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09-21 16: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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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우리네 삶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에 의해 겪는 치욕스러움이 있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이릉의 역모 사건에 얽혀 남자의 성기를 제거당하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고 평생을 수치스러운 삶을 산 사람으로, 치욕이란 단어가 회자 될 때마다 그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인가 초나라 회음왕 한신도 젊은 시절 고향 불량배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 가는 '과하지욕'의 치욕을 당해, 이 두 사람은 역사적 치욕을 말할 때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과거 잊지 못할 치욕스러운 역사가 있다.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에서 갇혀 항거하던 조선 국왕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며 오랑캐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 예를 행한 '삼전도의 치욕'스러운 왕조의 역사가 있다. 이보다 더 큰 치욕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무능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백성들에게 나라 없는 설움을 안겨준 '경술국치'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 이처럼 약소국이 강대국에 불가피하게 당하는 국가의 명운에 관한 그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 속에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치욕을 나는 이해하려 한다. 치욕을 도려내 버린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언어화된 이념일 것이고, 역사는 치욕과 더불어 비로소 온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당시 조정의 남한산성으로 애달픈 피난 행궁을 긍정한다. 9단이나 높이 쌓은 수향단 아래의 오랑캐 두목 앞에서 죄인이라며 푸른 융복(戎服)을 입고 땅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빌어서 국토와 백성을 보존한 인조 임금의 고뇌와 그날 천지간에 사무친 백성들의 통곡 소리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이해한다. 이처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치욕도 역사의 한 장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배타주의를 정서화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내 조국의 역사 속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졌던 사대주의의 어쩔 수 없었던 생존술을 이해하고 있다. 대륙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강성한 신흥 왕조들의 그 가공할 군사력은 어김없이 한반도를 유린했다. 섬나라 일본도 자국 내 여러 군벌을 통일하며 축적된 힘을 조선 반도로 향해 쏟으며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이처럼 민족의 생존을 유린하는 강자들을 향하여 저항과 사대를 반복하는 내 약소한 조국의 약소하지 않은 운명을 나는 긍정한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긍정과 사랑을 일제 36년의 식민지 조국에 치욕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는, 무능한 왕실과 매국노들 때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망국이 된 때로부터 한 세기 뒤에 태어나서 지금도 정치적 사회적 고통의 흔적이 남아 치욕스러움을 추스르려는 한 후인(後人)의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다.

국가나 개인이나 나름대로 고유성도 있고 그에 따른 격(格)의 존엄성도 있다. 그 존엄성이 타의에 의해 짓밟히는 수모와 치욕을 겪는 것을 보며 우리는 분노한다. 일제 강점기 여성의 몸으로 정신대에 끌려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은 할머니들은 인간의 최소 존엄성도 무시당한 채 평생을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다. 우리는 일제 만행에 분노하며 후일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행위로 치욕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분노한다.

이 시대는 치욕의 한을 않고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날뛰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의 염치, 규범과 가치를 지키며 공동선을 고려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도 있다. 요즘 시대엔 공동선을 추구하는 단체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보기 어려우나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끄러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망각한 듯하다. 이것도 시국의 조류인가. 정의의 상징이며 올바름의 표대로 소금 역할을 해야 할 대법원도 시민단체와 비슷한 흐름으로 국민을 우려스럽게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법에 따른 원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치욕을 치욕으로써 긍정하며 부끄럼 없이 지내고 있다. 공인의 자리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인(私人)의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에 엄중 중립을 지켜야 대법원장의 '정치성 발언'을 녹취록에서 듣고 나는 경악했다. 사법부 수장이 맹목에 빠져 사사로운 정치적 언어를 해서야 되겠는가. 가뜩이나 법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해괴한 언어의 상징으로 돈 없고 빽 없는 국민을 옥죄고 비틀어온 가장 무서운 권력이 아니었든가.

정치에 엄중 중립을 지켜야 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정치 행위를 하여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경위야 어쨌든 대화 녹취록이 공개돼 거짓말이 들통났다. 올바름의 표대인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한 죄로 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대법원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치욕적인 일이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업무상 횡령혐의로 고발된 사건, 김 대법원장 며느리가 회사 동료를 대법원장 공관에 초청 만찬을 했다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고발돼 있다. 이 중 어느 한 사건이라도 기소된다면 현직 대법원장이 재판을 받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대법원장은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수치스러움을 모르는가.
후일의 역사는 대법원 수장의 치욕스러운 검찰 조사를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의 치욕의 한 장으로 기록할 것이다. 단체나 개인이나 다 들 조심하자.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고통의 삶을 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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