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다국적기업 조세피난처·역외금융 네트워크 최대 수혜자”
“적극적 대응 방안·국제기구와의 협력 통한 ‘한국식 정의’ 필요”
[일요주간=이희원 기자] 2012년 국제NGO인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는 1970년도부터 약 40여 년간 한국에서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이동한 자산이 총 7,790억 달러(약 900조원)로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라는 보고서를 내놓아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201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70%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관세청은 조세피난처에 등록된 페이퍼컴퍼니가 5,000개에 육박했고 조세피난처 7개 지역에 34개 대기업이 설치한 현지 법인은 무려 160여 곳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900조 원. 한국의 한 해 예산이 342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미국 역시 애플과, 구글과 같은 글로벌 IT기업들도 조세피난처를 통한 절세가 이뤄진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5월 말, 탐사보도언론인협회인 ICIJ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53, 도서출판 시공사 대표)씨를 포함해 정재계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일요주간>은 절세와 탈세, 그 명확하지 않은 경계에서 선 재벌기업(대기업)들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과정과 정의 그리고 재벌의 탐욕으로 얼룩진 조세피난처에 대해 조세정의네트워크 동아시아 지역 이유영(43) 대표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언론에서 조세정의네트워크(TJN)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가
▲조세정의네트워크(TJN)는 2003년 영국 의회에서 설립된 국제 NGO단체로 역외금융과 조세회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됐다. 주로 하고 있는 일은 국제금융의 투명성을 높이고 역외탈세, 금융비밀주의 등으로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자는 데 목적이 있다. OECD등 국제기구를 통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만 이를 직접 추적에 나서진 않는다. 현재 전 세계 40여 개 국에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미국·영국·네덜란드·인도·스위스 등 10여 개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주로 금융전문가·경제학자·변호사·회계사·기자 등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친(親)시장주의자로 보고서와 토론회 등을 통해 주장을 펼친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지역(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는 아직까지 회원은 단 한명(이유영 대표)이다.
- 번역한 도서 보물섬(Treasure Island)를 보니 조세는 물론 금융규제·상속 규정 등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조세피난처’라고 정의했다. ‘재무의 천국’이란 의미로 지배 엘리트들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편취할 수 있는 사업 무대라고 설명했는데 규제 움직임은 언제부터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언급이 자제된 것은 사실이다. 국제기구들도 외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 자체적으로 관리를 해왔지만 유명무실(有名無實)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미국 의회는 물론 OECD에서도 공격적인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자료를 이용하면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동안 ‘역외탈세’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비용절감을 하는 측면으로 해석해왔지만 결국 이는 자국 국민들의 조세 부담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왔고 기업이 벌어들인 부(富)가 국내로 유입되지 못해 자국 경제의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확인되면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명확한 시점을 제시하긴 힘들지만 리먼 브러더스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시발점이 된 것으로 본다.
당시 글로벌 경제위기로 미국의 경우 구제금융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구제금융을 통해 금융사들을 일으켰더니 이미 조세피난처를 통한 절세로 이들을 통한 과세소득이 없는 게 확인됐다. 과거, 역외금융이 국제교역의 활성화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무역 활성화와 국가재정확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면 현대에 와서 국가 재정을 좀먹는 원인으로 돌아왔다.

▲이는 러시아나 중국을 포함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수치다. 조사대상은 180개국으로 이 가운데 한국이 3위를 한 것이다. 이는 한국보다 앞선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나라들은 이미 글로벌 무대를 자신의 경제영역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수치에 포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실 수치를 산정하는 것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경제우방국들 자료를 살펴보면 2011년 EU역내 보고서에서 ‘역외탈세’로 인한 EU의 전체 GDP의 2~3%에 해당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러시아의 경우 연간 예산의 절반이 넘었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예산처 자료에도 역외로 탈세된 돈(해외에서 과세하기로 된 금액)의 규모가 1조7,0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조세피난처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
▲국제법상으로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국제기구와 전문가들 각국 별로 기준은 물론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내리는 정의는 공격적이고 포괄적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국가가 글로벌 경제의 건전성을 무시한 채 터무니없이 낮은 세율과 금융비밀주의를 앞세워 비즈니스를 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체제를 유지할 경우 곧 조세피난처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국제기구인 OECD의 경우 가장 심한 경우 Black List로 규정하지만 대표적인 조세피난처 국가인 버진아일랜드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만큼 허술하고 모호하다. 이에 기준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세율을 비롯해 공시기준, 기업운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기업들의 조세 피난 방법이 궁금한데.
▲예를 들면 기업들의 분식회계를 생각하면 된다. 방법은 다양하고 복잡해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장부를 조작해 일정부분을 빼내 이를 조세피난처 국가에 다시 보관하는 것이다. 페이퍼 컴퍼니를 보관 창고로 써 국내로 유입될 때는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
조세피난처는 탈세는 물론 금융비밀주의를 앞세워 자금의 출처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고 은닉하며 이를 통한 변칙적인 증여와 상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싱가포르의 트러스트 컴퍼니를 통해 실질적인 소유권을 숨기고 증식, 탈세하는 유형은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싱가포르는 ‘트러스트 컴퍼니’ 서비스계의 중심이다. 일종의 대행업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공기업의 매각 과정에서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공적 재산을 싼 가격에 매입해 비싸게 팔 수 있어 이를 미리 입수한 전문가들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검은 머리 외국인’의 입장으로 참여, 이익을 취하게 된다. 자금이 세탁돼 유입될 경우 그 추적은 더욱 힘들어진다.
