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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오랜만에 사무실을 찾아온 후배는 더 이상 금융맨이기를 포기했다. 다니던 은행에서 구조조정 칼바람에 사표를 냈다며 내게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후배를 위로도 할 겸 단골로 다니던 식당에서 함께 반주와 밥을 겸해 먹고 나오며 계산대 앞에서 맞닿은 상황이다. 계산대에 서 있던 주인이 "그동안 저희 식당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오늘로 영업을 끝내고 가게를 접는다"고 했다. 20여 년을 한자리에서 장사해 단골손님도 제법 많았고 나 역시 단골손님으로 이용했던 식당이었는데 장사를 그만둔다는 그 말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식사시간 내내 후배는 울분에 차 토해내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와 자신이 처 해진 상황을 듣고 난 직후였기도 했지만, 식당 주인의 '폐업 고지'는 그 어떤 진단의 웅변보다도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겉보기에는 손님도 많이 있고 꽤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식당이라 주인의 '폐업 선언' 이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주인은 "그동안 누적된 적자 탓에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라 담담하게 말하며 되레 지금까지 단골로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되뇌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진솔한 절망'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구정을 하루 앞둔 날 재래시장에서 제사장을 함께 보러 가자던 아내가 아침 일찍 외출복을 차려입고 어디를 가는지 바쁘게 나갔다. 한참 후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투덜거리며 하는 말이다. "어젯밤 길몽을 꾸어서 누구보다 빨리 복권을 사려고 일부러 차를 타고 복권 명당을 찾았는데 많은 사람이 먼저 와 장사진을 쳐 기다림 끝에 복권을 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처럼 로또 대박을 꿈꾸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복권 사려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들 로또의 기대감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작금의 세상이 힘드니 사람들이 로또 대박이라도 맞길 기대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으로 희망의 로또를 사지만 복권에서 희망을 거는 그 자체가 되레 전솔한 희망의 뒤안길이 아닐까 싶었다. 더 이상 어찌할 도리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벽 같은 현생에 절망한 이들의 반사적인 행동이다. 정말이지 이른 아침에 로또 복권 구매는 그 자체로 '진솔한 절망'에서 길어 올리는 소박한 희망이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해 벽두에 덕담은 대게 희망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절망을 이야기한다. 그냥 절망이 아닌 '진솔한 절망' 말이다. 그 까닭은 오로지 진솔한 절망만이 희망을 다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총선이 치러지는 해이다. 윤석열 정권의 중간 평가를 가늠하는 선거로, 새해 벽두 시작부터 여당 야당이 죽기 살기로 싸우며 서민들의 희망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내 권력투쟁에 밀려난 또 다른 세력들도 헤쳐 모여를 거듭하며 각자도생의 길로 나서 빅텐트에 관심을 쏟으며 국민 생활은 방치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 생활보다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과 분열은 국민을 좌절케 하며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생활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고 나면 무슨 일이 또 생길까? 무거운 마음이다. 신문 보기가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국민의 당에는 국민이 없는 현 시국을 누구의 잘못이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다 부질없을 만큼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의 처참한 상황이다. 여당은 야당의 발목잡기 정치에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라며 나라 걱정이고, 야당은 검찰 독재가 문제라며 불통의 정치 탓을 하며 남 탓 정치로 국민 생활을 방치하고 있다.
야당 대표는 용산역에서 귀성 인사를 하며 "국민 여러분께서 현재는 잠시 어렵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시고, 정치권도 국민께서 희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말하건대, 세상을 만지고 주무르는 힘센 사람들아 제발 국민 생각도 좀 해 보시라. 국민은 원한다. 개혁이든 개선이든 개편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국민 생활이 개판 되도록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을.
여ㆍ야당 당직자 사이에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공방을 보며 말하건대 당신들의 권력투쟁이 서민들에게 남은 소박한 기대와 삶의 희망이 깨어질까 두렵다. 어떤 경우에도 서민은 먹고 사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절망 속에서도 '그럼에도 희망'이 절실하다. 여ㆍ야가 싸우는 현 시국은 보다 근원적인 진솔한 절망에 따른 반성이 있은 연후에나 새로운 희망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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