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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국민은 저만치 던져두고 사람들은 세상을 위해 싸운다. 사생결단하며 싸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싸우는지 몽매한 국민은 알 수 없어 갑갑하고 울화가 치민다. 싸우며 잃어버린 우리를 어디서 찾을까? 저만치 가버린 우리는 어디서 만날까? 똑바로 보고 올바르게 살고 싶은데 어찌할꼬 세상이 진흙탕 속이다. 혀는 도끼가 되어 발등을 찍고 말은 독침이 되어 여기저기서 날라와 박히니 정신도 덩달아 몽롱하다. 세상이 먼지 구덩이로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난세(亂世)다.
언론은 연일 계엄과 관련된 보도가 톱 뉴스로 연속되고 있다. 야당은 난세를 정치적 이용의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계엄 패착을 굴러들어 온 떡이라며 우군 논객을 총동원하여 대통령 때리기에 당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의혹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일부 언론은 처음부터 사실 규명보다 여론몰이 방식으로 야당의 의중을 전개하며 난세를 부추겼다. 언어의 인식 기능과 소통 기능은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보도되는 부정적 소식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상황 자체가 크게 흔들림 없이 일상으로 회복된 것을 보니 일부 언론만 호들갑이다. 이 상황을 보면 대통령과 같은 최고 정치지도자의 존재 또 그의 행각이 생각하는 만큼 중요치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격투기 선수가 운영하는 술집에 손님으로 온 젊은 여성이 하도 욕을 하며 장사를 방해해 살짝 밀었다는데, 그 여성은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한 방 맞아 큰 충격을 받았다고 난리다. 둘 다 자신들 입장을 주장하고 고성을 내며 펄펄 뛴다. 과연 누가 명쾌하게 그 시비를 가려 주겠는가? 설령 시비가 명명백백하게 가려진다 해도 그때쯤이면 득실은 이미 물 건너간 뒤고 장사는 전을 거두어야 한다.
국가가 풍전등화 앞에 섰다. 국헌문란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작금의 헌재 활동을 보면 맡겨진 탄핵 심판에 대한 공정성이 걱정된다. 헌법 재판관의 다수가 특정 정당에서 파견된 정당원처럼 노골적인 정파성을 드러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재판권은 고귀한 것이며 엄격하게 통제되어 사용해야 한다는 기본적 명예심이 재판관에겐 없다. 그들은 국가보다 진영 논리가 더 우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일부 여론 조사에서 헌재를 못 믿겠다는 결과가 있다. 헌법 재판은 하나하나가 국가의 중대사다.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헌재는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하며 무엇보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헌재에서 행해지는 형태는 공정, 신뢰, 신중 어디에도 해당치 않는다. 오죽하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국민 탄핵 소청으로 국회에서 탄핵 심사를 받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1595년 8월 6일 (양력) 난중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라의 돌아가는 꼴을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기둥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나라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충무공이 2025년 대한민국 현실을 본다면 뭐라 말할까. 충무공이라 불린 사람들과 틈만 나면 권력자들을 위인들에 빗대는 이른바 지식인들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나라의 여론이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여서 대화도 타협도 실종된 지 오래다. 뜬금없는 '카드라 방송'으로 금세 큰일이라도 날 듯 들끓는 세상이다. 계엄은 모두를 백척간두에 서 있게 했다. 자칫 잘못하면 배신자로, 버티자니 이렇다 할 명분이 없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네 삶 속에는 여전히 폭력과 야만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음을 실감한다. 들끓는 시대에 거짓과 기만에 노출되면 삶은 하루아침에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다. 그런 불안 심리를 새삼 안게 된 것이다.
지난 한 달간 휘몰아친 난세에 시달리면서 인간들의 온갖 본색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없던 것들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숨겨져 있는 것들이 드러났다. 검증할 수도 없는 의혹이 난무하고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렸다. 여ㆍ야당의 정책대결은 간곳없고 흥신소 수준의 의혹 부풀리기만 횡행해 온 나라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와중에 봐 주기가 민망한 게 있다. 별을 단 장군들이 유튜브에 출연하여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군인들의 모습에 국민은 절망했다.
비상계엄 국회 청문회에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 사령관이 여러 번 찾아갔다는 무속인 '바다 아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야당 의원들은 노 씨에게 무슨 점을 봐줬는지, 계엄 이야기를 집중 질문했다. 비상계엄과 무속을 어떻게든 엮어보려 했지만 "점괘에 맞춰 계엄을 선포했다"라는 화끈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굳은 표정의 장성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무속인을 보니 희극인지 비극인지, 무슨 코미디인지 모를 지경이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 됐을까. 속물들이 들끓으며, 높은 자리를 차고앉자 큰소리를 치는 세상이 안타깝다. 문제는 위정자들이다. 송나라 문장가 소철(蘇澈)은 "천하의 재난 가운데 그 재난이 생긴 까닭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위정자는 이 난세의 근원이 자신들의 그릇된 정치 행위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는 정치인이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판돈'으로 내건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지 않은가. 정치인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각성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비상계엄 과정에서 드러난 선출직 정치인들의 면면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억에 담아둘 일이다. 주인이 주인으로서 권한을 잘못 행사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위정자들이 주인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는 형태를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오직 국가의 주인인 국민만이, 그것도 깨어있고 발언하는 국민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요즘 같은 난세가 따로 있는 거라고 판단한다면 크게 잘못된 속물들이 하는 생각이다. 기실 세상은 항상 난세이며 그 속에서도 감각을 잃지 않는 게 지혜로움이다. 인간은 '싹 다' 수수께끼인데 서로를 안다고 믿었던 오만이 오싹하다. 계엄이 준 교훈은 지나고 보니 알았다. 난세는 악인을 발견하는 시점이 아니다. 가짜들과 기회주의자들, 속물들이 확인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난세가 시대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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