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제 한국에 들어왔나.
▲ 부모님께서 과거 1950년대 초 중국 정부에 의해 점령당한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을 하셨다. 그 후 다시 네팔로 망명하셨고 그곳에서 태어났다. 네팔에서 계속 살다가 20대 초반이었던 지난 1997년 미국으로 가는 길에 한국에 잠시 들렸다가 지금까지 한국에 머물게 됐다.
-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이 굉장히 열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11년 명동 철거 당시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
▲ 네팔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살았지만 한국에 오게 되면서 외국인노동자로 소위 3D업종이라는 열악한 공장에서 일하면서 인격적인 무시, 집단 폭행, 임금 체불 등을 겪었다. 닭장에서 자기도 했고 하루하루 많은 노동에 시달렸다. 한번은 밤새 일하고 잠깐 눈 부치고 출근했는데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되기도 했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8년 6월 처음 명동에 위치한 한 건물을 임대계약 할 당시 건물주가 아직은 개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후 두 달이 지나 부동산 개발회사가 명동 일대 건물을 사들인 뒤 재개발을 한다며 한 달 간 가게를 비우라는 명도 통고장을 보내왔다. 명동 2·3·4 구역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철거가 시작됐다. 2차 강제 명도(철거)가 있던 날 철거 대상 상인들이 모여 농성을 벌였다. 당시 400여 명의 용역직원들이 들이닥쳐 상인들의 가게를 강제로 철거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막막했다.
- 그 이후 법원에서 명동 철거 사건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유로 귀화허가신청이 불허했다고 들었다.
▲ 2013년 귀화를 신청했다. 서류심사와 면접심사까지 통과했지만 법무부는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2011년 명동 재개발에 맞서 강제철거를 막았다가 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벌금 500만 원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이유로 들며 (귀하를) 불허했다. 그 뒤 행정소송을 냈고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헌법소원까지 냈지만 허사였다. 당시 조계종을 비롯해 여러 단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언론 매체를 통해 제 사연이 알려지면서 1,000장의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됐지만 끝내 법무부는 (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그렇다면 현재로선 귀화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나.
▲ 법무부 출입국에서는 15년 정도 지난 뒤 (귀화를) 재신청하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50대 중반이 된다. 한국에서 20대 청년시절부터 살아온 내가 60세에 귀화신청이 허가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적을 떠나서 단지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게 억울해 당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지금도 (귀화를) 포기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알아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힘이 되고 있다.

- 한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티베트 음식점을 연 계기는 무엇인가.
▲ 2008년 3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을 무렵 음향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티베트의 평화와 자유를 앗아간 중국정부에 대해 반중국 시위를 한 티베트인 2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티베트 유혈 사태’가 터졌다. 말살당하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을 한국사회에 알리고 싶었다. 그 뒤 고민 끝에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면서 티베트 음식점을 차리기로 했다. 당시 장인어른이 2007년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보상금을 받게 됐고 여기에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합쳐 지금의 ‘포탈라’를 열게 됐다.
- ‘포탈라’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 ‘포탈라’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있는 해발 3,700m의 고지대에 세워진 티베트 겨울궁전이다. 거기서 따와 이름을 붙였다. 포탈라궁은 세계 7대 문화유산에 등록돼있는데 포탈라궁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라마가 진군하는 중국군에 쫓겨 망명하기 전까지 머물렀다. 티베트 정치·종교의 중심으로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수많은 순례자들은 포탈라궁을 향해 오체투지 기도를 올린다. 현재 주인 없는 궁이지만 망명 중인 티베트인들에겐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도·네팔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는 있는데.
▲ 몇 년 사이에 종로구 뿐만이 아니라 서울 곳곳에 인도 음식점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이에 반해 티베트 음식점은 한국에서 ‘포탈라’가 유일하다. 명동 철거 사건 전까지는 ‘포탈라’도 알려지지 않았다. 매스컴을 통해 제 사연이 알려지자 찾아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지금은 티베트 음식과 인도, 네팔 음식까지 함께 팔고 있다. 인도와 네팔을 가지 않고도 음식점에서 그 나라의 고유 음식과 정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인도, 네팔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인도, 네팔 음식과 더불어 티베트 음식도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 내부 인테리어가 상당히 이국적이다.
