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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성향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와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사무실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Newsis |
하지만 ‘보수세력’ 또는 ‘보수주의자’는 곧 ‘친재벌’, ‘기득권’, ‘수구꼴통’이라는 말로 치환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가진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가난한자들의 피를 빨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만이 정녕 보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일요주간>은 개혁적 보수를 주장하는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을 만나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짚어봤다.
보수, 점진적 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하다
“한국에는 보수가 마치 가진자나 기득권의 편을 드는, 즉 ‘수구’와 ‘보수’를 혼동해서 해석을 하고 있고 한국의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도 보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황장수 소장은 ‘개혁적 보수’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우리사회가 갖는 잘못된 보수의 정의를 먼저 언급했다. 보수라는 개념이 수구기득권의 의미만으로 편협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지적한 그는 잘못 성립된 보수의 개념은 곧 사회주의권의 몰락, 그리고 자본과 정치와의 결탁에서 비롯된 보수세력의 교만에 기인한 일부 ‘수구’세력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황장수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난 후 자본주의나 보수 세력이 교만해졌고,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며 자본이 정치권력 위에 올라탄 보수를 한국사회에서는 마치 보수의 전체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개혁적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한 황 소장은 “시대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그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쪽으로 정치를 점진적으로 바꿔가는 것, 이것이 바로 ‘개혁적 보수의 본질’이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진짜 보수’를 설명하기 이전에 황장수 소장은 보수의 역사부터 짚었다. 역사를 복기해야 그 안에서 보수의 가치와 참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개혁적 보수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역사상에서 보면 보수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 개혁하는 모티브를 잡아 지금까지 살아남아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 소장에 따르면, 지금은 시대적인 담론으로 부상하며 진보진영의 최우선 정책비전으로 자리매김한 ‘복지’는 독일의 보수주의에서 태동했으며, 1950년대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골든타임을 연 세력도, 전 세계 역사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영국에서 여성참정권을 허용하고 당시 구휼법이라 불렸던 ‘복지’를 채택하고 추진한 것 역시, 모두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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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소장 |
미국사회의 골든타임, 즉 황금시대를 연 세력 역시도 보수에서 비롯됐다는 그는 “미국 중산층 모델이 형성된 1950년대 역시도 2차대전의 영웅으로 불리는 군인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최저임금 보장 등 노동자들의 인권·이익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라며 “이런 과정들이 주로 보수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황 소장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흐름을 근거로 “그 시대에 맞는 개혁조치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감으로 해서 그 사회가 혁명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먼저 손을 써서 점진적인 개혁을 해 나가는 것이 보수”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보수의 의미가 변질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황 소장은 경제와 정치와의 상관관계에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는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종국에는 정치권력의 머리 위에 자본 세력이 올라앉아서 정치를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즉 법과 제도,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고 정치를 주무르다 보니 ‘슈퍼캐피탈리즘(슈퍼자본주의)’이 완성됐는데, 이 때문에 금융위기가 닥치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의 본질은 정치가 자본의 노예가 되는 ‘정치의 약체화’인데 이는 곧 그 나라 내부의 좌우 강경세력들을 더욱 득세하게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반대세력이 없어진 보수세력 자체의 교만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으나 그보다는 슈퍼자본주의에 기인한 정치의 약체화가 실질적인 계기가 됐다는 의견이다.
한국에선 ‘보수’가 가장 쉽다
개혁적 보수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한국 보수의 문제는 무엇일까. 황장수 소장은 “한국에는 보수라는게 제일 쉽다고 본다”고 단언하며 “왜냐하면 종북 청산만 하면 누구나 보수로 대접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주변 상황이 존재하는 한 한국의 보수는 세계사적 성장과정을 밟아온 진짜 보수의 점진적인 개혁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세력이 사라지게 됐지만 우리는 아직도 국토 절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북을 방치하자는 의견은 아니라고 언급한 그는 “종북 청산은 당연한 것이고, 실제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법과 제도가 노골적으로 종북을 표방하고 실제로 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을 하는 세력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게 제 생각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종북 청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종북 청산의 틀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지적인 셈이다.
