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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22대 총선에서 매스컴이 '유사 이래'라는 표현으로 후보자의 자질과 인격에 관한 것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흔치 않은 경우다. 보편적 상식이 무너진 낯선 정치의 등극과 범법자도 국민의 대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작금의 선거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의원직이라는 먹이를 둘러싸고 인간들은 다양한 얼굴이 보였다. 국민의 대표는 공공의 선과 이익을 위한 이타심을 보여야 함에도 노골적으로 개인의 출세 지향과 한풀이를 위한 이기심으로 무장한 세력이 기승을 부렸던 선거였다. 보수 세력은 이ㆍ조 심판론을 선거의 주요 의제로 일부 야당 후보의 예전 불법성을 부각하며 전쟁에 가까운 선거를 치렀지만,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심판하는 결과로 민심이 모였다. 야권은 연합전선을 펴 진리품을 나눠 갖는 실리적 선거로 대승을 하였다. 국민도 선거가 진영논리에 매몰 되 걸러내야 하는 후보를 가려내지 않았다.
시끌벅적하며 우리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유별난 선거가 끝났다. 선거 과정에서 걸러내야 하는 인물들이 보란 듯 금배지를 달았다. 윤석열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세력과 범죄자를 처단하겠다는 심판의 외침은 야당의 압승으로, 국민은 야당 손을 들어줬다. 따지고 보면 심판론은 지난 잘못을 따져 묻겠다는 것으로 총선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가 없다. 선거가 미래를 위한 정책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과거 문제로 갑론을박으로 싸우니 우리 정치가 그만큼 퇴보하고 있다는 증거다.
새 시대의 전환점이 될 낯선 정치의 시작 앞에서 보수는 왜 총선에서 참패했는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보수 정권은 22대 총선의 아젠다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오랜 세월 동안 해 오던 것을 답습 반복하는 철학의 빈곤을 꼽을 수 있다. 둘째로, 권력의 정당한 통치기반이 되어야 할 중도 성향의 지식인들을 스스로 붕괴시킨 정치 상황에서, 어차피 통치가 법치 잣대의 논리에 매몰되는 현실이 소통 부재로 이어졌다. 셋째로,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과 결합함으로써 선거를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은 거의 대부분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이어졌다.
총선 이후 정치 상황이 더 복잡 미묘해졌다. 국회의원들의 면모를 보면 낯설기 그지없는 사람들과 보편적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우리 앞에 서 있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정치가 아니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의 제도, 조직, 일상에서 작동하는 나름의 중심 원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회는 공존 연대의 가치 위에 세워져 있고, 어떤 사회는 공정한 경쟁과 기회를 중시하며, 어떤 사회에선 힘 있는 자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비마스는 이를 사회의 '제도적 조직원리'라고 주장했다. 한 사회의 조직원리와 그에 따른 정치는 그 사회의 문명적 수준과 도덕적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제 한 번 감정을 가라앉히고 선거 결과의 손익계산서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 보자. 여소 야대의 총선 참패는 한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보수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위기는 지난 21대 총선 때도 잠복해 있었지만, 보수를 자처하는 누구도 여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작금의 총선에서 맞닥뜨린 낯선 정치의 모습이다.
이번 선거는 정권의 중간 평가로 분명 윤석열정권과 보수 정치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다. 보수 정권의 통치가 정치적 요구를 적절하게 재현하지 못하는 현재 국면은 한국의 정치 앞날을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불공정과 정의를 기반으로 정권을 창출, 집권 2년이 지나도록 독자적인 정치 논리를 학습하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큰 틀에서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윤리적 외양을 앞세워 타협하지 않는 정치를 하였지만, 시시각각 벌어지는 각종 정치 현안 대처에는 발목이 잡혔다. 근본적으로 정치는 정권을 쥔 자신들의 생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국민의 기반 위에 서는 것이며 따라서 정치의 궁극적인 문제는 소통과 협치에 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뺏고 빼앗기는 위험한 동반자일 뿐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민생과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원론적 내용을 발표했다. '민생과 국민의 목소리,' 말이야 맞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이 되었다. 지난 시절이면 몰라도 지금도 반복해 이 언어가 정치의 혁신 동력이 되기에는 너무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흘러간 옛 노래로 들린다. 집권 세력이 옛 노래인지 몰라서 그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이 아닐 터이다. 새로 부를 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존재 이유와 자율적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국민의 생각과 선거 현실이 별개로 존재하는 정치의 논리가 무엇인지 학습하지 못한 권력은 '많이 듵어본' 민생의 논리를 정치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려는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진영논리에 매몰된 어리석은 선택은 국민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남긴다. 여당의 낙선자는 "무능한 조폭과 유능한 양아치"라는 표현으로 국회의원을 비하했다. 이들이 정치의 주역이 된다면 공동체의 기반인 도덕성은 붕괴되고 일상의 모든 것이 힘의 논리로 좌우되는 혼돈 사회가 되기 마련이다. 비상식의 낯선 정치, 비도덕적 권력이 감정, 보복의 정치 기반 위에 버티고 서 위험한 균열이 시작되었다. 그 조짐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향후 한국 사회를 뒤흔들 낯선 정치의 시작, 수신도 제대로 못 한 군상들이 완장을 차고 나대는 혼돈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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