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감정노동자의 눈물, 천한 자본주의 병폐...최소한 인권 보장 필요”

이희원 / 기사승인 : 2014-02-06 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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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인터뷰 2편]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산업의학과 전문의) “하대 직종으로 치부하는 기업의 시선부터 변화되어야”
제도 개선 정부·기업부터..일회성 아닌 점층적인 개선 시급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 ⓒ일요주간
[일요주간=이희원 기자] 감정노동자(Emotional laborer)라는 생소한 단어가 최근 언론에 쉼 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감정노동의 그늘’이라 불리는 이들은 대중과 직·간접적으로 대면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문제는 이들이 대인업무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심리상태를 통제하고 감정을 상품화시켜 서비스화 하는 데 있다. 조직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감정을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행동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환경노동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원, 백화점 직원, 승무원 등 감정노동자의 30%에 해당하는 수치가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전체 국민의 평균 수치가 16%인 것을 감안할 때 두 배에 가까운 것으로 감정노동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호(430호)에 이어 <일요주간>은 “감정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한다”고 조언하는 노동환경연구소 임상혁 소장을 통해 국내 감정노동자의 처우, 그리고 개선 방향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해 4월, 대표적인 갑(甲)의 횡포를 드러낸 사건이 있다. 이른바 ‘포스코 라면 상무’ 사건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포스코 계열사 A상무가 승무원에게 “라면 맛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폭행해 논란을 빚었다.

해당 승무원은 미국 입국 후 현지 경찰에 사건을 알렸고 A상무는 미국 연방수사국의 요청으로 입국이 불허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A상무는 직위 해제됐고 승무원은 물론 감정노동자에 대한 실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갑과 을의 불편한 관계가 도마에 오르면서 감정노동자의 처우 논란과 함께 노동환경의 심각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포스코 라면 상무’ 사건으로 서비스 업종의 그늘에 가려진 감정노동자가 겪는 직무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광범위할 뿐 아니라 정신적·육체적인 문제를 초래한다는 데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감정노동 상태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탈진’ ‘우울증’ ‘자살충동’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울증과 탈진을 겪은 노동자들은 최악의 경우 ‘자살’이라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기도 한다는 게 임 소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임 소장은 명확한 정부나 해당 부처의 통계가 나온 바는 없지만 서비스업 종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감정노동을 수행한다고 가정하면 이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감정노동 종사자는 약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총 취업자의 약 70%인 것을 감안하면 이 가운데 과반은 넘길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특히 주요 선진국의 서비스산업 종사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한국 역시 그 규모가 늘어날 전망이다.

체계적 연구 답보 상태

임상혁 소장은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올바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감정노동의 범위는 넓습니다. 서비스업 가운데 고객을 직접 대면하고 보이스 투 보이스(Voice to Voice)로 상품을 판매하는 업무, 승무원, 콜센터 상담원, 백화점, 대형슈퍼마켓 판매원 등이 감정노동자입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서비스 업종의 비중이 커질수록 감정노동자의 수는 더 많이 증가 하겠죠”라며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점진적인 증가세에 놓인 감정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진 만큼 제도의 개선 등이 궁금했다. 이에 임 소장에게 정부 부처 등의 체계적인 연구나 제도적인 보호 제도가 있는 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직까지 감정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매우 부족하죠. 외국에서 감정노동은 전문적인 분야의 업무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르죠. 감정노동의 주체는 대다수가 여성노동자와 하청노동자로 이분들은 스스로를 상당한 전문가로 분류해야하지만 이른바 갑의 위치에 놓인 기업은 감정노동 즉, CS(Customer Service)업무로 대표되는 노동자에 대해 잘못된 하대를 일삼아왔죠. 이것이 감정노동자를 사회적 약자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사회적 보호와 법률적 제도 밖에 내몰린 감정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그들이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임 소장은 “한국은 아직까지 감정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론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기업이 감정노동자의 문제에만 얽힌다면 그것도 올바르지 못하겠죠.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감정노동에 대한 정신건강이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이슈화가 된 반면, 한국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게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죠. 이제 기업과 소비자들이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를 인식하고 문제점으로 부각시키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국민건강 통계치를 낸 조사에서 ‘우울증’경험 비율이 남성 집단에서 10%, 여성 집단에서 16%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감정노동 수행 집단에서는 25%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임상혁 소장은 “해당 통계치는 일반 인구집단보다 노동자집단이 오히려 더 건강하다는 소위 ‘건강한 노동자 이론 효과’를 뒤집는 결과였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70%가 넘는 감정노동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죠. 우울증은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 합니다. 30%는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답했죠. 우울증을 겪는 감정노동자 가운데 28%는 경도 우울증을 , 38%는 중증 또는 고도 우울증을 호소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엄격한 심리치료가 절실 합니다”라고 경고했다.

