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회고록은 왜 쓰는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3-04-07 10: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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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정답이 없는 세상사는 진실을 아는 것은 어렵다. 왜냐면 하나의 사실을 두고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진실이라 주장하는 건 더욱 어렵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올바름보다 거짓이 더 횡행하고, 어느 국가나 어느 사회나 자기네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예사로 거짓을 말하는 집단이 있고,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인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고록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쓰는 글도 대다수가 위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만의 주장이다.

회고를 쓰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 세월을 기억에서 끌어내는 경우 미화시키기가 여사다.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그 현장마다 자신은 용맹스런 투사였거나 갈채의 쌓인 주인공이었다는 식이 그런 것이다. 그 반대로 술회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는 결국 마찬가지의 목표에 조준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애와 경험이 괜찮은 한 편의 소재가 되어 세상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주장 아닌 주장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인규 전대검중수부장 검사가 "나는 대한민국의 검사였다"며 발간한 회고록이 비록 찻잔 속 태풍으로 머물렀지만, 그 내용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과거 벼슬자리에 재직하다 물러나 썼던 회고록이 우리 사회의 담론을 갈라치며 국론 분열로 이어져 대가를 치른 경우를 허다히 경험했다. 이인규 전 검사가 호기롭게 외치며 쓴 회고록에는 직무상 얻은 비밀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유포한 내용이 있고, 새삼 그 저의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사회적 파문을 떠나, 본인이 주장한 것이 설사 맞는다고 한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은 그 주장에 반박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믿고 수사상 비사(秘事)를 회고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이지만 이 시점에서 그 글은 아무런 논의 가치가 없는 헤프닝성 글에 불과하다.

야당에서는 그를 비난하며 이 사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성토하며 들끓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다고 원상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벌어진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책임질 도리가 없는 것을 정치공세로 겁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권력이든 행정 권력이든 칼자루 쥔 자들이 그 권력과 관련돼 저지르는 일에는 마침내 책임을 질 길이 없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책임을 물어도 책임을 지게 할 도리가 없고 속수무책인 것이다.

한 시절을 호시절로 보낸 사람들은 굳이 왜 회고록을 쓰는 작업을 하려는가. 현재는 언제나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으로, 과거가 되는 순간 그것은 관조할 대상으로 바뀐다. 내 삶이 어땠나를 되돌아보는 회고를 쓰는 행위는 반드시 해 볼 만 하지만 잘못 쓰는 경우 도리어 세상의 파문을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는 분란만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회고록이란 써보면 진실을 알게 된다. 반대로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자기 자신'이고 '자기 세계'다. 현재는 찰나에서 늘 과거와 대면 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재 의미화가 존재의 핵심 근거이기도 하다.

대체로 회고 글은 지난 자신의 삶을 재의미화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쓸 때는 솔직함이 원동력이지만 솔직해지는 게 가장 어려운 내 마음속 글쓰기인 까닭에 막상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자칭 유명인들은 자신의 삶을 글쓰기에서 자서전을 쓰겠다는 결심은 국가사와 사회사에 내 삶의 지류를 대입시켜 거대한 파고를 어떻게 헤쳐왔는가에 초점을 둔다. 회고적 에세이는 이와는 반대로 내 의도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며, 결과물이 얻어내는 것은 고작 기억과의 싸움 속에서 조금 확장된 인식의 지평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기억은 계속 변형되고 왜곡된다는 점이다. 덧칠되는 기억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래서 기록은 안정적이나 기억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속물이고 하찮아 기억 몇 가닥에 매달리는 때가 많다. 실제로 인간이 등짐처럼 자아(自我)로 지고 살아가는 것은 기억이다. 삶은 우연의 총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억은 우연 덩어리들의 확장과 변형을 거친다. 이러한 기억이 자신만의 신념으로 굳어져 세상으로 향할 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다.

회고록 사유의 전개는 문장 안에서 이루어진다. 문장이 진부하거나 남을 비방하는 것은 나 자신이 진부하고 책임전가 위한 것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 교정이 이뤄지지 않고 자신의 선입관조차 아직 파악 못 했다면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극단적으로 말해, 삶은 자신의 회고록 속에서만 온전히 의미를 되찾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술의 거짓과 왜곡이라는 위험 속에서도 개인의 글쓰기는 삶의 역사에서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 다만 글을 쓰면서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닌 것처럼 나를 투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잘못한 사실도 부도덕한 자신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투명한 밑바닥 의식에 다다를 때라야만 표면에 있는 자신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다. 자기 인식의 투명함을 얻으면 그리 기쁘지 않다는 사실을 겪어본 이들은 안다. 하지만 진부한 사고에 빠지지 않으려면 예민한 신경과민적 반응 속에서 자신을 벗겨낸 다음에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 검사장이 주장하는 요체 중 한 부분이다. "대선자금 수사는 SK비자금 사건에서 우연히 단서를 포착했는데, 다른 기업 쪽은 단서나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해당기업에게 '자진해 고백하지 않으면 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압박해 진술을 얻었고, 그것이 수사의 성공 비결이었다"라고 당당히 설명했다.

'우리가 원하는 걸 내놓지 않으면 회사와 집안이 풍지박산이 난다' 는 이런 협박에 누가 떨지 않을까. 나는 그 내용을 접하고 그의 '정신세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증거 수집을 위해 협박을 해도 괜찮다는 검사적 사고에 놀라울 뿐이다. 손에 줜 칼자루 권한에 취한 후배 검사들이 따라 배울까 걱정스럽다. 과거 검찰의 수사가 이런 방식 때문에 검찰이 욕을 먹었고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돼 왔지 않은가.

이 시점에 왜 회고록을 쓸까? 자신이 고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때 묻고 허물어진 신성 앞에서 그 글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가. 일방적으로 쓰는 회고록은 일필휘지로 써지지 않기에 쓰는 느낌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구가 쓰여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지난 시절 다 드러났던 수사 사항을 무슨 비사(秘史)인 것처럼 포장해 세상의 이목을 끄는 방식은 정당하지 못하고 치촐하다. 한때 높은 권세에 있던 자들이 지금도 권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비이성적 행동으로 비춰져 안쓰럽다.

자연인이 회고록을 쓰는 것을 두고 맞다 아니다를 떠나 재직 시 취득한 수사 정보를 공개하는 게 맞는 것인지,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는 법조계 금언을 생각하며, 지금 회고록을 쓴 그 이유가 못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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