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쟁] 북한 특권층 계급 노동당...최고의 전사로 거듭나기 위해 당원 입당

이 영 작가 / 기사승인 : 2016-04-29 15: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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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끓는 피를 조국에 바치리, 영예로운 별빛은 머리 위에 빛난다, 장하다. 108특공대 용감한 전사들아!>

소나에게는 이러한 그들의 행동이 광신도 집단같이 느껴졌지만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그들만의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져 눈만 퀭하니 걸려 있어도 눈동자의 빛은 살아 움직이는 살쾡이처럼 번득였다.
그들은 입을 통해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의 혈통과 그들의 항일무장투쟁 정신을 먹으며 최고의 전사로 거듭났다. 전투 중 현지 노동당 입당이라는 방법은 전선을 독려하는 북한인민군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들에게 당원이 된다는 것은 그들 사회에서는 귀족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열 뒤쪽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소나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초저녁 서편 하늘에 떠 있는 금성을 보고 장군님별이라고 경례를 하고, 별을 보며 결의를 다지는 군대와 대적을 할 상대가 있겠는가? 신이 된 김일성과 그 자식들에게 목숨을 강요당하는 사병화된 인민군 전사들. 누구를 위한 희생이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다음날 타격대는 보급 투쟁에 나섰다. 먹을 식량이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산 능선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온천마을에서 하얀 김이 산안개처럼 계곡 마을을 휘감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신차력은 공포에 떨고 있는 민가주택의 중년부부를 이불로 뒤집어 씌웠다. 일본말로 뭐라고 지껄이고 있었지만 눈을 마주치기가 싫었다. 잘못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아 쫒기는 마음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상대는 무기가 없는 민간인이지만 가해자 심정으로도 마음속 깊이 공포심이 오르고 있었다. 벽장문을 열어 입을 만한 옷가지와 가정의 의약품 등을 털어 자루식 배낭에 쑤셔 넣었다.

부엌을 뒤져서 쌀과 그리고 된장을 챙겨 배낭에 집어넣고는 부리나케 집을 뛰쳐나왔다. 옆집을 습격한 조원들도 불과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필요한 것을 털어 나왔다. 그들의 눈빛들은 마치 굶주린 이리 떼처럼 무서웠다. 숲에서 기다리던 조장과 이소나는 그들과 다시 합류해 늦은 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산으로 뛰어 달아났다.
시커먼 무리들이 마을을 빠져나와 히다카산맥 언저리의 작은 능선 쪽으로 접근하는 시간은 불과 십여 분뿐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신차력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재팔 조장의 숨소리도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이소나는 힘들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신차력은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복식호흡을 하기 위해 두 번 내쉬고 두 번 들여 마시며 호흡을 조절해 보고 있었지만 가슴이 답답하게 뻐근하면서 치밀어 올랐다.

적들의 공격 헬리콥터의 추격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산 능선 뒤쪽에서 불쑥불쑥 올라와 로켓포탄을 쏘는 아파치공격헬기에 신차력은 공포를 느꼈다.
옆과 앞뒤에서 터지는 포탄이 언제 그들을 덮쳐 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보급 투쟁을 나갔던 타격대의 각 조는 흩어져 공룡 등줄기처럼 뻗어 올라간 산 속으로 도주했다.
산 중턱 나무 숲 속으로 달아나는 도주 게릴라들을 공격 헬기가 야간에 추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낯선 땅에서 혁명가를 부르며 죽어가는 이들은 어느 시대의 철학으로 이해 될 것인지. 죽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죽음의 대열 속에서 함께하는 정신은 어디서 나올까?>

소나는 함께 뛰면서도 이들의 사상무장을 이해하려고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혁명이란 오지도 않을 먼 세상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재팔 대위는 나무 숲 속을 헤치며 깊은 산으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자 뜨거운 바람이 머리 위로 스치며 지축을 흔드는 로켓 포탄이 떨어졌다. 아파치공격헬기는 전과 달리 악착같이 달라 붙었다.
앞서 뛰던 다른 조와 함께 공격을 받아 대열은 흩어졌다.
고재팔 조로 새롭게 합류한 1공격 반장 노심철 상사는 첫째 날 보급투쟁에 나섰다가 날아온 파편에 대퇴부를 맞아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늦게 달려온 신차력이 배낭에 있던 붕대를 꺼내 그의 허벅지 위를 지혈해 보았지만 피는 샘솟듯 벌컥거리며 쏟아져 흘렀다.
그는 일어서서 걸음을 시도해보았지만 걸을 수가 없었다.
공격헬기 소리가 또 다시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열은 주춤 거렸다.
앞서 있던 고 대위가 뒤쪽으로 성큼 거리며 다가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들어 노 상사의 심장을 주저 없이 쏘았다.
탕~. 노 상사는 그대로 절명했다.
“미안하오, 동무. 혁명 전사가 갈 길이오.”