천한 자본주의 병폐, 잘못된 유교적 문화 관행 그리고 감정노동의 상품화

그렇다면 감정노동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 임 소장은 감정노동의 심각성이 고조된 이유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했다.

그 첫 번째로 ‘천한 자본주의의 병폐’를 꼽았다. 왜 한국은 존경받는 기업가 혹은 자산가가 없을까. 한국에서 대기업이 순이익의 1%를 혹은 재벌오너 수입의 일부를 사회적 기여를 위해 나서서 기부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한국의 자본주의가 보다 유연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바로 ‘천한 자본주의’에서 찾았다. 국민과 재벌, 대기업 그리고 노동자 사이에 선순환 구조가 정착하지 못해 결국 감정노동에 대한 가치를 더욱 추락시켰다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두 번째로 한국의 유교적인 문화로 감정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된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것. 이는 ‘친절함’으로 무장한 인근 국가인 일본보다 한국의 감정노동자들에게 ‘상하위복’의 강도가 강하다는 데 있다.

끝으로 감정노동을 정책적인 시스템의 문제로 삼지 않는 기업의 태도를 들었다. 기업이 감정노동자에 대한 배려도가 낮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감정노동 상품으로 취급했다. 결국 배려의 사각지대에 놓인 감정노동자는 자기 스스로를 박제된 상품으로 절하시키는 태도에 수치심은 늘어났고 스트레스로 인한 잦은 이직으로 이어졌다는 게 임 소장의 설명이다.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와 법의 테두리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의원은 감정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앞서 심상정 의원이 감정노동에 의한 직무 스트레스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한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안에는 사업장이 감정노동에 의한 노동자의 건강장해 예방 및 치료 조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포함되어 있다.

다산콜센터 등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 가운데 하나인 CS상담원에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달라는 골지의 개정안에서 그들을 보호해달라는 요구안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 “고객을 피할 수 있는 권리” 최소한 2가지는 지켜달라는 것. 그리고 해당 권리를 따른 감정노동자를 기업이 내쫓을 수 없도록 법적인 보호망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해당 요지다.

임 소장은 “기업의 CS응대 매뉴얼을 살펴보면 ‘무조건 사과하기’가 대부분입니다. 기업이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무릇 간단해 보이지만 너무 당연하게 감정노동자의 권리는 무시되고 맙니다. 개선이 어렵다고 봐야 겠죠”라며 “법적인 테두리가 현실적으로 기업을 옭아맬 수 없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인권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한국 소비자들이 모두 블랙컨슈머는 아닙니다. 고객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감정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야하는 기업이나 정부가 변화해야하는 이유죠. 언론에 불거지면 기업 이미지 때문에 사과하고 일을 끝낸다면 감정노동자로부터 받은 상처는 누가 치료해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처우나 개선책을 내놓는 회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서울시 다산콜센터의 예를 들었다. 다산콜센터는 세 번 이상의 동일한 내용의 상담에 대해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악성 민원에 대해서 형사 고발을 가능토록 고지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콜센터 직원 역시 하청 직원이기 때문에 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끝으로 그는 “제도 개선은 정부와 기업 모두에 필요합니다. 정부는 ‘유사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개선 방안을 찾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최소한 콜센터 직원들이 악성민원에 대해 전화를 끊어 이를 피할 수 있는 권리는 최소한 법의 테두리에 넣어야하지 않느냐는 게 가장 큰 바램 이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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