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전 세계 인구 1억 명 당 1명꼴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The World's Most Powerful People)’ 72명을 선정한 결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제치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1999년 제6대 총리부터 실질적으로 러시아를 이끌어온 그의 강력한 리더십의 이해는 러시아 국민들의 성향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일요주간>에서는 지난호(430호)에 이어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기연수 명예교수와 러시아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과 러시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 볼셰비키 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에 대해 살펴봤다.
푸틴 대통령은 소비에트 러시아 붕괴 이후 위기에 처한 러시아를 또다시 당당하게 G2 또는 G3라는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러시아 정치사에서 2번의 총리직을 역임했으며 3, 4대에 이어 현 6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그를 향한 러시아인들의 뜨거운 지지는 식지 않아 그의 재재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기연수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러시아인들의 신념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단주의와 집권주의가 뿌리내린 러시아에서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러시아에 맞는 가장 교과서적인 정치(통치)를 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다음은 기연수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푸틴 대통령은 어떤 인물인가.
▲푸틴은 러시아의 정치문화나 국민의 의식 그리고 러시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러시아인들은 ‘한 끼를 굶더라도 좋으니까 나라만 튼튼하게 만들어 다오’하는 것이 지도자에 대한 바람이다. 왜냐. 다른 나라가 우리(러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하는 역사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푸틴은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리한 것이며 가장 교과서적인 통치를 해 나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인들의 신념체계나 의식세계에 가장 알맞은 지도자로도 볼 수 있다. 푸틴의 통치는 러시아를 재차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러시아 정치문화에 적합한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력이 길 것으로 본다.
-푸틴의 롤모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일화가 아주 유명하다.
▲푸틴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많이 연구한 것은 틀림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새마을 운동 등 국가를 가난으로부터 구제한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가주의(Statism)와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의 일이고 또 우리나라하고 러시아의 상황은 분명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나라를 강화시켜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강한 통치 권력이 필요하다, 하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푸틴이 최근에 와서야 박정희 대통령을 멘토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과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밑에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와 방한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도 한 러시아 학자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통해 우리나라,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개발독재에 따른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세계 사람들이 놀랄만한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힘을 어떻게 강화시켰나.
▲러시아인들은 가혹한 자연환경과 끊임없는 외침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집단주의와 집권주의에 익숙해졌다. 특히 만장일치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집권주의에 의해서만이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단주의적 중앙집권주의는 최고 통치자의 일사 분란한 통치권 추구와 더불어 러시아 역사 속에서 강력한 정치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러시아의 역대 통치자들은 끊임없이 중앙집권적 통치 권력을 확보·강화하고자 노력했으며 푸틴 대통령도 역시 여러 조치(연방관구의 신설과 대통령 전권대표의 파견, 지방 지도자 해임권 및 지방의회 해산권 확보, 연방 소비에트(상원)의 약화 등)를 통해 지속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주의를 추구해왔다. 그 결과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후 오늘날까지 소비에트 러시아의 붕괴와 더불어 와해된 중앙 권력을 복원하고 강화시키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 러시아를 강성대국으로 부활시켰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복귀와 더불어 미래의 다른 러시아 지도자들도 대내외 정치의 안정 속에서 보다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국제무대에서의 보다 효율적인 영향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집단주의 속의 만장일치제 중앙집권주의를 가일충 강력히 추구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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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기연수 명예교수(한러교류협회장) ⓒ일요주간 |
▲푸틴은 ‘제2의 표트르 대제가 되고자 한다’, ‘새로운 짜리(tzar, 러시아어로 황제 칭호)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국가를 강화시키는데 성공을 했지만 많은 정적을 죽였을 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 백성들을 고통 속의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기도 했었다. 이로써 러시아의 최대 근대 역사학자 클류체프스키는 ‘국가는 살쪄 가는데, 인민은 여위어 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표트르 대제의 통치는 결정적으로는 러시아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간격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국가가 강화될수록 백성은 고통 속에서 도탄에 빠졌다. 표트르 이후의 러시아 역사는 어쩌면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한 고통의 세월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고통의 세월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통치 스타일에서 푸틴과 표트르 대제는 같다고 본다. 역사적 흐름, 역사의 발전 단계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발전하면서 반복한다.
