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 “집념으로 일궈낸 50년 자동차 인생을 논하다”

이희원 / 기사승인 : 2013-09-03 10:36:48
  • -
  • +
  • 인쇄
[특별한 만남]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 소장 ‘쇠귀신’ 자동차에서 생활의 필수품이 된 자동차
유구한 역사의 토대 자동차 박물관 부재 안타까워

▲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 소장

[일요주간=이희원 기자]
한국자동차 역사의 산 증인. 그 누구보다 방대한 내용의 자료를 소유해 웬만한 자동차 전문가들은 명함을 선뜻 내밀기 어려운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 소장이다. 남들보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영문학과 학생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그리고 자동차 연구가가 된 전 소장은 고희 (古稀)를 훌쩍 넘겼음에도 ‘자동차’와 관련된 얘기를 나눌 때는 어느 새 스무 살의 열정을 지닌 청년으로 돌아간다. 2년 전 자신의 50년 자동차 인생을 정리한 책, <고종, 캐딜락을 타다>를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요주간>은 전영선 소장을 만나 자동차를 향한 열정과 그에 얽힌 자동차 인생사, 그리고 한국자동차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봤다.

자료 수집광 ‘50년 사’

1902년 ‘움직이는 쇠귀신’으로 불리던 자동차는 이듬해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으로 미국산 포드사의 2인승 오픈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1911년 3대에 불과했던 자동차는 올해 자동차 등록대수 2,000만 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명실공히 자동차는 이제 생활의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한국자동차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영선 소장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은 그가 40여 년 간 오로지 ‘자동차’ 하나만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들로 가득 찼다. 아직도 방송국이나 자동차 전문 기자들은 자동차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전 소장의 연구소를 찾고 한다. 전 소장이 풀어내는 자동차 이야기의 밑바탕은 수십 년 간 모아온 방대한 분량의 자동차 관련 자료다.

“자동차 관련 책을 쓸 땐 집에 갈 시간이 없어요. 여기 야전 침대서 잠을 청하고 일어나 다시 자료를 정리하고 그래야,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내용이 책에 담기니까”

전 소장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 아직까지 그에게는 열정(熱情)이 넘친다. 그가 모아온 자료들을 살펴보면 단지 신문과 책의 자료를 스크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스크랩된 기본 자료 위에 상품의 리플릿은 물론 관련 책자와 사진까지 원하는 주제를 정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자동차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눈앞에 차곡하게 쌓인다.

그가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현 쌍용자동차의 모태가 된 하동환자동차주식회사(이하 하동환자동차)에 취업하면서 부터다. 하동환자동차에 취업하게 된 이력도 독특하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시작된 그의 자동차 인생사는 전 소장 스스로 일궈낸 것과 다름없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남 달랐던 그는 6·25가 끝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자동차 잡지를 수집하면서 자동차 수집광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됐다. 1964년, 대구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대학시절부터 스스로를 자동차 마니아, 자동차 광으로 불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자동차가 나온 외국잡지는 모두 섭렵하며 습작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혼자 도서관에서 자동차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그는 자동차를 그리고 잡지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의 자동차 회사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에는 차에 대한 정보와 사진 등의 자료를 요구하는 내용을 적어서 보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자료들이 현 전 소장의 자료들의 모태가 됐다.

그는 자신이 모은 자료만으로 1965년, 대학생의 신분이었던 당시 서울신문회관 전시장에서 <세계 자동차발달사 사진전시회>를 개최하게 된다. 당시 하동환 자동차의 하동환 사장과 신진자동차 김창원 사장은 이날 전시회를 통해 그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하동환자동차 측에서 졸업을 앞둔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을 살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됐다.

