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의 보조출연자들 일용직과 같은 대우 받아"

조해진 / 기사승인 : 2012-05-07 10: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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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진욱 한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 [일요주간=조해진 기자] 지난 9일 문화부청사에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영화산업노조와 (사)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 CJ E&M, CJ CGV 등 관련기관 단체들이 참석해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통해 노사정이 영화 산업 종사자의 고용복지를 위한 영화인 교육훈련 인센티브제도 확대, 4대보험 가입률 제고,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등을 긴밀히 협의해 나갈 수 있는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영화가 촬영되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상영된 이후까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들과 달리 고된 현장 상황을 보내고 영화의 구석구석 그들의 손길이 닿지만 주목받지 못한 스텝들이 촬영 현장 및 처우 개선을 위해 싸워온 것에 대한 조금의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기자는 지난달 23일 우리나라의 유일한 영화산업노조인 한국영화산업노조의 최진욱 위원장을 만나 영화 산업의 실태와 향후 개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최진욱 한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
- 전국영화산업노조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현장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분장, 미술, 운송, 등등 일하는 사람 전체 포괄하는 산업별 노조다. 인원은 2,700명 정도이고 영화산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노조다.

-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충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힘든 건 노동시간이다. 48시간, 72시간, 3-4일 밤새고 찍는 일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업무시간이 48시간 이상이라면 살인적이지 않나. 그리고 저임금과 임금체불. 수당이 너무 낮아서 생계를 보장하기 어려운 점이 큰 문제다. 또 적은 임금 수준에서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도 무척 힘들다. 임금체불은 보통 1년에 50건이 넘어간다. 만들어지는 영화는 100개 정도인데 안 만들어지는 영화들도 있으니까 따지면 전체의 20~30%정도가 임금이 체불된다고 보면 된다. 임금이 체불되면 문제를 삼았을 경우에만 대부분 합의를 통해 원금의 80~90% 받게 된다. 임금체불과 관련해 영화노조에 ‘영화인 신문고’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신고를 하면 회사와 중재를 하거나 싸우기도 하면서 체불된 임금을 받아준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임금체불 신고가 되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예산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에 바로 임금을 넣어 준다. 워낙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게 됐다. 영화를 찍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라면... 밥 때를 못 맞춰서 두 끼를 굶었던 적이 있었다. 밥을 주지 않았는데 후배가 저한테 "형 밥 언제 먹어요?"라고 물어보더라. 금방 먹는다고 후배에게 얘기했지만 결국 새벽이나 돼서야 햄버거랑 우유를 먹게 됐다. 거의 12시간 만에 밥을 먹은 셈이다. 밥을 못 먹어서 힘들었다기 보다는 그런 부분에서 마음이 상한다. 일을 하다보면 밥 때가 늦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밥은 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노조를 만들 당시 힘들었던 점은 노동조합 자체에 대한 편견이었다. ‘예술인들이 왜 노동자냐?’라는 그런 시선들이 힘들었다.

- 그동안 영화 스텝들의 처우는 어땠나. 배우와 달리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배우들은 티켓머니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계약 등에 대해 회사가 약속을 잘 지킨다. 그러나 스텝들 같은 경우에는 힘이 없다. 만약 영화가 흥행하지 않거나 중간에 도산했을 경우 가장 쉬운 방법은 제일 힘없는 인건비 부분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가 많다.

