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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변호사는 냉정하고 냉철하게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조우성 변호사는 법정을 진솔한 인생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며 변호사는 의뢰인의 동반자이자 조력자라고 표현한다.
18년 동안 수많은 사건 속에서 조 변호사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화해하는 법을 배웠고 그 이야기들을 엮어 최근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조 변호사는 35개의 이야기를 통해 소송에서 이기는 법이 아닌 잊고 있었던 휴머니즘과 소통, 공감을 통한 진정한 화해와 힐링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일요주간>은 조우성 변호사를 만나 소송의 뒷이야기와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이 출간과 동시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 책이 나온 지 80여일 만에 8쇄를 찍었다. 대중을 겨냥해 기획을 한 책이다 보니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 지난해 5월 큰 사건을 2건이나 패소하고나서 무척 힘들었다. 정말 변호사로서 적성이 맞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 예전에 열심히 소송했던 사건들을 블로그에 2편 정도 올렸는데 그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게 되면서 책을 쓰게 됐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 생각만큼 글 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지난 18년간 변호사 생활만 하다 보니 글도 변호사 문체 같이 딱딱했다. 출판사에서는 수필과 에세이처럼 사람에게 여운을 주는 문체로 바꿔달라고 요구했고 매번 숙제를 받는 심정으로 수필가들의 책을 필사하면서 문체 바꾸는 작업을 3개월 넘게 했다. 본업을 할 때는 변호사 모드로 갔다가 글 쓸 때는 수필가 모드로 갔다가 쉽지 않았다.
-뚜벅이 변호사라고 불리는데.
▲ 1997년 변호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온라인 활동을 많이 했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법조인이 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초년 변호사로서 수필식으로 글을 썼는데 조우성 변호사라고 불리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 필명을 만들려고 고민했다. 당시 차가 없어서 ‘뚜벅이’였다. 그래서 ‘뚜벅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차도 생겼지만 뚜벅이라는 말과 이미지는 제가 지향하는 바를 위해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좋은 의미를 내포한 것 같아 지금까지 필명으로 계속 쓰고 있다. 서민적이면서 일관되고 서두르지 않는다는 그 의미가 좋다.
-변호사님이 보는 법정의 모습은 어떠한가.
▲ 누군가와 서로 의견다툼이 있다고 해서 법정까지 가진 않는다. 법정까지 간다는 것은 감정이 격앙된 상태의 마지막 단계다. 공격하는 자, 공격받는 자도 상당히 상처받아 있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런 변호인들과 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 그렇다. 제가 겪은 18년 동안 상처받은 사람들과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승소, 패소 못지않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보며 소송을 이끌어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호사 생활 초창기에는 무조건 승소해야하고 승소가 최선의 목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 모든 사건에서 승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에 따라 승소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승소를 못하면 변호사로서 아무것도 못해주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저는 생각이 다르다. 변호사는 마치 로마시대 검투사처럼 돈 주고 싸우라고 해서 싸우는 식의 일을 하청받아 하는 기능직이 아니다. 깜깜한 동굴 속에 갇힌 의뢰인이 탈출구를 찾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동굴에서 같이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박쥐를 만나기도 하면서 탈출구를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다. 소송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 때 왜 졌는지 알려주고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위로하고 같이 가는 것이다. 동반자로서의 변호인이다. 그러면 변호사는 단순한 기능직이 아니고 한 차원 높은 멘토나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잘못됐다, 나쁘다고 생각되는 의뢰인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의 변호도 맡아서 해본 적 있는가.
