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유용하다면 가리지 않고 쓰겠다며 실용주의 정책을 국정철학으로 제시했다. 지난 진보 정권에서 폐기된 원자력발전소도 건립했고 이른바 죽창가 선동으로 반일 감정을 앞세우던 때와 달리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선 모습은 실용주의의 사례로 평가받았다. 사생결단의 이념대결에 지친 국민에게 실용주의의 국정 어젠다는 큰 기대를 주었다.
바른 지도자는 자신들의 이해보다 시대에 필요한 문제를 먼저 살핀다. 지도자가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쫓다가는 국민의 비판을 받고 결국에는 불행한 결과를 맞는 사례가 우리 역사 속에 적지 않게 있었다. 여기서 '자기'라는 범주는 자연적 개체로서의 '나'도 되지만, 넓혀서 보면 그 '나'가 속하고 또 '나'를 지탱하는 진영에도 속한다. 지도자가 진정 극복해야 할 대상은 개인이나 진영의 이익이 아니라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다.
흔히 시대의 병은 그 당대의 문제이며 선출된 지도자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정책과 국정운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시대 의식으로 집약되며 공적 의식과 공적 활동의 총체가 된다. 시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는 지도자는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 발전을 이끈다. 그러나 시대 의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하는 일마다 모두 요란하게 수선만 피우며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
실용주의는 이념보다 효과를 중시하는 유연한 사고와 현실적 선택이다.
실용주의 정치 철학으로 취임 1주년이 지난 현 정권의 국정운영을 돌아보면, 정책의 일관된 원칙이라기보다 정치적 수사에 머물렀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외교 부분은 논외 하더라도, 정치 문제, 인사 문제와 대통령 개인 사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출범 초기부터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했지만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법인세 인상 등 기업 활력을 저해하는 정책 일색으로 실용주의 정책이라 국정 기조는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 1년간 집행된 주요 정책들은 권력이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끄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충분한 여지가 있다. 과도한 증시 부양에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 같은 비상조치가 연거푸 발동되는 발작적 증시 상황은 한탕 투기에 인생을 거는 것이 이 시대의 지혜처럼 되고 있다. 곳간을 열어 돈을 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무원칙 보은 인사를 남발하고 입법 권력으로 공소 취소 시도를 하며 정국 경색으로 정치는 망치(忘恥)가 되었다. 입틀막 법으로 비판 언론을 잠재웠다. 이것이 국민이 느끼는 대통령식 실용 정책이다.
섣부른 정책은 민생을 어렵게 만들고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를 누르며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선한 많은 국민은 "그래도 직전 정부보단 낫지 않나"고 한다. 그래, 나라를 위한 통치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긍정적으로 마음을 돌리고 싶지만, 대통령 아파트의 속전속결 17억 근저당 매도 소식은 실용을 편법으로 개인의 사익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직함은 국민의 대표다. 아무리 목전의 이익과 직결된 일이라지만, 설사 편법 매매가 법적 하자가 없는 '통상적 방식'이라지만 대통령이 서민이 쓰는 편법적 방법으로 아파트를 매매해서야, 과연 그 방법이 올은 방식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정권의 인사는 보수ㆍ 진보 정권 가릴 것 없이 코드와 인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말이 많았으며, 그에 따른 통치 행위나 정치 범위가 인사 맥락의 눈높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실용주의 정치를 표방한 이 정권도 혹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리 걱정부터 앞선다. 외양은 달라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과거 정권처럼 같은 높이에 있다. 새로운 높이나 넓이로 확장하려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이미 정해진 이념을 정책으로 집행하려는 강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시대 의식은 역사의 순방향에 서기보다는 진영에 갇히기 쉽다. 지난 정권처럼 진영의 이념을 시대 의식으로 굳게 믿어버리면 결국 나라는 반쪽으로 운영된다. 역사의 순방향에서 진행해야 하는 시대정신을 진영의 이념 안으로 가둬버리면, 그 진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국정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나라 정치가 특정 집단에만 의존하는 한, 실용주의는 요원한 정치 수사에 불과하며 국가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해진 정책을 집행하는 능력 이상을 발휘하여 국가를 선진 대열로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 정치인이 아닌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진영 울타리를 넘어서 국민 전체와 나라를 위하는 것 이게 실용주의의 표본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 국민 전체를 위한 국가 경영을 해야 한다.
정당의 존재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와 정책으로 이 둘은 한 몸이어야 한다. 굳이 분리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정치는 왕성했고 정책은 약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의 전성기이다. 그것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통치 실망과 현 대통령의 개인적 인간 승리의 스토리가 겹쳐져 더욱 증폭되었다. 정치 전성기 시대, 필요한 것은 바른 정책이다.
지난 23일 부동산정책 국민토론회가 있었다. 절실한 부동산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국민적 중지를 모으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한마디로 부동산정책 국민토론회가 아닌 '수도권 부동산정책 토론회'장 이였다. 국가의 정책에는 수도권 중심의 정책만 있을 뿐 지방 부동산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지방 소멸 현상으로 변해가는 지방 부동산엔 관심이 없고 해법도 없었다. 국가의 모든 것이 몰려있는 '수도권'이 대한민국 전부를 삼키며 국가 정책의 중심에서 논의의 장이 되었다.
부동산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논란의 대상인 '보완 수사권'도 국민토론회를 열어 국민의 소리를 들어 논란의 소지를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당이 공청회에서 논의한 내용에는 보완 수사권 패지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 찬반 의견만 들은 공청회로 문제점 수정보다 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한 요식 행위였다.
이재명 정권 1년의 국정을 종합해 보면 집권 초기 원전 건립이나 대일 외교 문제에 실용적인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ㆍ야 불통의 무리한 입법 과정과 정국 경색, 언론을 둘러싼 입틀막 법 시행 등으로 국민이 느끼는 감각은 실용주의 정치라기보다 야당에 떠넘기기, 내 편 챙기기에 초점이 맞혀진 느낌이다. 국회 무리한 입법에 거부권 없는 국정운영을 보며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주의에는 선진 대한민국 미래의 큰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는 정치 고질병인 내 편 우선주의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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