고 대위는 쓰러진 노 상사의 군표를 잡아떼어 주머니에 넣고 남은 AK소총 실탄을 챙겨들으라 지시하고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소나는 자신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나는 것을 입술을 물며 버티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헬기 소리는 잠잠해졌다. 고 대위는 목표 은거지가 아닌 계곡 중턱에서 멈쳤다.
“동무들! 동이 틀 때까지 여기서 대기했다가 가자우. 저 간나새끼들 분명 매복조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고재팔 그의 전투 감각은 뛰어났다. 그는 썩은 고기만을 찾아가는 하이에나처럼 코끝을 들고 바람을 따라 사람 냄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한밤 중 침투 시에는 귀를 전진 방향으로 쫑긋 세우고 사람 코고는 소리를 잡아내어 우회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3명씩 공격반별로 떨어져 대기했다.
이소나는 이들의 전투를 여러 번 보아왔지만 오늘밤처럼 적극적인 추격을 처음 느꼈다. 그녀는 ‘전쟁은 인간 삶의 순환 고리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역사 속에 평화란 사치일 뿐이다. 매일매일 삶은 싸움의 연속. 살인은 생존의 수단. 오로지 살기 위해 죽이지 않으면 결국은 내가 죽기 때문이다. 평화는 힘의 바탕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아니면 누군가 또 나를 잡아먹을 테니까….>

바위틈은 차갑고 거칠어서 뼈까지 문드러지듯 고통스러워 소나는 잠을 이를 수 없었다. 신차력은 잠에 빠진 듯 기척이 없었다. 동이 시퍼렇게 터오는 새벽이 다가오자 조장 고 대위는 신기하게도 눈을 번쩍 뜨면서 부하들을 깨웠다.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야~ 야! 빨리 서둘러라. 이 시간이 매복조가 지쳐서 잠드는 시간이다.”
고 대위는 낮은 소리로 조원들을 독려했다. 산 능선을 넘어 한참을 뛰다보니 다시 정찰 헬기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얼마 후 멀리 동이 터오는 쪽으로 바람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시누크헬기가 접근하면서 공중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오고 공중 강하하는 일본 자위대 공정단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헬기 추격은 누그러지는 듯 했지만 전투병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히다카산맥군 중심부는 좌우상하로 봉쇄되었다.
고재팔 조와 이소나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흩어졌던 타격대의 호각 소리도 들리지 않고 비상시 사용하던 예광탄 신호도 없었다. 간밤의 헬기 로켓포 공격으로 타격대 본부도 심각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판단을 했다.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고 대위가 소리쳤다.
“아래로 뛰라. 아래로!”
그는 산 정상으로 자위대 공정단의 매복조가 주요 길목을 차단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파도치듯 굽이쳐 보이는 작은 능선들 위로 산안개가 하얗게 오르고 있었다. 9월은 이미 한참을 지나서인지 아침 바람은 소매끝자락을 파고들어 쌀쌀하게 느껴졌다. 능선 아래를 향해 선두에서 뛰던 척후가 주춤하더니 갑자기 AK소총을 난사했다. 이른 아침의 총소리가 계곡을 울리며 콩 볶듯이 사격을 가하는 것처럼 들려 왔다.
숲속에 우거진 갈대가 흔들리자 엉겁결에 사격을 하고 보니 사슴 한 마리가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피를 흘렸다.
“이 간나새끼, 적을 분명히 보고 쏘라우.”
고 대위가 척후 김 중사를 사정없이 발길질하며 악을 썼다.
조장은 단도를 꺼내 사슴 뒷다리 한 개를 잘라 배낭에 넣었다.
신차력과 박금철 중사도 재빠른 동작으로 나머지 다리를 하나씩 잘라 배낭에 넣었다. 그들은 다시 능선 아래로 한참을 뛰었다.
능선이 낮아지며 끝나가는 쪽으로 널따란 구릉지대가 펼쳐졌다.
검은 무리는 능선길이 모이는 병목지점을 우회하며 뛰기 시작했다.