▲ (포탈라를) 다녀가신 분들은 인테리어에서부터 티베트가 느껴진다고들 말씀하신다. 벽지와 천장, (벽에) 걸려있는 소품까지 신경을 안 쓴 곳이 없다. 벽에는 티베트 전통 문양을 수놓은 자수가 있고 포탈라의 이름을 따온 포탈라 궁전사진이 붙여놓았다. 티베트 전통악기까지 놓으니 티베트에 가지 않아도 티베트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인도와 네팔, 티베트에서 물건을 사들여 꾸며 놓으니 맛과 더불어 인테리어까지 칭찬해주신다. 티베트는 소승불교를 믿어 이곳에 작은 불상 소품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 최근 지진이 난 네팔과 티베트 지역에 구호 물품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느라 많이 바쁘신데 그 전부터 지속적으로 티벳 학교에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 네팔 지진 참사가 발생 한 이후 지인들이 자발적을 참여해 성금을 모금해주셨다. 텐트 100개와 침낭 100개, 구호작업 장갑 1,000장 등을 우선적으로 네팔로 보낼 계획이다. 과거부터 티베트 학교와 난민촌,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학교 같은 곳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전달되고 있다.
포탈라를 운영하면서 인연을 맺은 고객들이 많다. 그분들이 내주신 후원금 중 일부로 인도와 네팔에 흩어져 있는 망명 티베트인들을 돕고 있다. 또 티베트 독립을 위해 티베트 관련 단체에 후원하고 있고 이주 노동자와 난민단체에도 지원하고 있다.
-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 티베트 유혈 사태를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하면서 시위 아닌 시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포탈라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조금씩 티베트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있다. 처음에는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가게를 열게 됐다면 지금은 포탈라가 많은 분들이 들러 평범하게 어울려서 이야기를 나 눌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곳에서 편안하게 마음을 나누셨으면 좋겠다. 음식을 드시면서 카페처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셔도 상관없다. 그래서 포탈라 종로점에는 시계도 걸어두지 않았다.
- 망명 티베트인 3세로서 낯선 한국 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앞으로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나 향후 계획은.
▲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또 제 아이들과 한국 땅에 살고 있는 망명 티베트인 2세, 3세들이 티베트의 자유와 평화를 함께 외쳤으면 좋겠다. 그 아이들이 티베트어를 잊지 않도록 티베트인과 한국인 부부들과 함께 티베트 문화와 교육을 전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아이들이 티베트의 전통을 알고 지키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티베트를 알리는데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티베트 전통 공연을 열고 싶다. 많은 분들을 초청한 자리에 티베트의 전통 오페라나 전통 공연을 보여드린다면 티베트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과 티베트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비록 지금 네팔의 상황은 참혹하고 끔찍하지만 국제사회가 함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다면 이처럼 큰 위기를 헤쳐나 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네팔, 인도, 티베트가 전부 이 일에 동참한다면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색적인 티베트 음식 이모저모>

티베트 지역은 해발고도가 너무 높아서 쌀을 제외하고는 다른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은 보리로, 보리를 빻아 낸 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쌈파(Tsampa)'라고 한다. 쌈파는 티베트에서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음식으로 국수나 모모라고 불리는 고기만두로 만들기도 한다. 육류음식은 야크, 염소 혹은 양고기며 말려서 먹거나 향신료를 첨가해 매운 수프로 먹기도 한다. 겨자씨도 티베트 일대에서 재배되는데 겨자가 티베트 요리에도 자주 등장한다.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뗌뚝과 뚝바 그리고 모모 이 세 가지다. 한국으로 치면 수제비, 칼국수, 만두에 해당되는 음식이다. 뗌뚝(THEN THUK)은 뚝빠와 거의 비슷한 국물로 면을 넣었는지 수제비를 넣은지의 차이가 있다. 쫄깃한 식감이다.
두 번째 뚝빠(THUKPA)는 진한 육수와 면발이 조화를 이룬다. 세 번째 모모(MOMO)는 야채만두, 고기만두처럼 만두들도 속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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