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대비매뉴얼 조차 없다”…허울뿐인 ‘국가재난안전망’ 구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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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7시 17분쯤 대구시 중구 대구역 부근에서 KTX와 무궁화 열차가 추돌 및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Newsis |
이에 정부는 재난에 대비한 통신망 일체와 매뉴얼 개발과 교육 등을 골자로 한 ‘국가재난안전망’ 구축사업을 계획, 추진했었다. 이후 10년이 지난지금까지도 ‘국가재난안전망’ 구축사업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정권이 3번 바뀌는 동안 크고 작은 안전사고와 함께 정보통신부에서 소방방제청으로 다시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부처 간 떠넘기기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불특정다수를 향한 심심찮은 테러소식을 접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국가재난안전통신망’구축사업이 다시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국가재난안전망’ 구축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재난망 예비 타당성’ 조사결과가 나와야 정상적인예산편성이 가능해지는데, 결과를 지난 6월까지 내놓겠다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8월까지도 힘든 상황"이란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가 사회안전망 구축 사업을 차일파일 마루는 사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한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대구역에서 무궁화호열차와 KTX열차가 충돌한 것이다. 철도운행 매뉴얼에 ‘무궁화호 열차는 역 관제실로부터 출발신호를 받은 뒤 여객전무가 무전으로 기관사에게 전달하면 출발’ 하도록 되어 있어 사고원인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윤석기 위원장은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재난안전망’ 구축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추진하지 않았다”며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이후 10년을 뒤돌아보면 국가재난에 대한 어떠한 매뉴얼도 없다보니 법적피해보상 이외에는 말뿐이지 이뤄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일요주간>은 지난달 30일 윤석기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구지하철참사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난지금 피해자와 유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우리사회 안전망의 현주소를 되짚어봤다.
- 10년 전 대구지하철참사에 대한 악몽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 같은데. 현재 심경을 듣고 싶다.
▲ 2003년 2월 18일 오전9시 53분 중앙동(대구광역시 중구 성대동)역 승강장에 도착한 1079호 도시열차에서 방화테러로 인한 화재가 반대편 승강장에 뒤이어 도착한 1080호 도시열차에 옮겨 붙어 192명의 사상자와 148명의 부상자 낸 인재 중에 인재로 대한민국사회에 반사회적인 테러의 무서움을 최초로 인식시켜주었던 지하참사였다.
열차기관사들의 엉터리대응의 결과였다. 방화테러가 일어났던 1079호 열차의 기관사는 위기대응을, 그러니까 본부사령실에 화재상황을 알려 뒤이은 열차진입을 막고, 열차 내 방송을 통해 안전한 승객대피를 유도했어야 했다. 그런데 열린 출입문으로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과 함께 도주해버렸고, 본부사령실은 이런 기관사의 오판을 대처하기위해 설치해 놓은 ‘화재경보기’의 화재경보신호를 무시해버렸다. 더욱이 뒤이어 승강장으로 진입했던 1080호 열차기관사는 화마에 휩싸인 1079호 열차와 무전을 시도, 응답이 없자 이같은 사실을 본부사령실에 보고하고 ‘기다려라’는 지시를 따르다 불길이 옮겨 붙어 열차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모든 객차의 출입문을 개방, 승객들의 대피를 도우라’는 사령실지시를 무시한 채 기관실 마스터키를 챙겨 도주했다.
이와 같은 상황들로 인해 1080호 열차에 갇히게 된 142명 승객들 대부분이 화마와 유독가스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 위기상황에서 기관사들이 상식이하의 행동을 한 이유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 502명 사상자에 부상자 937명을 낸 대표적인 인재사고인 ‘삼풍백화점붕괴사고(1995년)’나 ‘태풍루사(2002년)’를 겪었음에도 역대정부는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안전을 강조해 왔을 뿐 테러나 재난에 대처하는 매뉴얼 하나 재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기사관사들 또한 그에 준하는 훈련을 한번 받은 적이 없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 아닌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교통공사다. 당시 교통공사는 안전은커녕 오히려 인력을 감축해 열차를 ‘1인승무제’로 운행했다. 만약 열차 앞뒤로 2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2인승무제였더라면 기관사 혼자 허둥대다 악화된 사태에 생존본능이 발동, 도주하기보단 보다 더 올바른 판단에 따른 행동을 했을 것이다.
- 그 외에 사고를 키운 다른 원인을 꼽는다면.