5분도 채 지나기 전에 앞쪽에서 꽝하는 폭음과 함께 선두 척후병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신차력은 후미에서 척후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전방으로 무차별 위협 사격한 뒤 낮은 포복 자세로 재빠르게 기어갔다.
능선 아래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잡목더미 숲 속에서 매복 중이던 자위대 1공정단 야마다 중위 자동소총이 불을 뿜었다. 수류탄이 작열 하며 터졌다.
진행 방향의 앞쪽에서 집중사격이 날아왔다. 이미 선두는 잠잠했고 중간에서 2명이 응사하고 있었다.
고재팔 조장이 쓰러졌다. 그는 피가 철철 흐르는 옆구리를 움켜쥐고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전방으로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신차력 하사가 지혈을 하려고 포복을 하며 다가섰다.
“이 간나새끼들이 여기도 매복을 깔았어. 속았어….”
피가 쏟아지는 배를 움켜쥐고 그가 힘겹게 말했다.
“야 차력이하고 금철이 뒤쪽을 맡으라. 내 걱정하지 말고.”
“후위 퇴출로를 확보하라.”
그는 이를 악물면서도 지휘를 했다.
“조장 동무, 이거이 어케 합네까?”
신차력은 상처 부위를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더 이상 말씀하시면 안돼요.”
엎드린 포복 자세로 어느 새 다가선 소나가 말했다. 그녀는 멈추지 않는 출혈을 자신의 두 손으로 압박을 했다. 총성은 콩 볶듯이 사방에서 울리며 진동했다.

고 대위의 입가엔 붉은 거품 피가 얼룩지며 흐르고 있었다.
“어머, 이거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총탄이 폐를 관통한 거 같은데.”
응급조치 과목을 수강한 경험이 있던 소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혼잣말로 지껄였다.
“걱정 마시라, 기자 동무. 차력이 너도 걱정마라. 내레 108특공대조장이다. 장군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이미 선서를 한 몸이라 말이지.”
“내래 안 죽는다! 걱정 말고 뒤를 막아 앞에 있는 적은 일없다 마주 친 적은 내 손에 다 죽는다.”
입에 피 거품을 물고 지껄이던 고재팔은 소총을 잡았던 손을 놓고 소나의 머리통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대가리 숙이라! 적탄이 날아온다 말이다.”
사격 방향을 지시하기 위해 쏜 붉은 예광탄이 소나의 머리 위로 스치며 날아왔다.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고재팔은 전방 사격지점을 정확히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위대 공정단의 집중사격이 임자를 만난 듯 사방에서 가해져 왔다.
“야, 이 간나새끼들! 공격반장!!”
고재팔 대위가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조원들의 행동이 주춤거렸다.
“기자 동무도 조원들과 함께 가시오.”
“네?”

이소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금방이라도 총탄이 자신의 머리통을 뚫고 구멍을 낼 것만 같았다. 방금 전 자신의 머리통이 날아갈 처지에 고개를 바짝 들고 전방을 보던 고재팔이 자신의 머리를 당겨줘 살았다고 생각하던 중에 조장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긴 있으면 죽는다. 함께 가라우.”
고재팔이 악을 쓰며 힘겹게 말했다.
좌측에서 대응 사격하던 2공격반장 김유만 상사가 조장에게 기어왔다.
“동무가 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뒤쪽으로 빠지라.”
“어차피 틀렸다. 여기는 내가 저 새끼들 잡고 있을 거다!”
고재팔 대위가 씩씩거리며 지시하자 김유만 상사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김 상사의 지시에 따라 엎드린 채로 재빠르게 기어 나갔다.
소나도 필사적으로 차력이의 배낭 끝을 잡고 뒤로 구르듯이 빠졌다.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 챈 야마다가 소리쳤다.
“어이 다나까! 상사 뒤로뒤로 뒤를 차단하라.”
야마다 중위가 몸을 뒤집으며 옆으로 굴렀다. 전방 풀숲에서 소리를 지르는 게릴라 조장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살짝 들던 야마다 팀장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듯 흥분했다.
분명 백대가리였다. 지난 번 수색임무 중에 자신의 대원들을 사살하고 도주할 때 맨 뒤쪽에서 큰소리로 지휘하던 조장 백대가리와 또 마주친 것이다. 야마다는 입술을 깨물었다. 뒤를 따르던 오노 중사에게 손가락으로 고재팔 위치를 가리켰다. 눈이 휘둥그레진 오노 중사는 잡목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백대가리를 향해 수류탄을 뽑아 힘껏 던졌다. 고교 야구선수 출신 오노의 수류탄은 높이 뜨더니 나뭇가지에 튕겨 휘청하면서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터졌다. 기관총 소리는 4차원의 소리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순간순간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박격포탄이 날았다. 분명 자위대 지원 박격포인데도 기준 없이 사방으로 떨어졌다.
오히려 자위대 공정단의 추격 작전에 불리하게 포탄이 이리저리 떨어져 터졌다.
고재팔 대위는 탄창을 갈아 끼우고 기관총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사격을 가했다. 자신이 총에 맞은 것조차 잊은 채 적을 쏜다는 일념하나로 방아쇠를 당겼다. 고 대위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표적이 희미하게 가물거렸다. 가깝게 보이던 부하들이 뒤로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가슴에 차고 있던 수류탄 두 발을 빼 들었다. 그리고 안전핀을 뽑았다. 야마다는 백대가리가 분명 수류탄을 던지고 도주할 것으로 판단했다. 야마다 중위가 소리쳤다.
“돌격!!”

