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 = 김쌍주 대기자] 양승태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하면서 청와대와 특정사건을 두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법원행정처가 앞장서서 조직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우는 정부수립 이후 초유의 일로 지금 사법부는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 최고위 대법관을 역임한 전관이 전관예우의 영광(?)을 포기한 채 사상 최초로 전라남도 여수시의 지역판사로 임용돼 소송가액 2,000만원 미만의 소액사건을 주로 다루는 시·군 법원 판사에 지원·임용돼 9월 1일부터 여수시법원에서 근무하게 될 박보영 전 대법관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대법관 출신으로서는 첫 지원 사례다.
판사나 검사들이 퇴직 후에는 주로 변호사로 활동하는 게 통상적 관례다. 물론 그들이 있었던 자리는 그들의 후배 판·검사들이 차지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선배 변호사에게 일정기간 예우를 해주는 이른바 전관예우가 만연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악어와 악어새와의 관계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만연돼 있는 잘못된 관행으로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앞서 국회에서 전관예우금지법이 추진된 바 있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 된지 이미 오래다.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법원장 등 고위법관에 재판을 다시 맡기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원장 임기를 마친 고위 법관을 2심인 고법 부장판사로 복귀시키는 평생법관제가 2012년 도입됐고, 이를 보완한 원로법관제는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소액재판을 담당함으로써 사법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원로법관제는 2심이 아닌 1심에서 후배 판사들과 재판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제도다. 지난해 1월 서울고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 등 고위법관 5명이 시·군 법원으로 내려가 소액재판을 맡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법원이 시행하는 원로법관제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정년이 65세로 규정돼 원로법관으로서의 재직기간은 불과 몇 년에 그친다. 법원장까지 지낸 경력으로 1심 법원 판사와 동일한 처우를 받으며 과중한 업무를 수행토록 한 것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고위 법관들의 자긍심을 키우기보다는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법조계에서는 진작부터 미국식 원로법관제인 ‘시니어 법관’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직이지만 65세가 되면 시니어 법관을 선택할 수 있고, 그 후 비상근으로 급여의 70%만 받고 재판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원로 판사들이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품위를 유지하면서 여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9일 대법원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9월 1일자로 박보영 전 대법관을 판사로 임명하고 원로법관으로 지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박보영 전 대법관이 바람대로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서 1심 소액사건을 맡도록 했다.
앞서 박보영 전 대법관은 “국민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으며 대법관으로서 쌓은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봉사하길 원한다.”며, 여수시법원에서 일하길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박보영 전 대법관의 법관임용은 퇴임 대법관이 법관으로 임용된 최초의 사례”라며 “퇴임 고위 법관의 변호사 개업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퇴임 대법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원로법관제 정착은 실추된 재판의 권위와 신뢰를 찾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고질적인 전관예우를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륜이 쌓인 법관의 능력을 국민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박보영 전 대법관 사례를 계기로 미국식 원로대법관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으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사법부가 아귀다툼이나 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줘 귀감이 되는 박보영 전 대법관에게 기꺼이 존경과 함께 기립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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