▲ 구급대원들과 경찰, 소방대원들의 인명구조 및 화재진압을 지연시켰던 무선통신망의 혼선과 불쏘시개가 되어 지하철을 완전연소 시켜버린 ‘난연성내장제’를 우선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그리고 소방대원과 구급대원의 착오를 들 수 있는데, 유독가스를 뿜어져 나오는 중앙로역 출구진입만을 고집하기보단, 900미터 떨어진 대구역을 통해 진입을 시도했다면 넉넉잡고 20분이면 인명구조 및 화재진압을 시작했을 것이다.
- 당시 대구지하철건설본부 규격서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 당시 불쏘시개처럼 완전연소 되었던 전동차는 93년 9월 한진중공업에서 객차 당 6억 원에 제작 생산한 것으로 대구지하철건설본부 규격서 250페이지에 표기된 ‘차체구조는 불연성사용을 원칙으로 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난연성구조로 할 수 있다’는 화재관련규정에 의해 난연성내장제를 설치했다. 불가피할 경우가 결국 배 차이가 나는 돈이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을 보면 대구시와 대구교통공사, 대구시의회는 시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한 채 전시행정으로 선전할 겉만 번지르르한 값싼 전동차구입하기 급급했던 것이다.
- 1년 뒤 홍콩에서 대구지하철참사와 유사한 화재사고가 일어났다는데, 결과는 달랐다.
▲ 그렇다. (홍콩에서도) 대구지하철 방화 테러와 유사한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부상자14명의 피해를 냈을 뿐이다. 문제의 홍콩의 전동차는 불연성내장제를 설치한 전동차로, 제작 생산한 회사가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의 인명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중 하나인 난연성내장제전동차를 1993년 대구시에 납품한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대우와 현대가 통합한 주)주식회사 로템이란 것이다. 이는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돈벌이 커넥션이었다. 오죽했으면 조사에 참여했던 일본소방청관계자가 “일본지하철 의자는 잘 타지 않는데 대구지하철은 형체까지 없어진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한탄을 했겠는가.
만약 한진중공업에서 불연성전동차를 권했고, 대구시가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해 이를 받아드려 ‘불연성내장제’를 시설한 지하철을 건설했다면, 그에 앞서 응급구조통신망을 통일했었다면, 그에 앞서 지하철 같은 공공시설 관계자들을 상대로 위기응급대응훈련을 의무화시켰더라면 2003년 2월 18일 같은 방화테러대형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대구시의 사고처리는 어땠나.
▲ 어이없게도 대구시는 초창기부터 사건의 많은 부분들을 축소하려했다. 사고 다음날 육군50사단을 동원 완전 연소된 전동차 안을 깨끗하게 물청소했으며 이틀 후 200여명의 실종자신고를 뚜렷한 설명도 없이 73명으로 축소 발표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흥분한 실종자 가족에게 유품을 보관했다고 한 안심기지창에는 전동차안의 모든 것들을 마구잡이로 긁어다 퍼 부어 놓은 쓰레기더미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에 실종자가족들이 유품을 하나라도 더 찾을 요량으로 중앙로역에서 안심기지창까지 한 걸음 한걸음 확인했으며, 결국 안심기지창에 쓰레기더미 속에서 타다 남은 주민등록증을 포함한 많은 희생자들의 유품과 지금도 몸서리가 처질정도로 처참하게 불탄 시신 한구를 찾아냈다. 다른 무엇보다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대구시가 가발이라고 한 머리카락으로 추정되는 상당량의 털 뭉치와 잿더미 속에서 찾아낸 한바가지나 되는 사람손가락마디만한 뼈 조각들이다.
- 사망자나 부상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 대구시는 사망자에 대한 보상으로 일인당 2억 1200만원씩을 지불하였고 부상자에 대한 보상은 법에 근거해 차등지급했다. 부상후유증치료에 대비해 대구시가 관리하기로 했던 ‘후유장애기금’또한 지방조례까지 바꿔가며 일괄지급 했다. 그러나 방화테러의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위한 추모공원조성, 위령탑건설, 추모기념관건립, 안전재단설립 등의 약속은 10년이 지난 현재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상당수의 생존자들과 사망자가족들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대구시는 “법대로 보상을 마쳤다”는 오리발을 내밀어 왔을 뿐이다.
- 2009년 1월, 완공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설립으로 모든 요구사항이 수용된 것 아닌가.
▲ 아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로 대구시가 짊어질 ‘안전 불감증’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한 수단으로 운영하는 시설일 뿐,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은 손바닥만큼도 없다.