나아가 황 소장은 ‘진짜 보수’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자본’을 꼽았다. 그는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들(저성장, 노령화, 저출산, 주택문제 등)에 대해서 외면을 하거나 눈을 감고 기득권 편을 드는 쪽으로 가서는 안된다. 한국을 보면 자본이나 기득권이 보수세력과 많은 결탁을 하고 있다. 연구소나 싱크탱크 등을 통해서 자본이 영향력을 가지고 행세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보수언론조차도 경제가 어려울 때는 기업에 대한 부패청산이나 강력한 세무조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쓰고 있지 않나. 하지만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 때가 좀 덜 부패하다. 어려울 때 바로 잡아야 잘 될 때도 더 잘 돌아가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의 잘못된 보수의 문제는 곧 종북을 반대하고, 대기업의 편을 들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는 반면 세무조사에는 소극적이며 복지를 확충하는 것에도 반대해야 하는 집단으로 비춰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보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위의 두 가지를 무조건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보수의 친재벌주의와 관련해 황장수 소장은 “과거에는 대기업이 성장해서 낙수효과와 파이론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은 휴대폰이나 자동차 등 제조사를 해외로 옮겨 국내 고용 창출에는 일조하는 바가 없으며 특히 역외탈세 문제나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골목상권 침해, 갑·을 문제 등 오히려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이 더 이상 국가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보수는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맹목적으로 대기업, 친재벌, 가진자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편에 서는 것이 마치 보수의 전부처럼 비춰지고 젊은 사람들이나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마치 보수의 전부처럼 단순화시켜서 생각하는 풍토들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념의 알맹이가 실종된 정치권의 배타성이 오히려 극우, 극좌를 양상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정책이념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채 국민을 반으로 쪼개는 행태를 반복한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황장수 소장은 “사실 지금 진보 또는 보수 일부는 정치의 필요성 때문에 진영논리상 보수와 진보라고 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고, 이 지역주의에 이념이라는 것이 살짝 올라타 있는 정도”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보수와 진보가 제대로 차별화 되서 국민들에게 던져줄 수 있는 선택적 메뉴로 가야하는데 지금은 서로가 양 극단으로 가고 있으며 자기 성향에 안 맞으면 수구 꼴통이, 혹은 극우가 되고 반대로 좌빨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념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황 소장은 “이념에 관한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고 학교에서도 이런 것들을 좀 가르쳐야 된다고 본다. 보수 혹은 진보가 무엇이고 이념의 격차가 무엇인지, 또는 근대사회의 다양한 형태의 이념들, 예를 들어 자유주의부터 전체주의까지의 다양한 이념을 공부해야 한다”면서 “한국사회가 이처럼 극단화로 치닫는 부분은 굉장히 경계해야 되며 국민들이 패거리를 나눠서 무조건 옹호해서도 안된다고 본다”고 정리했다.
민주당 탈당과 신념
황장수 소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수료한 그는 일찍이 사회개혁운동에 뛰어들었고,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농어촌발전위 등에서 정책전문가로도 활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도 민주당이었으며 당시 김대중 총재 특보, 정책위 부의장 등을 맡기도 했었다. 이후 민주당을 탈당한 그는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사장이었던 2008년 ‘국가정보유출사건’ 일명 미국 스파이 사건으로 몰려 한차례 홍역을 겪기도 했다.
이런 황장수 소장을 두고 일부 보수파에서는 ‘좌빨’이라고 칭하고, 몇몇 진보논객들은 ‘극우’라고 몰아붙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소장은 “제가 변한 건 하나도 없다”고 강조한다. 사회개혁운동도, 민주당에서의 활동도, 탈당과 개혁적 보수주의자로서의 지금도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은 항상 굳건하다는 것이다.
황 소장은 “학교 다닐 때 공부보다도 사회운동을 많이 했다. 당시에 지배적인 풍조였던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같은 그런 운동과는 다른, 농민운동이라든지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들을 주로 했는데 만약 이념적 정체성이 좌파였다면 당시의 대세였던 전대협이나 한총련 활동을 했지 독자적으로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천년민주당 창당추진위원으로 제안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에서도 정치를 목적으로 사회운동을 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적진(경남 사천)에 출마를 해서 고배를 마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민주당 탈당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저하고는 잘 안 맞는다고 느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의 정치권은 호남 혹은 영남 등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정당의 개념일 뿐, 진보 혹은 보수의 구분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황장수 소장은 “물론 민주당이 운동권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좀 가까웠던 부분은 맞다. 하지만 친노세력들이 들어오면서 (저와는) 이념적 정체성이나 여러 가지가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계속 부딪힘이 있었고 나중에는 공개적으로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를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탈당을 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이념적 정체성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를 묻자 “중국의 문화인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황장수 소장은 “과거에는 새누리당 쪽이 우파라고 하면 민주당은 중도우파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때부터는 중도좌파 내지는 좌파가 된 것”이라며 “지금 한국의 보수도 100%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념적 정체성을) 가져오다가 최근에 개혁적 보수라는 부분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호(425호)에서는 뉴라이트와 역사교과서, 국정원과 NLL 논란 등 정치사회이슈에 대한 황장수 소장과의 두 번째 인터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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