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수 "광막한 대자연의 나라 러시아, 집단주의와 집권주의가 정치문화의 핵심”

김진영 / 기사승인 : 2014-01-21 11: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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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1]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기연수 명예교수(한러교류협회장) “집단주의와 집권주의로 비춰본 러시아의 민족성”

[일요주간=김진영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과 함께 한반도 통일의 의미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와 북한의 장성택 처형, 그리고 일본 아베정부의 우경화 행보 등이 보여주듯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혈맹국인 미국은 물론, 한반도와 직접적으로 영토를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바다 건너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를 둘러싼 열강에 속한다. 이에 <일요주간>에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 러시아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더하고자 3회에 걸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명예교수이자 한러교류협회를 이끌고 있는 기연수 명예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기연수 명예교수(한러교류협회장) ⓒ일요주간
우리에게 러시아라는 나라는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중 1/3은 눈과 빙하로 채워진 시베리아가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소련(소비에트 러시아)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함께 한반도 정전에 관여하면서 그에 따른 여파로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자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한반도와 유럽을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사업 추진과 가스관 사업 등 한반도의 경협 파트너로서 존재감이 달라지고 있다. 더불어 러시아는 차이콥스키와 볼쇼이발레,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을 품에 안은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은 문화적 강국이기도 하다.

러시아를 50년 넘게 연구해온 기연수 교수는 그의 저서 <러시아의 정체성>(살림출판사)을 통해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와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 안에서 러시아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못지않게 러시아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기연수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 특히 러시아는 중국과 일본, 미국에 비해 알려진 바가 적은 것이 사실인데.
▲박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말에 동의를 표한다.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강하면 (통일도) 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주변국들의 정세에 대해서 그렇게 멘트를 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남북분단 자체가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국제적인 여건, 주변국들의 사정, 정세에 의해서 분단이 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 역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통일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평소 강조하는 편이다.

주변정세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주변국에 대한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또 그들과의 관계를 실천적으로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익에 부합되도록. 또 우리에게만 부합돼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국익도 생각하는, 즉 윈윈이 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근대이후 지정학적, 국제정치적 중요도에 따라 보통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순서를 꼽아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미국과 중국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든가 중국을 앞에 놓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국제무대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특히 동아시아의 신질서 재편의 문제에 관해서는 미, 중, 일의 입장에 대해 활발히 논의가 되고 있으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지 않나. 우리가 중국이나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이나 학자들도 다 얘기를 다투어 하는데 그 수준에 비하면 러시아에 대해서는 논의하는 수준이나 관심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아주 낮은 수준이고 부족하다. 대학의 연구소들이 연구를 하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 선에서 끝나고 만다는 것이고, 일반화되거나 정책에 반영이 된다든가 이런 수준이 못되고 있기 때문에 참 안타까운 점이 많다. 통일은 대박이 될 수 있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정세의 면밀한 고찰이 필수다.

또 러시아는 우리와도 두만강으로 국경을 맞닿고 있고 앞으로 21세기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식량자원 등이 문제가 되는데 우리가 가장 가깝게 그걸 해결할 수 있고 또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러시아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국제무대에서 외교를 하는 사람도 결국 러시아인들과 대화를 하는데 그 사람들의 신념체계나 가치관을 알아야 그들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러시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또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민족성’인데 그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살고 있는 자연환경이 민족성을 형성한다. 또 그 안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종교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러시아인의 특성을 결정짓는 것은 자연환경, 역사적 경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다. 주어진 자연환경은 변할 수 없는 것이고 살아오면서 겪는 과정 역시 생각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그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환경에서 살든 사람으로서의 한계,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구나’를 느낄 때 사람은 종교적으로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를 하고 기도를 하게 된다. 의식세계를 형성하고 신념체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주어진 자연환경, 그리고 역사적 경험과 종교적 신념이다. 이 세 가지가 결국 어떤 한 민족의 신념체계 또는 가치관의 핵심적 바탕이 되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의 민족성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해서 설명해 달라.
▲위의 세 가지 요소에서 보면 러시아인들에게서 가장 핵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들 정치문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집단주의와 집권주의이다. 집단이라는 단어가 과거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말로는 공동체주의라고 볼 수 있다. 집권주의는 중앙집권주의를 말한다. 이 두 현상이 러시아인들의 정치문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체주의가 사실은 중앙집권주의와 상호 모순되게 들릴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집권주의가 독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인들의 정치문화 속에서 두 가지 특징은 잘 조화를 이루고 있고 ‘아 이게 러시아구나’라고 하는 가장 큰 이해의 바탕이 된다.