“당시 어쩌면 젊은 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무모하게 외국 자동차회사로 보냈던 서신에 답장을 보내며 구하기도 힘들었던 커다란 사이즈의 사진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동차에 대한 열정 하나로 제 자동차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 전영선 소장이 그린 혼다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연구가로

하동환자동차에 입사한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유수의 자동차 회사를 거쳐 첫 직장이었던 쌍용자동차에서 직장 생활을 마감한다. 디자이너로 시작 한 그는 30여 년간을 디자인실은 물론 설계 및 제조, 부품 개발 및 홍보부서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의 생산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퇴사 후 그는 자동차 회사의 근무 경력, 그리고 그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독립해 지금의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를 설립하게 된다. 전 소장의 사무실에는 한국의 자동차 역사는 물론 자동차의 600년 역사가 시작될 무렵의 태곳적 자료부터 최근 자동차산업의 현재까지 오히려 없는 자료를 찾는 것이 쉬울 정도다.

단순히 자료를 있는 그대로 모으기만 하는 것은 ‘수집’하는 데서 끝난다. 전 소장은 자동차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 자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만든 그의 저서만 해도 열권이 족히 넘는다.

“자료를 수집할 때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오래된 사진을 보관하는 것입니다. 최근에야 스캐너의 도움을 받아 보존이 용이해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기에 분실되거나 복원이 어려운 경우 직접 그리기도 했어요, 실물이 없어질 것에 대비해 미리 작업을 해놓은 거죠”

자동차 박물관의 부재

전 소장은 한국의 자동차 시장이 세계 5위에 오를 만큼 성장했지만 자동차 역사를 고증할 만한 박물관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1975년 현대자동차의 포니로 처음 국산차 생산을 시작한 한국은 한 가구당 1대의 자동차가 기본이 될 만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지만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동차 박물관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세계적인 브랜드와 명차라 불리는 차종은 그 차만의 역사가 있고 조상이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들은 역사적 사건과 결부돼 ‘클래식 카’라 불리며 차들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명품 자동차이다. 명품 자동차의 경우 자동차 박물관이나 관련 시설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도 함께하게 된다. 이는 브랜드 이미지를 살려주는 동시에 충성 고객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전 소장은 이 부분을 꼬집어 말했다. “세계 5위라고 으쓱해할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뒷받침 해줄 자료를 보관할 박물관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며 “최근 국산 포니에 관련된 TV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 실제로 국산 첫 모델인 포니를 보관하지도 못하는 게 현 한국 자동차 시장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과거를 제대로 지켜내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 국산차 첫 모델인 현대자동차 포니ⓒNewsis


국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던 초기에는 철판으로 된 자재가 없어서 드럼통을 펴서 이를 철판의 대용으로 만들었던 과거를 돌아보면 현재 연간 700만대의 생산규모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세계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회사인 일본의 도요타, 미국의 GM 그리고 유럽의 폭스바겐에 이은 한국 자동차 시장은 명실상부 세계 자동차 생산 강국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박물관 하나 없는 후진 문화라는 것이다.

전 소장은 “세계 5위라는 수식어는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이제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자동차를 찍어내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자동차의 역사를 돌아보고 자동차 박물관 건립을 위한 관심을 갖는 일이 필요하죠”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 자동차 안전사고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1인당 자동차 이용현황 및 생산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안전도 향상이나 기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자동차 안전에 관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하는 그는 “자동차 회사들이 판매율을 높이기 위한 가격경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품질이 우수한 자동차=한국산 자동차’ 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는 연구 개발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합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PROFILE>

1964년 계명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5년 <세계 자동차 발달사 사진전시회>를 직접 개최한 인연으로 하동환 자동차주식회사(현 쌍용자동차의 전신)에 입사했다. 입사 후 기술부 디자인담당으로 디자이너로 자동차 인생을 시작한 그는 이후 신진자동차공업주식회사와 GM 코리아, 새한자동차, 동아자동차의 버스 기술/설계팀에서 근무했다. 1982년 자신의 첫 직장인 쌍용자동차 기술부로 옮긴 그는 이후 1992년까지 카 디자인/설계 및 부품개발, 홍보 분야에서 근무한 명실공히 한국 자동차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저서로는 <자동차 이야기>(1990), <임금님의 첫 자동차>(1992), <세계 자동차의 거인들>(1993), <세계의 자동차 산업>(1996), <세계 자동차 디자인 120년사>(2007), <세계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들>(2007), <한국 자동차 문화유산 조사>(2007), <고종, 캐딜락을 타다>(2010) 등이 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