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CEO의 예술+경영 이야기 “늘 청소년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창조적 상상 통해 미래지향적인 경영 할 수 있다”

노정금 / 기사승인 : 2012-03-12 1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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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인터뷰] ‘CEO 컨설팅그룹’ 강석진 前GE코리아회장


▲ 강석진 회장이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前GE코리아 회장, 'ceo컨설팅 그룹' 강석진 회장
[일요주간=노정금 기자] GE(제너럴 일렉트릭)는 미국 발명가 토마슨 에디슨 (1847~1931)이 1892년 설립한 회사로 미국 내 전자, 전기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이다. GE의 CEO 잭 웰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21년간 GE코리아(GE 한국지사) CEO로서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강석진 회장.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 경영인이기도 하지만 그에겐 특별한 직업이 또 하나가 있다. 주로 자연풍경을 화폭에 담는 전문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 이태리, 뉴욕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981년에서 2002년 까지 21년 GE코리아 사장 및 회장을 재임하고 현재 ‘CEO 컨설팅 그룹’ 회장으로 있으며 네덜란드를 오가며 학술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강석진 회장을 <일요주간>에서 만나보았다.

-회장님은 경영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문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어떻게 보면 미술과 경영이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술 하는 것이 순수함과 창조성을 찾는 차원에서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경영을 시작할 때 이미 미술을 하고 있었고 저는 두 가지를 항상 같이 했습니다. 30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30살 때 뉴욕에 있는 금융회사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할 때 한 젊은 화가와 친해지면서 그 친구 영향으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경영과 미술을 함께 하는 것이 어려움은 없었나요.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예술적 생각이 경영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또 경영을 하느라 세계를 다니며 그림구도나 스타일 같은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미술에도 영향을 줬고요.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으로 열정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이 내가 예술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강석진 회장의 작업실
-경영인으로서 생활도 바쁘실텐데요.
▲저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합니다. 30년 동안요. 아침에는 GE사무실을 가고 일 끝나고 퇴근하면 작업실로 출근을 했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는 순간부터 경영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립니다. 자정을 넘기며 새벽 1시 넘게까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경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머리가 맑아집니다. 다음날 아침 새로운 세상을 보면서 경영을 할 수 있어 그림은 나에게 원동력이 되죠.

-예술 활동이 경영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사람들은 그동안 쌓아온 경력에 의해 철이 드는데 그렇게 되면 생각이 고정관념 속에서 형식적인 틀에서만 움직입니다. 철 안 들고 늘 청소년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늘 호기심으로 가득한 생각을 합니다. 항상 호기심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반론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항상 창조적인 상상을 할 수 있고 창조적인 상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소년소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창조적인 상상을 해 그림을 그리면 그림과 그림 그린 사람과 동화가 됩니다. 경영하는 사람일 경우 20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면 훨씬 경영이 창조적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이 보여 지겠죠. 그래서 예술은 기업경영에서도 훨씬 미래지향적, 도전적으로 경영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었다’, ‘이정도면 제대로 균형이 잡혔다’ 생각을 하고 세상을 보면 고정관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경영도 새롭게 창조하는 생각으로 기업을 리드해 갈 수가 없습니다. 현상유지정도만 하는 것이죠. 그런 시각으로 예술가가 예술을 바라보면 예술이 나오지 않습니다.

-둘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하신다면.
▲경영하는 사람들은 경영에만 몰두해야 되고 예술 하는 사람은 예술에만 몰두해야 되고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스포츠만 해야 한다는 관념이 오랫동안 우리가 가져온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올인 해야 됩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오히려 경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예술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문화와 예술과 경영을 융합을 시켜서 어떻게 창조적인 경영을 해 낼 수 있을 건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예술적 감각으로 하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분야와 융합해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앞으로의 방향입니다. 둘 다 선택할 것입니다.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가 된 계기가 있었다면.
▲대학 졸업할 때 두 가지 선택이 있었어요. 하나는 우리나라 대표적 큰 기업(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회계부서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회계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었는데 제가 경제학을 전공해서 이쪽에 배치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 만해도 경제와 경영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어요.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는 그때 중견무역회사에 입사 추천을 받았어요. 당시 수출이 경제 성장에 가장 중요하고 정부가 수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을 때라 이 곳 중견 무역회사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저는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무역회사를 다니면서 기업인들한테 코리아 잉글리쉬를 하면서 외국기업 바이어들에게 주문과 수출품 원자재 수입하는 것을 도맡아 했고 당시 무역관련 업무를 한국은행에서 담당했는데 금융도 제가 하고 모든 무역에 관해서 혼자서 다했습니다. 무역 직원들도 몇 사람 안 돼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빠른 시간에 무역을 배웠고요. 무역회사를 선택한 것이 나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게 힘들진 않으셨나요.
▲처음 무역을 몰랐을 때 나에게 코치를 잘해주고 멘토링을 잘해주신 고마운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다른 무역회사 부장이었죠. 우리 회사도 명동 이었고 그 분 회사도 명동 이었으니 더욱 자주 만났습니다. 무역 업무는 그 당시 한국은행에서만 다루었으니 그분도 한국은행에 오가곤 했는데 이곳에서도 자주 보았어요. 바로 그 분이 대우를 만든 김우중 회장 입니다.