최강 자위대 공정단 대원들이 머리를 들고 돌격사격을 하면서 덤불속으로 덮치듯 뛰어들었다.
가슴으로 수류탄을 싸안은 고재팔의 외마디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은 최고사령관 동지 만세!”
고재팔은 꽝하는 폭음 소리와 함께 홋카이도 깊은 산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수류탄 터지는 소리를 들은 박금철 중사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신차력에게 말했다.
“이보라 차력이 우리 조장님이 자폭한 거지? 군표라도 떼어 와야지. 영웅 칭호를 받지 안갔어?”
두 사람은 수 초간 멍하니 바라보다 동시에 오던 길을 되돌아 고재팔조장이 쓰러져 있는 숲 속으로 뛰었다. 앞서 달리던 김유만 상사와 이소나는 되돌아가는 그들을 쳐다보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야마다 중위는 수류탄 폭음 소리와 함께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쓰러졌다.
고재팔의 자폭수류탄에 야마다팀 돌격조는 사방으로 튀는 파편에 쓰러졌다. 다시 접근해 갔던 박금철과 신차력의 소총은 조장의 죽음에 복수하듯 움직이는 자들에게 사정없이 쏘아댔다. 그리고 그들은 신음하던 자위대원 한 명을 끌고 다시 현장을 이탈했다.
야마다가 정신이 들면서 주위를 둘러볼 때 자신의 두 손이 뒤로 결박당해 있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간나새끼, 정신이 이제 드는구만.”
한 시간 이상을 끌고 오던 박금철이 발로 툭 찼다.
야마다는 한국말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사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자 동무, 이리 좀 오기요.”
박금철 중사가 이소나를 불렀다.
그녀와 살아남은 조원 신차력, 김유만 상사가 박금철에게 다가갔다.
“이 반동 새끼 정신을 차렸어. 기자 동무가 통역 좀 해 보기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소나는 자세를 바로 잡으면서 야마다 중위가 일어나 앉는 것을 부축했다. 박금철은 야마다 중위 앞에 지도를 펼쳐놓고 물었다.
“니놈들이 매복한 작전 지역을 말해 보라우.”
이소나가 통역을 해주자 야마다는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박금철의 발길질이 야마다의 가슴으로 날아들자 그가 벌러덩 나자빠졌다.
“이 간나새끼,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갔어?”
“그만해요.”
발길질을 해 대는 박금철을 이소나가 말렸다.
“제가 물어볼게요, 그만 하세요.”
“기자 동무, 이 제국주의 놈들은 맞아야 되오.”
“제가 물어볼게요. 제발 그만 두세요.”
“박금철 동무, 기자 동무에게 맡겨보라.”

