 불안이 누적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한은이 "과도한 빚투가 금융 취약성을 확대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점이다.
◇ 문제는 반도체가 아니라 ‘반도체 만능주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통화정책 변화가 아니다. 중앙은행이 지금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을 성장 둔화보다 금융불균형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반도체 호황보다 가계부채와 자산시장 과열을 더 우려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최근 10년 사이 60세 이상 자영업자의 금융부채는 96조 원에서 405조 원으로 네 배 넘게 증가했다. 자영업자는 내수 침체와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고 있고, 청년층은 집값과 대출 규제 사이에서 주거 사다리를 잃고 있다.
경제 곳곳에서 위험신호가 켜지고 있는데 정부는 반도체 낙관론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가 아니라 반도체 만능주의다. 세계 경제역사는 특정 산업의 성공이 국가경제 전체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다. 1960년대 네덜란드는 북해에서 막대한 천연가스를 발견하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스 수출이 급증하면서 길더화 가치가 크게 상승했고 제조업 수출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노동과 자본은 모두 천연가스 산업으로 몰렸고 다른 산업은 공동화됐다. 특정 산업의 성공이 오히려 경제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다.
우리 경제가 그대로 네덜란드병을 앓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도체가 수출과 투자, 정책의 대부분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제조업의 다양성과 서비스 산업, 지역경제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일본 역시 중요한 교훈을 준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는 세계시장을 사실상 지배했다.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었고 미국조차 일본의 반도체 경쟁력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와 전자산업의 성공에 지나치게 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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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newsis) |
◇ ‘영원한 1등 산업은 없다’ 일본의 교훈
AI 시대에도 시장은 메모리에서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설계(IP), 소프트웨어까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영원한 1등 산업은 없다는 점에서 일본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후 버블경제 붕괴와 함께 구조개혁이 늦어졌고, 메모리 시장에서는 한국에, 첨단 파운드리에서는 대만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특정 산업의 경쟁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본은 몸소 보여주었다.
반대로 대만은 또 다른 시사점을 던진다. TSMC는 세계 최강의 파운드리 기업이 되었고, AI 시대 최대 수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반도체는 대만 GDP와 수출을 견인하는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대만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의 이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대만은 세계 최고 반도체 경쟁력을 갖췄지만, 국가 경제가 특정 산업과 특정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적 위험 역시 동시에 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청년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산업 구조가 편중되며, 전력과 용수 부족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수록 그 산업이 흔들릴 때 국가 전체가 함께 흔들릴 위험도 커진다.
이들 사례가 말하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특정 산업은 국가경제를 견인할 수는 있어도 국가경제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체 수출은 살아나고 있지만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내수는 침체돼 있고 자영업자는 버티기조차 힘들다. 반도체 호황의 낙수효과는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는다.
반도체 수출은 회복세를 보이지만 음식점과 소매업, 숙박업 등 생활경제는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 증가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과거보다 훨씬 약해졌다는 점이 한국경제의 고민이다.
◇ 금리인상 카드는 국가경제의 경고장
정부는 재정을 확대하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있다. 한쪽은 돈을 풀고 다른 한쪽은 돈줄을 죄는 정책 엇박자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규제까지 갑작스럽게 강화되면서 실수요자인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투기 수요는 억제해야 하지만 미래세대의 자산 형성 기회까지 차단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의 ‘대체불가 반도체’ 올인을 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되새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여서는 안 된다.(교각살우 矯角殺牛) 반도체를 키우겠다는 정책은 옳다. 그러나 반도체 하나로 한국경제 전체를 견인할 수 있다는 믿음은 위험하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전략산업이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을 하나의 산업에 맡길 수는 없다. 진정 위대한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대체불가 거시경제'다.
균형 잡힌 산업구조, 건전한 금융, 살아 있는 내수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 위에서만 반도체도 세계 1등을 오래 지킬 수 있다. 국가경쟁력의 뿌리는 결국 거시경제의 균형과 조화에 있다.
경제는 반도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소비가 살아야 하고, 중소기업이 버텨야 한다. 자영업자가 숨을 쉬어야 하고,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은행이 3년 6개월 만에 꺼내든 금리 인상 카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향한 경고장이다.
이재명 정부가 ‘대체불가 반도체’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대체불가 거시경제‘의 균형이다. 이것이 국가경제의 근본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내게 도움을 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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