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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이번에는 검찰개혁 공약으로 국정의 초점을 맞췄다. |
[일요주간=김해민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동안 일자리위원회 설치,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등을 하달하면서 '업무지시'라는 새로운 형태로 공약사항을 착실히 이행해 나가던 문 대통령이 이번에는 검찰개혁 공약으로 국정의 초점을 맞췄다.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의혹 수사 책임자였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 발표 나흘 뒤 만찬을 갖고 격려금을 주고받은 것과 관련해 법무부와 검찰청에 감찰을 지시했다.
돈봉투 만찬 사건...명확한 진상규명 필요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이 지검장을 비롯한 수사팀 관계자 7명 등은 안 검찰국장 등 법무부 검찰국 간부 3명과 서울 서초동 인근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안 검찰국장은 수사팀장들에게 70만~100만원씩의 격려금을 지급했고 이 지검장은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원씩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이와 관련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의 감찰 지시 소식을 전하면서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이 점에 대해 엄정히 조사해 공직기강을 세우고 청탁금지법 등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돈봉투 만찬 사건과 관련해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에 명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 검찰 수뇌부에 대한 감찰을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다.
특히 이른바 검찰 내 '빅4' 중에 두 자리인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에 대한 동시감찰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으로 거론돼 온 인물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이번 감찰 지시가 고강도 검찰개혁의 첫 단계로 읽히고 있는 이유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검찰에 대한 감찰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신 것은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미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비(非)검찰 출신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발탁하며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검찰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바 있다.
비검찰 출신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 민정수석 임명
검찰이 정치 권력의 시녀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줄이겠다고 공언해 왔다.
문 대통령과 조 민정수석이 최근 박근혜정부에서 있었던 '최순실 게이트'와 정윤회 문건,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에 대한 재검토 방침을 세운 것도 이번 검찰 고위직 감찰 지시와 맞물려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감찰 대상인 이 지검장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불구속 기소한 수사팀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안 검찰국장은 수사 기간 중 우 전 수석과 빈번하게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수사 무마 의혹까지 일으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뇌부에 대한 감찰 소식이 전해지면서 검찰은 뒤숭숭한 분위기지만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고삐를 더욱 세게 틀어쥘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찰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권 초반 높은 국민적 지지도를 바탕으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대부분의 형사사건 수사는 경찰이 진행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일반적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겠다고 대선전 공약했다.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검찰 개혁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특히 주요 대선 후보들이 한목소리를 내면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수사권 조정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는 정치적 변혁기마다 제기돼 온 핵심 과제 중 하나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수사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독점권 등 수사 전 과정의 권한과 책임이 검찰에 있다고 규정한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형사사건 수사는 경찰이 진행한다. 다만 영장청구 등은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경찰이 수사를 마친 뒤 범인에 대한 유죄판결 여부 의견을 더해 검찰에 송치하면 검찰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에 넘기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방식이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 경찰은 수사를 마친 뒤 해당 사건을 법원에 넘길지 말지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함께 수사권 조정 논의가 다시 활발
수사권 조정을 위한 경찰의 노력은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져왔다.
1962년에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으며 1980년 4월 제5공화국 헌법 개정 당시 다시 한번 논의됐다. 1998년에는 수사권 조정 논의가 학계와 정치권 등에서 제기됐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함께 수사권 조정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다. 2003년 1월 경찰청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법경찰의 수사권 조정안을 공식 제출하면서 불이 붙은 것이다.
2005년 취임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검·경 간 첨예한 대립 구도를 보였을 뿐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2010년 8월 임명된 조현오 전 청장은 경찰청에 범죄정보과를 만들어 검사 비리를 수집하고 내사를 벌이는 등 수사권 조정을 위해 힘썼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검찰 개혁 필요성이 강조
경찰 조직 최초로 경찰대학 출신 청장이었던 강신명 전 청장 역시 임기 초에는 수사권 조정에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내부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체제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여느 때보다 수월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수사·기소권이 집중된 검찰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12.7%만이 검찰을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불신한다는 답변은 전체의 58.7%에 달했다.
경찰 향한 국민 신뢰 검찰 못지 않게 ↓
우병우·이석수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아들의 의경 특혜 보직 논란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 의경계와 차장실을 압수수색 중인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또 법률소비자연맹이 지난 3월 하순부터 20일 간 남녀 대학생과 대학원생 42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3.49%가 19대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인 경찰수사권 독립에 찬성의견을 밝혔다. 반대는 22.09%에 그쳤다.
다만 수사권 조정이 가능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경찰이 내부 역량부터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경찰 비리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인권 침해 행위, 수사 공정성, 전문성 논란 등은 수사권 조정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 조성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경찰을 향한 국민 신뢰가 검찰 못지 않게 낮다는 점도 한몫 한다. 형사정책연구원 설문결과에 따르면 경찰을 신뢰한다는 답변은 전체의 23.1%, 불신한다는 답변은 37.2%로 나타났다.
수사권 조정 공약 내걸었다가 집권 후 ‘흐지부지’
경찰 측 전문가들은 수사권 조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문 대통령의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과거 어느 대통령이든 수사권 조정 공약을 내걸었다가 집권 후에는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면서도 "이번에는 검찰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때보다 분명히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실적 어려움은 당연히 있을 것"이라면서도 "어떤 제도라도 영원할 수는 없다. 한국 검찰의 권한이나 위상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노출되는 상황이다. 검찰에서 강하게 반발하겠지만 공약이 현실화 되도록 문 대통령도 노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통 경찰이 사건의 97%를 조사하고 검찰은 서류만 조사하고 재판에 넘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사실 수사권 조정이라기보다는 '수사권에 대한 현실화'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여전히 경찰의 능력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범죄, 절도·폭력·강도에 대해서는 현재 방식대로 경찰이 수사 종결까지 하고 점차 확대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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