▲ 나이가 들수록 선과 악, 흑과 백보다는 이분법의 중간인 그레이존(Grey Zone)이 자꾸 많아지는 것 같다. 저는 성선설, 성악설 보다는 약하다는 뜻의 약(弱)자를 쓴 성약설을 주장한다. 사람들이 너무 약하단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 휘둘리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재판을 할 때 보면 양쪽 얘기를 듣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자기 식대로 상대를 판단하고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 보지 않으면 상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의 토대, 백그라운드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상대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로서도 제가 가장 주의하는 것은 절대 속단하지 말고 성급하게 판단하게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서 그 행동을 했는지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상대가 계속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그 사람은 궁지로 몰리지만 마음을 열고 받아주면 그 사람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나다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사람이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지 않는가. 불경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억울함을 굳이 애써 풀려고 하지 마라’는 구절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억울함을 당했을 때 억울함을 풀려고 계속 뭔가 하다보면 오히려 일이 꼬이는 경우를 많이 봤다. 최근에는 한 의뢰인이 억울하게 받지 못한 돈을 받기 위해 여러 변호사를 찾아다니다가 저를 찾아왔다. 그 분의 얘기를 다 들어보고 “당신은 정말 할 만큼 했군요. 저라면 그렇게까지 못할 것 같은데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놓아도 됩니다. 이제 앞으로 가십시오”라고 진지하게 얘기하자 그 의뢰인은 눈물을 흘렸다. 변호사들은 반드시 솔루션을 제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솔루션이 없을 때는 없다고 포기를 선언해주는 것이다. 이 관계는 단절시키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의뢰인의 법적 변호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 조력자 같은 부분도 많이 느껴진다. 소통하는 부분에서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느껴지는데.
▲ 사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듣는 것보다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다. 사람과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뭘 잘못했는지 반추해 보면 잘 듣지 못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답을 자기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의뢰인들이 상담을 하려고 찾아온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가 알고 있는 답의 확인을 구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예전에는 제 자신이 똑똑하고 법률가니까 답을 알려주려고 했다면 지금은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 사람의 답을 들어보고 맞으면 동조해주면 되고 틀리면 자연스럽게 왜 틀렸는지 얘기하면서 끌고와야만 의뢰인과의 관계가 잘 풀린다. 모든 답은 의뢰인 속에 있다. 그걸 듣고 어떻게 수용하는 지가 중요하다. 철저히 직업적인 경험 속에서 배웠다.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나 사건은.
▲ 이 책 3부에 나오는 ‘적으로 보지 마라, 그도 상처받은 한 사람이다’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제 고문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소송광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결국 그분과의 소통을 통해 그 분과 친구가 돼서 오히려 제가 그 분을 도와드린 스토리다. 귀를 열어두고 그 사람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인지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또 1부 ‘당신은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라는 제목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사건 승소의 가장 중요한 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해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긴 부모의 마음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1부 ‘유언장에 숨겨진 할머니의 진심’도 기억에 남는다. 살아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더 차지하려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 못하게 된 할머니가 오히려 유언장에 대한 설명을 제게 꼼꼼히 듣고 가서는 유언장의 중요한 부분을 작성하지 않아 무효로 만든 사건이다.
-누군가를 울게 했던 사연이 있다면.
▲ 그동안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서 대기업을 위한 소송을 주로 하다 보니 계약서를 부실하게 썼거나 다른 법적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중소기업에게 승소한 사례가 많았다. 승소하긴 했지만 치열한 법정다툼 끝에 중소기업들이 패소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매우 아팠다. 중소기업들은 아무래도 법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패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쓰게 됐고 나아가 대형로펌인 태평양에서 나와 기업분쟁연구소(cdri)를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대형로펌인 태평양에서 나와 기업분쟁소를 열었는데 안정된 곳에서 새롭게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 1997년부터 일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저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곳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황보영 변호사님이나 김인섭 대표 변호사님은 태평양에서 저의 멘토였고 많은 힘을 주신 분들이었다. 태평양은 제 친정이자 많은 자양분을 준 곳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성향 탓에 3년 전부터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꿈꾸다 7월 1일 기업분쟁소를 열었다. 기본적으로 상대적 약자에게 포커싱이 돼있다. 이제는 좀 더 작은 사람들 서민들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저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태평양을 나오게 됐지만 앞으로 같이 하게 될 일들도 많아 아름다운 이별이 아닌 동행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 이번에 쓴 책의 메시지는 경청과 공감이다. 정말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얘기를 잘 경청하지 못한다. 경청은 기울일 경(傾)자를 쓴다. 몸을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너무 거창한 것도 없이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심있게 들어준다면 그 동안의 갈등이 해결되고 상처받은 서로의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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