-미국에서도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의 탈세로 시끄럽다. 미국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애플의 경우 미국 언론사들의 추적이 시작된 건 오래전이다. 그 실체가 모호하다 최근 미 상원의원 청문회를 통해 애플의 역외탈세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애플의 경우 판매 매출의 상당부분이 애플 아일랜드 법인으로 송금된다.
애플의 본사는 알다시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이고 개발은 모두 미국에서 이뤄지고 이에 기여한 바가 없는 아일랜드 법인들의 이들의 개발권, 즉 ‘지적재산권’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애플 측은 이를 통해 절세가 이뤄졌다. 아일랜드가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미국계 기업인 구글과 애플에 12.5%인 최고구간 세율을 2%로 협상해줬다는 게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
상원의원 자료에서 밝혀진 바를 보면 최근 3년 동안 약 350억 달러에 육박하는 세전소득이 미국을 제외한 제3국을 통해서 매출이 발생됐다. 그런데 애플이 납입한 세금의 총액은 2,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세율로 따지면 0.06%다. 2%의 세율협상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은 아직 이를 ‘탈세’다, ‘절세’다에 대해 명확히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지적재산권이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부분의 IT기업에 해당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다국적 국가들이 비슷한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절세에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제 잘못된 글로벌 생태계를 바로잡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재벌기업 등 대기업들은 ‘역외탈세’가 아닌 ‘절세’, 즉 조세의 최적화라고 말한다. 과연 탈세와 절세의 경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애플의 경우를 볼 때 이를 불법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적극적인 절세행위를 통한 조세의 최적화라고 말하기로 한다. 기업의 경우, 비밀에 붙이기 때문에 그 내막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합법적 절세’라는 표현 보다 ‘공격적인 절세’ 혹은 ‘역외체제를 통한 조세체제 오남용’ 등의 다른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절세가 합법이고 탈세가 불법이라는 경계점 역시 아직까진 모호한 상태지만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조세피난처에 대한 타국과 국제기구들의 대응방식은 어떤가.
▲ 미국의 경우 50,000달러 이상 역외 지급 등 구간을 10,000달러부터 시작해 철저하게 정부기관(재무부)에 신고하도록 의무규정을 만들었다. 한국 역시 ‘역외재산신고제’를 두어 대응하고 있다. 이는 역외 재산도피를 처벌하는 데는 쓸 만한 규정이다. 이를 제외하고 OECD등 국제기구에서 적극적인 절세행위를 막기 위한 협정당사국 간 정보교환을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해진 상황이다. 조세피난처로 규정된 국가나 체제와 갈등이 발생 해 양자 간 또는 다자간 공조나 실효성 있는 조세정보교환협정의 빠른 도입이 어려워 질 수도 있다. 참고로 현재 OECD 국가 중 조세피난처 또는 도피처를 리스트 화해서 법령에 규정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양성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 한국은 미국과 영국 등 금융선진국들의 규제방안을 그대로 답습해온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역외재산신고제’ 등도 이들 국가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역외탈세’에 대한 미국과 유럽 등의 적극적인 대응방안들이 공개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한국 역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법률적인 규제는 물론 OECD 등 국제기구를 통한 협의에 동참해 한국식 정의를 실천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특정외국법인 또는 국외 특수 관계인 소재지(Tax Jurisdiction)에서 발생한 소득이나 머물고 있는 자산이 파생한 소득에 대해 이연을 전면적으로 불허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또한 이자소득 등 passive income의 역외 송금과 관련해서는 국내외 금융기관 등이 실소유주 정보를 관련 당국에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해 신고로 일부 걸러낼 수 있어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원천과세를 집행, 이를 후일 환급하는 방법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 중인 ‘입증책임 전환(역외계좌신고제를 준수하지 않을 시 벌금 및 과태료 부과)제도의 활용도 고려할 만하다.
-끝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경계하는 시선에 대해서 한 말씀 해 달라.
▲한국이 타 글로벌 국가들의 조세피난처 활용안과 비교할 때 뚜렷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사적 이익 편취’를 위해 조세피난처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기업의 이익이 아닌 재벌총수 일가 혹은 임원진들의 이익 편취를 위한 수단이라면 이는 한국 경제를 좀 먹는 원인이다. 이게 범죄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조세피난처(Tax haven)란?
조세피난처란 뜻은 법인의 실제 발생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으로서 법인의 부담세액이 실제 발생소득의 15/100 이하인 국가나 지역을 말함. 즉, 법인세·개인소득세에 대해 전혀 원천징수를 하지 않거나, 과세를 하더라도 아주 낮은 세금을 적용함으로써 세제상의 특혜를 부여하는 장소를 가리키며 이들 국가나 지역의 경우, 세제상의 우대뿐만 아니라 금융거래의 익명성 등이 철저히 보장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것이 세제혜택 측면에서는 기업 경영에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할 경우 금융범죄 등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1970년 제주 출생.
1996년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 칼리지 졸업. 인디맥 뱅크 리서치 애널리스트.
2006년 언스트앤영(ERNST&YOUNG) 경제 컨설턴트.
2012년 브리오컨설팅 그룹 대표(현).
2012년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시아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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