옆에서 지켜보던 김유만 상사가 끼어들며 말했다. 박금철은 못내 아쉬워하며 물러섰다. 이소나는 쓰러진 야마다 중위를 다시 일으켜 앉혔다.
“더 이상의 폭력을 피하려면 아는 것만이라도 말씀하세요.”
“당신도 게릴라인가?”
야마다는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물었다.
“이상한 상황이지만, 저는 한국에서 온 서울 타임스 기자예요.”
“한국 기자?”
“네!”
“그러면 저번 포로수용소 습격에서 인질이 되었다는 한국 기자인가요?”
“그래요.”
“모두가 당신을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럴 만도 하겠죠. 인질들은 다 죽었으니까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소?”
“글쎄요. 그 이야긴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하죠. 우선 저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걸 말해 주세요.”
“그건 안돼요.”
“당신이 고집을 피우면 살아날 수 없을 거예요.”
“내가 말해도 저들은 날 죽일 거요.”
“제가 못 죽이게 하겠다고 약속 할게요.”
“당신이 말려본들 소용없을 거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야마다는 그녀의 거듭된 부탁에 매복조가 활동하는 지역을 지도 위에 붉은 펜으로 표시해 주었다.
도주로를 확인한 후 이들은 배낭 속에 들은 사슴다리를 꺼냈다.
불을 피울 수 없는 상황에 생고기를 단도로 베어 씹기 시작했다.
피가 묻어나오는 사슴고기라 비릿했지만 살기 위해선 먹어야 했다. 지켜보던 소나도 몇 절음을 받아 씹었다. 사슴고기의 씹히는 맛은 부드럽고 고소했다. 날고기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조원들은 이동을 준비했다.
“차력이 네가 저 간나새끼를 제껴버리라.”
박금철 중사가 야마다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신차력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더 이상 알아낼 것도 없었고 지금은 장애요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안돼요. 그러면 안돼요.”
소나는 두 손을 휘저으며 만류했다.
“기자 동무가 나설 일이 아니오.”
박금철이 째려보면서 거칠게 나섰다.
“제가 정보를 얻기 위해 살려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약속? 전장에서 무슨 약속이 소용 있소?”
박금철 중사가 화를 내며 반항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야마다를 쳐다보았다. 야마다는 자신의 처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차력이 네가 처단하고 뒤따라오라. 시간이 없다.”

그들은 지역대본부로 귀환하기 위해 서둘렀다.
박금철 중사와 김유만 상사는 먼저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차력이 그냥 빨리 가라고 이소나를 쳐다보자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기자 동무, 빨리 오기요. 거기 있어봐야 소용 없수다.”
그녀는 다시금 신차력과 야마다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군인이라면 명예롭게 약속은 지켜야지요.”
소나가 독백을 하듯 돌아섰다. 신차력이 힐끔 소나를 쳐다보았다.
신차력의 소총이 야마다 중위 뒤통수에 겨누어졌다.
그는 계속해서 뒤돌아보는 소나의 눈빛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여긴 전장이다. 전장에서 적은 사살되어야만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타탕! 총성이 울렸다.
그의 소총이 불을 뿜었고 야마다는 쓰러졌다. 그 소리에 놀란 이소나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신차력은 먼저 걷고 있던 그녀에게 달려와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야마다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소총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자신의 등을 발로 차서 넘어트린 그 게릴라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마다는 산 아래로 미친 듯이 뛰어내려갔다.

자위대 공정단 매복지점을 피해 돌아왔지만, 미군 정찰소대에 발각되어 신차력조는 쫓기고 있었다. 박금철은 메고 있던 발사관을 버리고 노획한 자위대 89식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며 뛰었다.
붉은 해가 한 뼘은 빠져나온 새벽 시각 훈련이 잘 된 셰퍼드 개는 헉헉거리며 이들을 쫒고 있었다.
추격하는 군인보다 쫒아 오는 개가 제일 두려웠다. 냄새를 맡고 쫒아오는 개는 정확히 따라 오기 때문이었다. 신차력은 앞서 가던 박금철에게 소리쳤다.
“박 동무. 개울을 건너시오. 저 개새끼들은 물 건너는 걸 싫어하니까
빨리 건너시오.”
이들이 다행스럽게 계곡을 만나 첨벙거리며 건너자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AK 총소리가 반갑게 들리기도 했다.
이소나와 김유만 상사도 많이 지쳐있었지만, 낙오되지 않고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다. 얼마쯤 내달렸을까? 개울물을 지그재그로 건너며 그들은 낮은 구렁텅이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폈다.
요란한 헬기가 공중을 떠다녔고 멀리서는 소총 소리와 폭음 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야, 차력이! 어케하면 좋은가 이거 살길이 있갔어?”
“박금철 동무, 우리 지역대본부를 못 찾으면 특공사령부라도 찾아가야지요.”
“그래. 우리 여기서 살아 나가면 이번엔 꼭 당에 입당원서가 통과될 꺼야.”

박금철이 희미한 미소로 신차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북한 인구 2천3백만 명 중 북한을 끌고 가는 핵심요원이자 귀족인 당원은 3백만 명이다.
북한 사회에서 노동당은 특권층 계급이었다. 군에서도 군관으로 출세하기 위해선 반드시 당원이 되어야 했다.
“이보라 동무들. 여기서 저들의 추격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보자.”
김유만 상사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다. 하늘엔 잔뜩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빗방울이 툭툭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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