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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웅 언론학 박사 |
[일요주간 = 최충웅 언론학 박사]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참담한 심정이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의 세 모녀 사망 사건은 우리사회 복지 사각지대의 맹점을 보여줬다. 60대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고 40대 두 딸 역시 모두 희귀 난치병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월 40만 원 가량의 집 월세를 제때 못 내 빚 독촉을 우려해 화성에서 수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전입신고도 하지 않아 실거주지와 주민등록 주소지가 달라 지자체가 이들의 어려움을 몰랐다.
화성시가 건강보험료 체납을 확인한 뒤 서비스 안내문을 보내고 찾아갔지만 집을 옮긴 뒤였고, 거주지인 수원시에선 행정기록이 없어 파악하지 못했다. 세 모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다. 2014년에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의 판박이 참사다.
송파 세 모녀 역시 지병을 앓고 있었고 수입도 없는 궁핍한 생활고 속에서도 정부와 지자체 사회보장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해 12월 국회는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을 통과시켰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법을 제·개정해 유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 노력이 있었다. 정부는 2015년부터 건강보험료 체납, 단전·단수, 가스 공급 중단, 의료비 과다 지출 등 34가지 위기 정보를 지자체에 제공해 위기가구를 찾아내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원 세모녀 비극처럼 놓치는 일이 빈번했다. 2019년 7월 탈북자 모자 아사 사건, 그해 11월 서울 성북구 네 모녀의 극단적 선택, 대전 3부자, 전남 일가족 3명, 2020년 방배동 모자 사건 등 빙산의 일각으로 취약 계층의 생활고 비극은 여기저기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또 한번 확인됐다.
우리의 신청주의 복지 시스템은 모르면 못 받는 복지 제도로 알아서 찾아야 하는 복지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고 있는 게 복지 시스템인데, 정보를 아는 사람에게만 제공되고 있기에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재발한 것이다.
올해 정부의 복지예산(보건·복지·고용분야)은 221조에 달한다. 이 중 기초생활보장 예산이 약 16조7000억원, 취약계층 지원 예산이 약 4조8000억원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수원 세 모녀’의 경우도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렸다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이용해 월 125만원의 생계지원비나 긴급의료비 지원 혜택, 주거 지원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복지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은 현행 복지 체계에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수원 세 모녀’처럼 월 5만원 이하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해 ‘생계형 체납자’로 분류되는 가구는 작년 6월 기준으로 73만 가구에 이른다. 채무문제나 가족갈등을 이유로 1년 이상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아 행정안전부에 ‘거주 불명자’로 등록된 국민도 작년 말 기준 24만 명이 넘는다. 이러한 가구의 상당수는 ‘고립 위기 가구’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위기가구가 직접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차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지자체의 발굴 체계를 더 정교하게 개선해야 한다. 고령자와 장애인, 저소득층 등 ‘정보 취약자’ 경우 복잡한 복지 지원 제도를 잘 몰라서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더구나 채무가 많은 취약 계층들의 경우 은신하려는 성향이 크다. 따라서 주민등록 시스템에 의존해 복지 체계를 구축하는 현 방식의 개선이 요구된다. 주소지와 거주지가 다를 경우 위기가구를 찾는 매뉴얼을 만들어 지자체가 모두 공유할 필요도 있다.
정부·지자체의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이웃 접촉도 되지 않는 이른바 ‘고립된 위기 가구’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복지 전달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거주불명이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위기가구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찾아내도록 사회복지 인력을 충원하고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활고를 겪는 이들 중 상당수가 채무 문제를 이유로 실거주지를 옮겨 다니고, 사는 곳을 알리지 않고 은폐한다는 점을 고려한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동네 사정에 밝은 원주민들을 활용하는 민간위원제도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번 기회에 일선 복지행정이 여전히 ‘갑’ 입장에서 불친절해 문턱이 높은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지자체나 주민센터 등이 복지지원제도 홍보를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정부의 복지 지원 서비스를 알기 쉽게 알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공영TV 방송을 통해 정부의 긴급 지원 정책을 적극 알리는 방법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복지 관리 대상자 선정 기준도 바꿀 필요가 있다. 세 모녀는 건강보험료를 16개월이나 체납해 정부의 복지 관리 대상자가 됐어야 했다. 하지만 체납액이 27만여원으로 금액이 크지 않아 복지 대상자로 선정하지 않았고, 거주지는 수사권이 없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체납 금액의 과다가 아니라 체납 기간이 긴 경우에도 복지 대상자로 분류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보편적 복지와 함께 이번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에 대한 실효성 있는 선별복지 대책을 늘려야 한다. 위기가구 판정에 세심한 기준이 필요하고 빈곤층 선별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에 의하면 ‘위기’ 수준이 2021년에 무려 13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찾기 어렵다고 손을 놓을 일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할 예산이 확보돼 있다. 그런데도 돕지 못한다면 직무유기에 속한다. 국가 복지제도의 기본 목적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 낯 뜨거운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5000달러의 선진국에서 ‘수원 세 모녀’ 비극은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철저한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복지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
[필자 주요약력]
경남대 석좌교수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YTN 매체비평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연구원 부원장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원장
KBS 예능국장, TV제작국장, 총국장, 정책실장, 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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