-자연환경과 민족성은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나.
▲우선 자연환경을 보면 영토의 광막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저명한 종교철학자 니콜라이 A. 베르쟈예프는 ‘러시아 민족의 혼 속에는 러시아 평원과도 같은 무한성을 향해 돌진해나가는 힘과 광막함, 그리고 끝없음이 자리 잡고 있다’라고 얘길 한다. 러시아 영토의 광막함, 끝없음은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자기가 처한 자연환경을 통해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뭔가 절대자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누구에게 기도를 해야만 이 세상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히 갖게 되는 것이다. 영토의 광활함에서 느끼는 무한성은 사후세계하고도 직결된 것 같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느끼는 자연의 냉혹함, 인간의 유한성은 그들의 집단주의(공동체주의)와 이어진다. 인간이 홀로 버텨내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경험과도 일치된다. 이민족의 침략에 의한 민족적 고통, 몽고·타타르족의 240년 동안의 지배라든가 독일과 스웨덴의 침략, 1610년 폴란드인들의 크레믈린 침탈과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점령, 1941년 히틀러의 소련 침공 등 러시아야 말로 정말 모든 국민이 공동체 정신으로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또 공동체만 이루면 뭐하나, 그 힘을 일사불란하게 한군데로 모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령 자연환경 속에서는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면서 우리가 노력을 하자, 또 현실정치에 와서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힘을 모아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민족적 수난인 외세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힘을 한 곳에 모아 효과적으로 사용함에 국가도 보존될 수 있고 민족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러시아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공동체정신과 집권주의를 형성한다.

-공동체정신과 집권주의는 어떤 특성을 보이는가.
▲러시아인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회의를 해서 의견을 모으는데, 그 과정에서 흔히 만장일치제의 의견통일을 이룬다. 공동체에서 결정이 되면 만장일치로 해서 그것을 최고 책임자한테 넘겨줘야 우리가 보다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래야만 외적 등에 효과적으로 대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옛날 러시아에 베체(‘민회’라고 번역될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 모임)라는 회의체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의견을 모아 최고 어른에게 도출된 의견을 넘겨 그걸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다.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모체가 된 그리스 아테네의 의사결정기구는 소수의견을 존중해주면서도 다수결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다수결제를 보이는데, 서방세계는 원래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처음부터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제였다는 것이다. 서유럽 사회는 개인이 행복해야 공동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러시아에서는 공동체(집단)가 잘돼야 개인이 행복하다는 개념으로 항상 출발을 하고 생각을 한다. 만장일치에 의한 민주주의라는게 우리한테는 굉장히 생소하고 납득이 안가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그게 체질화돼 있다. 만장일치제 민주주의는 소련시대에 와서 소비에트 민주주의, 즉 레닌의 민주적 중앙집중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했다가 독재를 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정권이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데, 러시아는 천년이 넘은 역사를 그렇게 해서 살아온 나라다. 민주적 중앙집중제나 소비에트 민주주의, 만장일치제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소련 공산당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는 천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이의 공통 인식하에서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사상, 집권주의, 절대적인 권력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주의는 러시아의 국교처럼 되어있는 러시아 정교회와 직결돼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특징을 설명해 달라.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두 가지 핵심이 있다. 첫 번째는 ‘현세에서 고통을 많이 당하는 사람이 가장 빨리 구원을 받는다’고 여기는 것과 또 하나는 미사를 직접 집전하는 성직자보다는 혼자 고행하는 수도자가 더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나 개신교, 영국 성공회나 정교회나 다 기독교인데 기독교 핵심사상은 구원주의 사상이다. 곧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것인데 러시아에서는 현세에서 고난을 더 많이 당한 사람이 더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민족적 수난이라든가 가혹한 자연환경을 견뎌내는 것도 다 그런 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한만큼 천당에 빨리 간다, 구원을 빨리 받는다고 여긴다. 가령 5~6세에 죽은 어린애가 성인(聖人)으로 추앙된 경우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이 되려면 기적이 있어야 되고 일생동안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성인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순진무구한 어린애가 살해되었을 때 성인으로 추앙되는 경우 그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 고통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다. 지극히 종교적이고 기독교적인 구원주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혼자 고행하는 수도자의 경우에도 고행 자체가 자신의 고행이 아니라 누군가를 대신해 고행을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러시아인들은 유태민족보다도 더 강하게 종교적 공동체인 정교회를 중심으로 뭉쳐서 살아왔다. 이런 것들이 모두 러시아의 전통적 공동체 주의를 나타내며 거기서 절대자를 신봉하게 된다.

▲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기연수 명예교수(한러교류협회장) ⓒ일요주간

<다음호(431호)에서는 러시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표트르대제의 개혁과 볼세비키 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를 되짚어보고, 오늘날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치사의 면면에 대한 기연수 교수와의 두 번째 인터뷰가 이어진다.>


[기연수 교수 profile]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명예교수이자 (사)한국학술협의회 이사, (사)한러교류협회 회장, 러시아 연방 학술원 국가행정아카데미 해외 정회원으로서 편집이사직을 맡고 있는 기연수 교수는 1966년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 국립모스크바대학교(MGU) 및 국제관계대학교(MGIMO)에서 초빙교수로 교단에 섰고 한국외대 소련 및 동구문제연구소 소장, 러시아연구소 소장, 국제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소련 정치·경제 사전(공저)>, <러시아, 위대한 강대국 재현을 향한 여정(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러시아의 역사>, <암병동>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뿌쉬낀의 時에 나타난 抵抗精神」, 「러시아의 外交政策 전망과 한반도」, 「모스크바-제3로마論 硏究」, 「뾰뜨르大帝의 改革과 볼쉐비끼革命의 比較硏究」, 「푸틴의 중앙집권화에 관한 고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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