- 각시탈 드라마 사고에 대해 산재인정을 요청했는데... 그 전까지는 영화계에서는 산재처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나.
우리 노조는 영화 노조이지만 옛날과 달리 영화와 드라마 고용시장이 통합돼 드라마까지 관여를 하게 되면서 각시탈 드라마 사고에 대해서 우리 노조 측이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영화 스텝들은 다 산재처리가 된다. 드라마도 본디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본인들이 안 하는 경우 등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 각시탈 사고와 같은 경우를 예를 들 수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해 노조가 나선 이유는 보조출연자들이 대부분 일용직과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산재처리를 안하면 아주 저렴한 상해보험으로 처리하거나 위로금 정도로 해서 정리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보조출연 업체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방송사 등과 같은 원청업체에서도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서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원청업체(방송사)는 정부에서 지원도 해주는 등 공공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더욱 공영방송이나 공공기관에서 솔선수범해 최소한의 노동시간이든 4대보험이든 산해보장법에 준하는 노동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업무를 발주 해야 하는데 이들은 본인들의 예산을 위해 파견할 때 파견할 수 있는 제한적인 하청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제작 환경 때문에 먹이사슬의 제일 하층에 있는 보조출연자들은 임금도 낮은데 4대보험에 대한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번 각시탈 사고처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 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것보다 아주 기본적인 협약을 통해 공공기관의 성격을 지닌 원청업체에서 ‘이정도로 합시다’라는 기준을 제시해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즉 ‘사고 났으니까 알아봐라’가 아니라 산재통합재해 보상법에 따라 미리 기반을 구축해서 시스템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 최근 영화 산업 종사자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을 가졌다. 이번 협약으로 영화산업 환경 등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나.
우선은 스텝들의 삶이 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이번 이행 협약 안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훈련 인센티브제도'인데 이는 프랑스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제도로 1년에 지정된 시간(507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쉬면서 실업급여를 제공하며 훈련을 시킨다.
보통 실업은 몇 년 일하다 계속 쉬는 게 실업이지만 영화 스텝들은 3개월 일하고 3개월 쉬고 3개월 일하고 3개월 쉬고 하는 것이 반복된다. 일이 없는 동안 스텝들은 대리운전, 편의점 아르바이트, 방송 아르바이트 등 각종 알바를 뛰며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우리 노조는 지난 2004년부터 꾸준히 '훈련 인센티브제도'를 요구해왔다. 이 제도는 스텝들이 일을 하지 않는 기간 동안 영화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 및 컨텐츠 개발에 대한 교육·훈련을 시키면서 연구를 돕고 이를 일종의 ‘일’로 보고 금액을 지급한다는 개념이다.
우리 노조는 교육·훈련을 통한 인센티브를 받아 스텝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2004년부터 주장해왔다. 마침내 2012년이 되어 협약을 체결하면서 우리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게 됐다.

- 영화 노조가 정부나 사업체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내시장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훈련 인센티브제도'와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을 보면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당연히 일자리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하이패스가 만들어지면서 매표소 직원들이 없어지는 것처럼 영화계도 HD가 만들어지니까 필름 갈아 끼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것,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것이 영화 산업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의 기본 아닌가. 일자리 창출 모델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이냐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훈련 사업'인 것이다. ‘인센티브’라고 해서 생계형 보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옛날 기업이 일자리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합의가 가능한 범위였다.
예를 들어 지역 일자리 창출을 보면 영상교육 같은 경우가 옛날에야 특수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영상교육이 필요한 곳에 쉬고 있는 스텝들이 학교로 찾아가 탄련적이고 실제적인 교과과정을 교육하고 이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스텝들 입장에서는 (본 직업과 연관된) 일자리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또한 해외진출 사업에서도 국외 나가는 것이 아니고 외국 자본 등이 한국에 들어와서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우리 스텝들이 그 환경에 맞출 수 있도록 만든 뒤 고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이제 기업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가적으로 봤을 때 전체가 사는 길은 노동자가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물론 영화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퇴임이 가까웠을 때 지지율이 87%에 육박했던, 전 세계에 역사상 가장 행복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쓰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고 부자들에게 돈을 쓰는 것은 투자라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룰라는 빈곤퇴치 운동을 할 당시 어려운 빈민들에게 수당과 복지혜택을 주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는 책임을 주고 혜택을 줬다. 이는 시장경제에 반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대안이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도, 찬성하는 쪽에서도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브라질은 수천만 명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고 경제 8위로 성장했다. 지금은 미국도 유럽도 이 체제를 대안으로 삼고 있다. 교육·훈련, 책임을 지우는 복지를 통해 선순환 시키는 것이다.
브라질과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 교육에 투자했지만 우리나라는 노동에 투자해야 한다. 노동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고용되지 못하면 놀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시 본업과 연관성을 가지고 유지할 수 있는 제도 안에서 먹고 살 수 있는데 도움이 되고 산업 자체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향상할 수 있는 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지 않나. 국정을 비롯해 기업들도 마인드를 바꿔야한다.
하나 더 덧붙이면 영화 산업이 너무 작고 자금이 취약해서 R&D라는 것이 없다. 때문에 그 역할을 기관에서 해줘야 하는데 이런 것들도 교육·훈련을 통해 개선이 가능하다. 국내시장은 어차피 한계가 있고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훈련 인센티브제도'는 생계도 보전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에 일자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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