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진보시대를 걷는 야당의 길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6-05-11 1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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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주말에 나왔으나 도로가 막혀 길에서 나들이를 하고 있다. 요즘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길이 막히는 사태가 일상화되어 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으레 그러려니 하고 다들 각자의 일상 생각을 하며 무심히 쳐다볼 뿐이다. 막히는 길에는 나 때문에 당신이 가지 못하고 당신 때문에 내가 가지 못한다. 다들 가려 하니까 아무도 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기막힌 사태를 이미 아무도 기막혀하지 않으니 더욱 기막힌 일이다. 선거를 앞둔 지금 야당이 가는 길이 딱 그 모양이라 하는 말이다.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 후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를 선출하며 빠르게 당을 재정비하였지만 추락의 길로 가고 있다. 당내 계엄 반대 세력을 추스르지 못하고 선동과 내분에 휘둘리며 갈팡질팡이다. 야당은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민주당의 독선적 의회 운영이라는 정치적 호재를 가지고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중과부적으로 끝났다. 누가 봐도 웃을 한심한 졸전으로 아무것도 이룬 성과 없이 민주당에 완패했다.

대립과 불통(不通), 이념으로 무장된 민주당과 정부의 집단화는 이미 기능화되었고 군집화되었다. 그 기능화와 군집화의 정도는 너무 단단한 것이어서 아무리 흔들어도 빈틈이 없다. 공소 취소의 특검법을 만들어 재판 소멸을 해내겠다고 한다. 국정조사 쇼까지 벌이며 온갖 것을 캐내도 나온 게 없는데 '수사 조작'이 확인됐다고 우기며 공소 취소의 수순에 돌입했다. 그런 정당이 여론 조사만 하면 높은 지지율을 받는게 신기하다. 국민이 노(No)하며 회초리를 들지 않으니 마음 놓고 법치를 주무르고 있다.

권력의 폭주 앞에 무기력한 야당은 지금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이 허물어버렸는지 돌이켜보기조차 않는다. 당은 쇠락의 기운이 가득한데도 집안싸움으로 여당만 웃게 했다. 공당이 내분에서 대승적 정치는 못 할지언정 작은 잘못이나 따지는 정치적 언동은 근본적으로 문제다. 치사하고 비루함으로 허물어진 곳에서는 잘못된 것을 개탄하기는 쉽지만,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같은 길을 두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따로따로 길을 가는 것이 서로 편하지 않겠는가.

자연의 길이나 공당의 길이나 사람의 길이나 모든 길은 저절로 생기지 않지만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길은 길이 아닌 곳을 자주, 오래 다님으로써 길게 이어진다. 길은 인간이 남긴 자취들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겸손하다. 길은 단순 구조물이 아니고 인간과 사람 사이의 교섭의 자취기에 많은 여정이 축적된다. 그래서 그 길 위를 가는 자에게는 통로이지만, 길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풍경이다.

진보 시대의 길 위를 걷는 보수 사람들의 풍경을 바라볼 때, 그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의 구획은 이미 허물어져 있다. 보수 속에 흐르는 피에는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고 동시에 미래 역시 다르지 않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핏속에서 합일되면서 역사와 가치를 이룬다. 보수의 가치에는 찢기어지지 않는 이념의 온전성이 묻어져 있다. 이 온전성을 발전에 부족하다고 폄하되기는 쉽지만, 지금의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보수의 치적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보수는 급격히 변하는 시대에 합당한 대처보다 지키는 것으로 온정성을 잃었고 한번 잃어버린 온정성을 다시 탈환하기가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보수 성향을 대변하는 국민의힘이라면 진정으로 보수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는 일을 자신들이 하고 있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고질병인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보수 이념이 휘발되었다. 여당과의 전선에서 일사불란하게 싸워도 시원찮은데 총부리가 당내로 향하는 것이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위기 수습을 해야 하는 지도부가 앞장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 시키기 위해 당내 질서를 혼란 시키는 모습이 너무도 흔하다는 사실이다.

공천 갈등으로 국민의힘 내부는 난장판을 방불케 했다. 공천권을 놓고 치고받는 싸움은 보기에도 한심하다. 낙천자들은 공천에 편승해 자신들의 이윤을 도모하는 집행부의 선정성은 보수의 정신에 막대한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 그 비난의 주된 내용이다. 어설픈 행동은 보수 정신의 순수성을 배신한 것이라는 분노도 있다. 한마디로 정당의 공천 구도가 후보자들 서로 싸움을 붙여놓고 결국은 내 편을 뽑는 야바위 판이라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보수 정치에 대한 들끓는 욕설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일체 대응이 없다. 대안 없는 지도부는 그저 시간이 지나 분노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외 뾰족한 묘안이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과 장동혁 대표가 처해 있는 상황을 주역으로 풀이하면 64괘 중에서 28번째 괘인 '택풍대과' 괘이다. 위에는 연못물이 출렁거리고 아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집 기둥은 뿌리가 흔들리고 서까래는 천정에서 하나씩 떨어지는 형국이다. 여차하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 괘는 아주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주는 괘이다. 지진이 났을 때 공포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않은가. 대과라는 말 자체가 크게 오버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뭔가 크고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의견과 차이, 갈등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작은 차이 때문에 협력 못 하고, 대립하고 분노하며 나의 힘을 외쳐대는 것으로 매사를 처리한다면 과연 국민의힘은 무슨 일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의견의 내용이 단단하고 행위의 결단은 견고하더라도 표현의 방법을 달리하는 게 필요하다. 대화와 타협으로 공감하며 심리적 공간을 넓히고 그러면서 함께 만들어 가는 정당 문화가 규범으로 자리매김하면 얼마나 좋은가.

국민의힘 지도부는 누가 뭐라 해도 당헌 당규대로만 하면 만사가 '오케이' 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 장동혁 지도부는 돌을 맞더라도 나만 규정을 지키면 만사가 오케이라는 신념에 충실할 때가 아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국민의힘을 평가하는 각종 지표가 F학점 수준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외양간을 고쳐 더 이상 소 잃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신념, 고집으로 어떻게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살이에서 대과 없는 사람은 없다. 비록 초기 성과가 궁핍했다 하더라도, 설사 당 내부의 균열이 생겼다 쳐도 공천에 따른 불협화음을 풀어가는 변수에 따라 향후 선거전에 새로운 양상이 전개될 수 있다. 부디 철저하게 자기반성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지자들이 걱정하는 변정고언( 辯政考言)의 소리를 들으시라. 이 엄중한 역사성 앞에 야당은 얼마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도 야당 문제를 걱정하는 레퍼토리는 차고 넘친다. 텔레비전에는 무심한 패널들이 보수의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아직도 야당은 '마이웨이'를 한다며 정신 못 차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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