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3년 동안 공안단속을 피해 다니며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북한에서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중국에 있는 3년 동안 전부 해 본 것 같다. 먹고 살기위해서 탄광에서도 일을 했다. 붙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정부는 현재로선 탈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대한 여론조성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 탈북자 가족들을 둔 남한 내 탈북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만 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일요주간>은 중국에 탈북자 친인척이 있다는 이선애(가명)씨를 만나 북송된 경위와 현재 북한의 현실 등에 대해 들어봤다.
―탈북 당시 상황에 대해 듣고 싶다.
▲힘들었습니다. 중국에서 3년 동안 공안단속을 피해 다니며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북한에서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중국에 있는 3년 동안 전부 해 본 것 같다. 먹고 살기위해서 탄광에서도 일을 했다. 일이 힘든 것보다는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공안에) 붙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잡히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니까...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두려움 속에서 기도 펴지 못하고 말도 변변히 못하고 그렇게 살았다.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당시 생활이 힘들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았다. 출신성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추궁도 많이 당했다. 공식적으로는 발언상 문제들이 걸려 조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돼 결국은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을 오가며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됐다. 중국에서 한국제품이라고 하면 중국 사람들도 최고로 생각하고 선호가 대단했다.
―강제 북송 된 사람들 중 친인척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알게 됐나.
▲처조카다.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군복무도 마치고 한국에 찬척들이 있으니까 한국에 오고 싶어 했다. 중국까지 넘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브로커에게 연락을 해서 부탁을 했다. 이 후 장성으로 나오다 잡힌 것 같다. 지난주 화요일에 연락이 왔다. 북한에 처 동생이 있는데 잡혔다고 연락이 왔다. 도와달라고... 무슨 뜻이겠는가.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김정일 애도기간이라 탈북 하는 사람이 있으면 3대를 멸족시키라는 공식 통보도 있었던 터라 자제했어야 했는데 결국 일이 터진 거다. 중국연길에 힘 있는 사람이 한명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조카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중국 안팎에서 탈북자들이) 너무 이슈화 돼서 (구출이) 어렵다고 했다. 다행히 며칠 전 좋은 소식을 듣게 됐다. 조카를 살릴 수 있게 됐다. 나오게 되면 다시 연락이 올 것이다.
이곳에오면 공부도 하고 뭐도 하고 뭐도 한다고 잔뜩 부풀어있었는데... 이 찰나에 잡혀서 죽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애도기간이 아니었으면 조금은 덜 걱정했을 텐데... 가족들 잠도 못 자게... 하여튼 잘 해결 될 것 같다는 이야기 듣게 되서 처가 두발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북한의 가족들과는 어떻게 연락을 하고 지내나.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연변에 나와 중국전화기로 전화를 한다. 내 번호를 알고 있으니까.
―북송되면 어떻게 되나.
▲전부 북송이 된다면 시범 케이스로 한명은 총살 당 할 지도 모른다. 너무 이슈화가 되고 알려졌기 때문에... 그리고 당국에서 3대 멸족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총살을 할 것이다. 북한이 그렇다. 포고문이 떨어지면 반드시 총살시킨다. 만약 쌀 훔쳐간 사람에 대해 포고문이 떨어지면 쌀을 훔쳐간 사람은 반드시 총살을 당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정부에서 배급도 안주니까 더욱 살기 힘들어져 사람들이 하나둘 탈북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인가.
▲북한이 사상적이라고들 말하는데 이념적으로 생각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보위부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하는 사람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이용해 자기 것을 만들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사회가 됐다. 지금의 현실을 막을 방법 또한 없다. 돈만주면 잡혀간 사람들이 풀리기도 한다. 탈북 하는 사람 대부분이 나라를 반대해서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넘어오는 것이다. 체제에서 보면 탄핵이 되는 것이지만 보위부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중국으로) 넘어가다 잡혀도 한국과 접촉했다는 증빙된 자료가 있어도 안했다고 우기고 중국을 넘어간 것이 먹고 살기위한 것이라고 우기면 경벌에 처하기도 한다. 누구를 만났냐고 물어도 만난사람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투먼 교도소는 어떤 곳인가.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잡기위해 만든 수용소다. 길림성 쪽에서 잡히면 무조건 이곳으로 간다. 변방수용소도 있고 탈북자만 수용할 수 있는 수용소가 많이 있다.
―3년간 중국에서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중국에서 박해를 받은 적은 없었나.
▲박해라기보다는... 사람 나름이다. 나를 얼마만큼 죽이고 사느냐에 따라 다르다. 사람이라는 것이 감정동물이다 보니까 나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했다. 어차피 먹고 살려면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한족도 섞여있고 양쪽 말을 다 할 줄 아는 사람도 모두 중국말을 하기 때문에 누가 말을 걸어와도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배울 수 있기 전까지는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체 자기를 죽이고 잘했든 못했든 조금이라도 반감을 품게 되면 안 된다. 괜히 대들었다가는 그 곳에서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화한통이면 잡혀가니까. 그렇게 잡혀간 이들도 많이 있다. 돈 달라 그러면 돈도 줘야하고. 낮에는 잘 지내다가도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잡아가라고 신고를 하기도 한다.
―공안에 잡히면 어떤 조치가 취해지나.
▲바로 북송된다. 하지만 친인척이 중국의 큰 회사 사장이거나 돈이 많던지 하면 돈 좀 찔러주고 내보내달라 하면 내보내주기도 한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탈북자를) 신고한 사람도 일정의 포상금을 받는다.
―한국에서 일자리는 어떻게 구했나.
▲나이가 많이 일자리 구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화물차를 사서 물류 일을 했다. 임금체불로 고생도 하고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우거지공장 배송 일을 하다 공장을 인수 받아 운영을 하기도 했다. 2년 만에 부도나고 빚을 지고 고생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 힘든 점은.
▲‘이만하면 됐다’ 만족하면 편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보면 아쉽고, 젊었을 때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 없으십니까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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