-무역회사를 다니시다가 GE(제너럴일렉트릭사)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나요.
▲무역회사를 다니며 모시고 있던 회장이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의 지인이 무역회사를 만들려고 할 때 지인의 청으로 무역의 도사가 되어 있던 나를 불렀어요. 그래서 무역회사 설립부터 공장을 만드는 것, 만드는 장비를 수입하는 것, 공장장 스카우트까지 28살 먹은 나이에 이것을 다했습니다. 공장이 다 지어졌을 때 몇 년 지나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무역 회사직원이 100명으로 늘었고요. 무역을 하면서 세계무대로 진출해 보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리 잡아 놓은 무역회사에 떠난다고 말을 한 후 미국 워싱턴으로 떠났습니다. 그때 당시 워싱턴에서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간 것입니다. 공항에 내렸는데 나이가 많은 어떤 분이 마중을 나와 있더라고요. 혹시 북한 간첩 아닌가 했죠(웃음). 근데 워싱턴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한국교민회장 스탠리 회장이라는 분이 모시고 오라고 마중을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스탠리 회장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짐을 챙겨서 호텔에 데려주고 스탠리 회장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저를 공항에 마중 나오게 됐는지를 물으니 미국에서 첨단 자동판매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무역회사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역회사를 운영할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무역 회사하는 동창에게 젊은 사람 중에 무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저를 추천해 수소문해서 찾아 온 것이라고 설명 하더군요.


제가 일단 공부하러 왔기 때문에 그 분이 워싱턴에 제가 공부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셨어요. 어느 날 10개월 뒤쯤 누군가가 전화를 했는데 예전 무역할 때 저를 알았던 뉴욕의 한 투자금융회사 회장 이였어요. 그분이 저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 회사에 아시아 사업부를 만들 예정인데 그 곳에서 일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탠리 회장에게 모든 것을 말을 한 후 투자금융회사 회장과 제가 같이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스탠리 회장은 ‘내가 자네가 필요해서 무역을 하자고 한 것인데... 내가 미국에서 20년을 살면서 이러한 파격적인 제안은 없네. 자네의 장래를 위해서 그곳에서 일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뉴욕으로 넘어가 투자금융회사 부사장 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들어가서 반도체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전자 회사 10등 안에 들어가는 큰 금융회사에서 합작회사를 만듭니다. 우리는 금융을 지원하고 그 반도체 회사는 기술을 지원하고요. 그것이 다트(DART MOUTH) 마우스 회사예요.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고 공장은 한국에 짓게 했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이니까요. 금융회사에서도 부사장, 새로 생긴 합작회사에서도 제가 부사장 직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월남전의 휴전으로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은 몰락했고 결국 반도체 사업은 철수 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쌍벽을 이뤘던 대한전선 설경구 회장으로부터 어려움에 처해 있던 전자제품 수출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그 때 설 회장은 저에게 모든 것을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전자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연구실을 만들어서 미국, 유럽에 있는 최첨단 전자제품을 전부 사서 한국으로 보내 모방해서 만들라고 했어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첨단 전자제품을 독자적으로 개발 했어요. 그리고 유럽, 불란서, 남아프리카까지 뛰어다니면서 시장개척을 했고 2년 만에 대한민국 전자업계 수출실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대한전선은 대통령상의 명예를 안았죠. GE(제너럴일렉트릭)는 우리의 미국시장 제일 큰 고객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6개월을 설득해서 GE제품을 OEM(거래선의 브랜드로 생산하는 체제)방식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성사시킵니다. 이 때 GE에서 저한테 아시아사업부를 새로 만들 계획이라며 맡아서 해줄 것을 요청 해왔습니다. 그래서 설 회장은 GE에게 저를 빌려주는 계약을 합니다. 소속은 대한전선이었고요. 이렇게 경영진을 빌려가는 일은 처음 일 겁니다. GE에서 일을 할 동안 아시아사업부 중 전략기획을 맡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GE사업을 한국에 투자 하고 합작회사도 만들고 공장도 만들고 기술 제휴 할 것을 GE경영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흐른 뒤 저는 한국 GE의 총책임자로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단 ‘이 모델을 한국에서 성공시키면 아시아전역으로 확산 하겠다’는 조건으로 한국 경영을 맡겼어요.


