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눈] 한국, 국민소득 4만 달러에 걸맞은 사회인가?

김경훈 편집인 / 기사승인 : 2026-10-28 10: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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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과 민생의 그늘…외화내빈(外華內貧) 덫에서 벗어나야
노인빈곤·저출생·양극화…성장 과실이 국민 삶에 스며들어야 선진국
▲ 김경훈 편집인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질 전망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수출 호조가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그동안 넘지 못했던 벽을 돌파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2014년 3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12년 만에 거둘 성과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한 이른바 ‘40-50 클럽’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소수 국가에 국한된다. 멤버였던 일본은 얼마 전 탈락했다. 한국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면 경제 규모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임은 분명하다.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성취이기도 하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에 앞서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국민소득 4만 달러라는 숫자에 걸맞게 국민의 삶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는가. 경제적 성취와 사회적 성숙이 반드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부(富)는 늘었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이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화려한 경제지표 뒤에 가려진 구조적 문제부터 돌아봐야 한다.

◇ 국가발전에 기여한 노인 빈곤율 39.8% OECD 국가 중 최고

무엇보다 노인 빈곤과 자살, 저출생 문제는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상대적 빈곤율은 2023년 39.8%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평생 가족과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한 노년층 상당수가 은퇴 이후에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저출생 역시 단순한 인구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주거비와 교육비, 불안정한 일자리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어려운 사회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구호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환경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 사는 사회를 만들고도 노후의 존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소득의 크기만으로 사회의 수준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재정경제부. (사진=newsis)


경제성장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수출이 늘어나면 국가 경제 전체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특정 산업의 호황이 모든 가계의 소득 증가와 소비 회복으로 자동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출 대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동안 자영업자는 매출 부진과 비용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저소득층은 생활비 부담에 허덕일 수 있다. 성장의 온기가 사회 곳곳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면 경제지표와 민생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은 국민 한 사람당 평균적인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지, 모든 국민이 실제로 그만큼의 소득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욱이 달러로 환산한 1인당 GNI는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환율 여건 등이 4만 달러 달성의 배경이 될 수 있지만, 그 숫자만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가의 평균 성적표와 국민 개개인의 생활 성적표는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 경제와 민생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돼

한마디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을 경계해야 한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빈약하다. 세계시장에서 첨단 반도체로 경쟁력을 과시하면서도 국내에서는 노인 빈곤과 양극화, 세대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 진영 대립이 공동체의 신뢰를 흔든다면 경제적 선진국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경제력은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지만 사회적 통합과 삶의 질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불균형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노동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의 질을 지키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선의가 현장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생산성과 지불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고용 축소나 근로시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결과 추가 소득이 절실한 저임금 근로자와 취약계층이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역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거나 임금 인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 핵심은 정책의 취지를 살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설계다. 업종과 기업 규모, 생산성, 노동자의 실질소득을 함께 고려하고 영세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줄 지원책과 취약 노동자의 소득을 보완할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 정책의 성패는 구호의 강도가 아니라 현장에서 나타나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치권의 책임도 무겁다. 경제와 민생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국가의 역량을 소모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하고,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하며, 미래 세대의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권의 성과를 홍보하는 일보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이다. 기업 역시 단기 실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협력업체와 상생하며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 국가의 부(富)와 국민의 행복이 함께 가야 진정한 선진국

이제 필요한 것은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자세다. 이익을 앞에 두고도 그것이 옳은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경제성장률과 수출 실적, 국민소득 같은 수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 성과가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국민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함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이윤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치권은 진영의 유불리보다 장기적 국익과 국민의 삶을 앞세워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되,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신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노인 빈곤을 완화하고 청년의 주거·고용 여건을 개선해, 성장의 혜택이 취약계층에도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노동정책은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나, 고용과 임금, 생산성 등 현장의 자료를 토대로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넷째, 저출생과 양극화, 사회적 갈등을 국가의 장기 과제로 설정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책적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소득 4만 달러는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부유한 기업과 높은 수출 실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난한 노인이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고,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노력의 대가를 얻는 사회여야 한다. 서로 다른 세대와 진영이 갈등 속에서도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하고,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여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택의 분기점에 서 있다. 경제적 성취를 자랑하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그 성취를 국민의 행복과 사회의 품격으로 연결할 것인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의 진정한 의미는 통계상의 숫자를 넘어 국민의 삶에서 증명돼야 한다. 국가의 부와 국민의 행복이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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