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여ㆍ야당이 연출한 정신적 내란 사태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4-12-27 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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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갑진년이 저물어 가는 세모 거리는 어두운 기억을 떨치려는 듯 인파로 넘실거렸다. 궁핍했던 시절보다 사람들의 표정은 더 무거웠고 일상의 갈피마다 묻어나는 조바심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설원의 먼 길을 숨차게 달려온 증기 기차처럼 하얀 김을 푹푹 뿜으며 길게 눕고 싶은 휴식이 필요한 세모의 오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식당 한쪽 방에 모여 있었다. 용띠생들이 용의 해 갑진년을 그냥 보낼 순 없다며 번개로 마련한 모임이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올 한 해도 무탈이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우리는 낮 술잔을 들이켰다. 지난 일 년 동안 정신을 산만하게 하였던 주변의 일들은 다 잊자며 시작한 망년 모임이었지만 막상 취하니 현 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자연 안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소란할까? 소란 끝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첨예한 이해관계로 몰아내는 권력투쟁에서 위정자들이 무기로 사용하는 단골 메뉴인 혐오, 아집, 독재 언어에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교직에 몸담았던 친구가 말을 꺼냈다. 모든 인간이 갖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누구나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으며, 아무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사회도, 보수도, 진보도 모두 완벽하지 못하다. 보수와 진보는 둘 다 문제점을 가지고 이 사실은 가린 체 서로 다른 의식을 가진 자들이 '국민 편익'을 앞세우며 끝없이 싸우는 격투기를 벌이고 있다. 진보가 좋으냐 보수가 좋으냐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 모른 채 분출하는 격투는 내년에도 다른 형태의 옷으로 바꿔입고 재현될 것이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어두울까 벌써부터 염려스럽다는 정치 '혐오'를 말하며 술잔을 기울여다.

참으로 이상한 사태가 일어났다. 밤 열 시경 비상시국이라며 계엄이 발동되었는데 군인들은 왜 저렇게 느슨할까.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며 계엄이 선포되었지만, 이 광풍 속에서 우리 주변의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냉정하리만큼 차분하다. 일상에 여ㆍ야 정치 싸움에 넌더리가 나 면역이 생긴 탓인지, 언론의 생중계 방송으로 국민이 상황을 지켜본 계엄 사태가 워낙 단시간 내에 해제된 덕분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지속할 분위기도 아녔다. 다음날 가게와 거리의 사람들은 지난밤 사태를 아랑곳하지 않고 세모 분위기답게 여전히 바쁘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우리들은 몇 번의 비상계엄을 경험했지만 이런 계엄과 국민의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이상하다고 입을 모았다.

작금의 우리 정치는 이상한 사람들의 집합장이다. 야당의 집요한 특검 정치화는 자기 가족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착각한 대통령. 자신의 위기를 정당의 위기로 치환시키는 제주가 비상한 야당 대표. 그 사이에서 나라 꼴이 엉망이라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세력과 국민이야 어찌 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기를 바라거나 해서 그게 자기들 정치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몇몇 정치인들. 이런 인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으니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되었다. '아집'의 정치가 국가와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특히 거대 야당의 특검과 탄핵 난발 행태는 민주주의의 다수결을 이용한 '독재'라며 친구는 입에 침을 튀기기며 열변했다.

우리 사회는 사회 정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게 강한 사회이고, 이것은 사회의 주요한 정신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감은 너무나 쉽게 부정적 감정으로 연결된다. 적지 않은 국민이 자신의 판단을 고수하며 다른 얘기 듣기 자체를 거부한다. 이 현상은 주변이 뭐라든 상식ㆍ합리와는 담쌓는 확증 편향증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고질적인 병폐인 패거리 의식으로 쉽게 전환되며 내 편을 추종 열광하고 '상대를 악마화'로 둔갑시켜 저격한다. 보라, 지금 국회 앞에서 탄핵을 외치는 군중의 목소리를. 마치 성경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매달아라! 라는 민중의 야비한 외침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에서 단골로 사용하는, 밑도 끝도 없는 추상성으로 뜻이 모호하고 대상이 모호해지는 말이 있다. 그걸 구체적으로 언어로 바꾸면 '국민의 뜻'이다. 이것을 또 다르게 표현하면 국민을 상징적으로 추상화하고 격을 높여 부르는 게 민심이다. 추상적 민심을 특검과 탄핵으로 이용, 남발한 정치가 불러온 것이 지금의 계엄 사태다. 나는 이 사태를 정신적 내란 사태라 생각한다. 이문열이 쓴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에서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을 '정신적인 내란' 상황으로 보는 비관적 관점으로 쓰여 있다. 정치의 동맥경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 반복되며 진보ㆍ보수 양대 세력은 계엄을 깃 점으로 정신적 내란은 절정에 달했다.

계엄이 탄핵으로 이어진 우리나라를 북한은 탄핵 직후 '괴뢰 한국 땅 아비규환'이란 논평을 했다. 중국도 한국의 사태를 빗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보도를 했다. 그들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의 혼란과 불확실이 계속된다 해도 우려스럽지 않고 전혀 문제가 없다. 자유 민주주의의 절차가 일상화된 성숙한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돈키호테형 몇몇 정치인과 상대편 죽이기에 내공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솔깃한 음모론으로 대중의 관심을 장사수단으로 이용하는 유튜버들, 이들의 형태에 놀아나는 사람들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도 언론도 너무 자유로운 게 문제다.

학자들이 말하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은 계엄도 아니고 3.15부정선거도 아닌 IMF 사태라 했다. 대한민국을 망하게 할 정도의 위기 때 IMF에서는 구세주 행세를 하며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겠노라며 거드름을 피웠다. 커다란 가방을 든 사람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당당한 기세로 비행기에 내렸고, 수십 명의 기자가 따라붙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묻는 속에서 그들은 거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공항을 떠나며 침을 뱉듯 한마디 내뱉은 말. "방법은 단 하나.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거대 야당은 점령군처럼 국민 팔이를 하며 여당과 정부에게 말한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하자는 되로 따르라. 아니면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하겠다'라는 협박이 왠지 사회를 또 다른 광기를 불러올까? 마음이 무겁다.

을사년에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선택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으나 이것 하나는 확실히 생각하자. 선택하는 사람을 고를 때 과거 행적도 돌아볼 줄 알아야 미래를 보는 눈도 밝아진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런 내용을 아무리 주장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는 모두 마음뿐이지 마음이 나이를 이길 수 없다며 헤어져 식당을 나섰다. 세모의 밤 풍경은 네온의 휘황함과 사람들이 차분함이 교차하고 있다. 친구들과 보낸 세모의 몇 시간은 행복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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