-그 후 한국 GE는 어떻게 경영을 했습니까.
▲이 때 GE가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합류를 하게 됩니다. 그 때 이미 한국에는 이런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고요. ‘잭 웰치’는 20년 동안 GE에서 경영을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예요. 제가 GE코리아 사장을 역임하고 잭 웰치가 GE회장이 됩니다. 잭 웰치 회장과 위기투합 해서 한국에서 하려는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지원을 받았어요. GE가 의료기기 합작회사를 삼성과 만들고 기술을 제휴하고 합작회사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두산중공업, 삼성테크윈 같은 회사와 기술제휴를 하기도 했죠. GE 전체가 세계화 할 때 한국이 이때 세계화의 모델이 된 거죠.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GE모델을 선호했습니다. 한국을 시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동반자로 보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파트너로 보고 서로 WIN-WIN 하는 모델 이였어요. 제가 다음 후임에게 넘길 때에는 GE코리아는 200배가 넘는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성공비결을 꼽는다면.
▲제가 GE에 있는 동안 저는 ‘사람 중심의 경영’을 추구했습니다. GE가 추구한 것이기도 하고요. 모든 사람들의 지식, 두뇌와 아이디어를 다 활용하는 경영을 했어요. 지식경영이라는 말을 지금 많이 쓰는데 그 때 GE는 지식과 아이디어를 다 활용하는 경영을 모토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되요. 상하 구성원이 완전 열린 소통을 할 수 있는 소통을 해야 합니다. 밑에 있는 사람을 존중할 때 모든 것이 소통되는 것입니다. 사람중심경영을 우리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지식을 활용하는 경영을 했습니다. 21세기에 반드시 필요한 경영입니다. 즉 창조적인 지식경영과 사람중심의 경영을 해야 합니다. 지식 생산성이 가장 높아지게 하는 경영 말입니다.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지식은 골동품입니다.

-우리나라 기업 경영은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기업경영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IMF이후 살아남기 위해 바뀌었는데 그 중에서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고 부채비율을 낮추는 방법과 조직에 모든 사람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활용한 창조 지식적 경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문제는 조직문화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CEO 컨설팅 그룹’은 어떤 회사입니까.
▲기업의 조직 문화, 리더십, 기업경영의 선진화, 이런 것을 자문해온 회사입니다. GE를 은퇴할 때 한국 전문 경영인들로 구성된 CEO포럼에 회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영인들 금융인, 산업분야, 벤처분야, 대학교수들 등 성공한 전문경영인들이 회원으로 되어있는 모임입니다. 여기서 초대공동대표를 했는데 회원들이 저에게 GE의 경영철학을 한국경영인들에게 전수하라는 책임을 맡겼어요. 근데 제가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 경영전문가이니까 같이 하자’해서 그룹이라고 칭하고 기업의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경영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젊은 경영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큰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실패를 몇 번하는 것이 절대 실패가 아니고 실패의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창업을 하거나 자기가 일을 맡았을 때 그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하고 모든 열정을 다 쏟으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월급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노동일 뿐 입니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재 중국은 경쟁 국가이기도 하고 시장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조직문화를 열린 조직문화로 만들어야 합니다. 즉 창조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서 조직 속에 있는 모든 구성원이 두뇌와 아이디어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이것이 기업의 가치창조를 극대화 시킵니다. 지식의 생산성이 극대화 되었을 때 기업의 가치창조(이익 극대화, 매출 극대화, 시장가치 극대화..)가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강석진 회장>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세계미술문화진흥협회 이사장
신미술회 부회장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CEO 컨설팅그룹 회장
(전) GE Korea 회장(198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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