희생자대책위는 2003년 3월 31일 중구 수창공원을 시작으로 3군데의 추모공원 조성 부지를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쫓겨 다니며 봉분묘에서 납골묘로, 수목장으로 모든 걸 대구시에 양보해왔다. 추모공원조성, 위령탑건설, 추모기념관건립, 안전재단설립 등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결국 추모공원이란 이름대신 시민안전테마파크로, 위령탑 대신 안전상징조형물로, 수목장은 주민반발을 염려하여 시민안전테마파크가 건설될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하고, 완공되면 수목장을 진행, 공원이름을 2.18시민안전테마파크라 명명하기로 대구시와 이면 합의를 했다.
- 그런데 대구시가 이면합의를 부정하고, 경찰에 고발을 했다.
▲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희생자대책위원회는 대구시 관계자를 비롯해 소방서와 경찰서 관계자들이 CCTV를 돌리고 지켜보는 가운데, 대구시와의 이면합의 한대로, 가로, 세로, 폭 1미터씩 파서 29분의 희생자유골을 묻고, 애초 모습대로 복원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구시는 “유골을 암매장했다”며 동부경찰서에 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본인과 간부 두 명을 고발(2011년1월18일)해 본인이 자연공원법위반으로 벌금100만원을 선고(2012년2월22일)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자연공원법, 장사법 모두 무죄판결(2013년 2월 7일)을 내려졌고, 현재는 항소심에 불복한 대구시가 대법원에 상고(2013년 2월 13일)를 한 상태이며, 희생자대책위 또한 수목장 이면합의 사실보도 및 대구시의부도덕성을 낱낱이 보도 방영(2013년 2월 24일)한 ‘KBS취재파일4321’내용을 토대로 김범일대구시장 이하 16명을 명예훼손 및 무고로 고소한 상태다.
-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참사 방화범에 대하여 설명해 달라.
▲ 우선 용어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참사’는 방화테러로 인한 참사였던 만큼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당시 정신전문가들의 분석한 자료를 빌리자면 방화테러범 김대한(57세. 대구시 서구 내당동)은 테러리스트도, 간첩도 그렇다고 지하철에 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운수업에 종사하며 평범하게 살다 뇌졸중(중풍)으로 쓰러져 한방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불행이도 지체장애(2급)인이 되었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병원을 향해 의료사고를 주장하며 공격적인분노를 표출해오다 심한우울증을 앓게 된 남성이었다. 이 우울증이 악화되어 신변을 비관한 자살을 위해 음료수병 2개의 휘발유를 구입해 지하철 탑승, 중앙동역에서 자살을 하기위해 라이터를 켜는 자신을 막는 승객들에게 분노를 표출, 방화테러를 자행한 것이다.
- 참극을 부른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됐나.
▲ 검찰은 김대안에게 ‘현존전차방화 치사상죄’로 사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김대한이 처해 있던 상황을 정상참작,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망자 대다수가 방화에 따른 결과 보다 대구지하철 측의 잘못된 대응으로 숨진 정황을 인정한 것인데, 김대안은 진주교도소에서 1년을 수감생활을 한 뒤 지병악화로 사망했다.
‘업무상중과실치사상죄’로 구속되었던 1080호 열차기관사는 금고 5년 형을, 1079호 열차기관사와 화재를 통보받았던 관제사에겐 금고 4년 형을, 3명의 다른 관계자들에겐 책임 경중에 따라 각기 금고 1년 6개월에서 3년을, 역무원과 시설책임자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불쏘시개 내장제전동차를 건설을 계획하고 사인한 대구시장을 비롯해 대구교통공단, 대구시의회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은 권력층은 없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방화테러로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지난 8월 31일 동대구역에서 또 열차충돌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를 빗대어 대구시가 강조해 온 안전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명백히 들어난 것이다. 그리고 충돌사고 후 차량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이 철길을 따라 대피하는데 철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응급대응을 하지 못했고, 사고현장을 보존, 사고이유에 대하여 철저하게 조사해야함에도 정상적인 열차운행을 이유로 복구를 해버렸다.
10년 전 ‘대구지하철방화테러참사’ 사고수습과 너무나도 똑같은 것이 아직도 지하철이나 철도, 버스, 교량, 건물에 대한 부분적 재난대비매뉴얼조차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사고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와 처별을 해야 하고, 지금부터라도 재난안전망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대구시는 ‘대구지하철참사’란 용어를 써가며 방화테러로 인한 비극적인 참사를 왜곡할 게 아니라 ‘대구지하철방화테러’ 희생자 및 부상자들을 위한 추모공원과 안전재단설립 요구를 하루라도 빨리 수용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법이 허용한 최대한의 보상을 이미 한 상태이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는 대구시도 돕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딱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완공 운영되고 있는 만큼 추모공원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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