러시아를 통치해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는 같은 바탕을 깔고 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니까, 또 절대 권력은 독재로 이어져서 인민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지 않기 위해 푸틴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까지도 깨닫고 있는 것이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표트르 대제의 경우에는 깨달았는지 혹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때 정치, 사회적 환경, 역사의 발전단계로 볼 때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표트르 대제가 이끈 러시아는 정치적 환경이 단순했다. 국가가 강해지면 백성도 행복해지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푸틴 시대에 와서는 정치적 인식과 환경,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달라졌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푸틴은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인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벌어진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로 남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다만 표트르 대제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푸틴에게는 대단한 영광일 수 있다. 그만큼 표트르 대제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도 같은 인물로 평가되는 역사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을 푸틴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그는 높게 평가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절대 권력이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러시아의 정치문화적 특성이나 의식구조, 신념체계 등을 미루어 봤을 때 공동체주의와 더불어 절대 권력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절대 권력에 의해서 민족도 생존해 간다는 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 권력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힘은 지식인으로부터 나오는데, 이러한 토대로 19세기 러시아의 인텔리겐쨔(intelligentsia)라고 하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과거 볼세비키 혁명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이 인텔리겐쨔다. 근대나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도 ‘조국을 구하자’는 사명을 가진 인텔리겐쨔들이 권력의 부패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푸틴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혁명도 개혁의 일종인데, 개혁은 체제가 바뀌지 않고 개선이 되는 것을 노리는 것이고, 혁명은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서 레닌은 일단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볼세비키들이 내세웠던 것이 세 가진데 ‘노동자에게는 빵을, 농민에게는 토지를, 병사들에게는 평화를’이다. 어쩌면 소비에트 러시아도 마지막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푸틴은 지금 시베리아 개발이나 미국과의 경쟁 등으로 빵(경제)의 문제는 물론 평화(안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푸틴이 러시아인들 자신의 신념체계, 정치문화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에 대해 설명해 달라.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절대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개혁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절대 권력이 주어져야만 국가를 개혁할 수 있으며 강화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러시아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세 차례에 걸친 결정적인 개혁의 고비를 겪었는데 그것은 바로 표트르 대제, 알렉산드르 2세, 고르바초프의 개혁 등이다. 그리고 이 세 개혁들은 바로 1917년 10월의 볼세비키 혁명 및 1991년 말의 소비에트 러시아 붕괴와 직·간접적으로 인과 관계에 있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힘이 모아져야 되는데 표트르 대제, 알렉산드르 2세, 고르바초프 시대에는 공히 백성들이 최종적으로 가담을 하지 않았다. 개혁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으로 볼 수 없다. 도리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간격을 심화시키고 넓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며 왕권신수설과 황제교황주의를 바탕으로 한 절대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것이 교회개혁이다. 러시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기원을 살펴보면 정치와 종교를 동시에 장악한 동로마제국을 보고, 통치권 강화의 한 수단으로서 정교회의 수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러시아 교회의 뒤에는 동로마제국의 황제와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가 버티고 있었다. 러시아 교회 초창기에는 러시아 교회의 우두머리(대주교)를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청에서 임명해서 보냈다. 그러니 러시아의 통치자는 교회를 장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총주교제를 폐지하고 그 대신 신성종무원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부기관을 설치하여 교회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른바 러시아 땅에서의 황제교황주의(黃帝敎皇主義, Casaropapismus)의 완성인 것이다.
[기연수 교수 profile]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명예교수이자 (사)한국학술협의회 이사, (사)한러교류협회 회장, 러시아 연방 학술원 국가행정아카데미 해외 정회원으로서 편집이사직을 맡고 있는 기연수 교수는 1966년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 국립모스크바대학교(MGU) 및 국제관계대학교(MGIMO)에서 초빙교수로 교단에 섰고 한국외대 소련 및 동구문제연구소 소장, 러시아연구소 소장, 국제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소련 정치·경제 사전(공저)>, <러시아, 위대한 강대국 재현을 향한 여정(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러시아의 역사>, <암병동>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뿌쉬낀의 時에 나타난 抵抗精神」, 「러시아의 外交政策 전망과 한반도」, 「모스크바-제3로마論 硏究」, 「뾰뜨르大帝의 改革과 볼쉐비끼革命의 比較硏究」, 「푸틴의 중앙집권화에 관한 고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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