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세포를 진동시키는 아름다운 혁명’

소정현 / 기사승인 : 2017-06-01 10: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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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 인터뷰>예선영작가 ‘삶의 매혹자’ 저자
▲ 예선영 작가
세상없는 나만의 유니크한 화술 구사하고 싶어
내몸으로 긁히고 부딪쳐 봐야 생생한 진짜언어

창조적인 불평은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진통’
피상적 긍정 ‘글쎄’ 부정도 삶의 아름다운 자양분


● 우리 시대는 ‘좌절 시련 고통’에서 해방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불평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시대만의 진통인가? 이전(옛날)에도 그랬는가?

▽ 프랑스에 어떤 동굴 벽화에 보면 ‘요즘 애들 문제다.’ 라는 문구가 나온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찬란한 미래에도 좌절 시련이 있을 거예요.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미래의 인간은 고통 없이 진흙탕을 구르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 시대에 또는 자기 시대에 꼭 알맞은 좌절과 고통이 있어요. 살다보면 불평할 수도 있어요. 나는 불평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족이 있으면 불평도 있지요. 아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인 불평이어야 좋습니다. 진통이 있어야 경상도 사투리로 ‘알라’(아기)를 낳지요.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있잖아요.

● 예선영 작가의 글은 부정도 긍정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블랙홀처럼 흡수하곤 하는데, 부정에도 자양분이 있다는 의미인가?

▽ 부정도 긍정만큼 삶의 아름다운 자양분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부정이 없다면 긍정도 있을 수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긍정에 목을 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계발서에도 온통 긍정성을 강조합니다. 협박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긍정은 위험합니다.

피상적인 긍정입니다. 그래서 일부 현대인들이 휴식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나는 긍정만을 긍정하지 않습니다. 피상적인 긍정은 피합니다. 오히려 부정을 긍정합니다. 부정도 복입니다. 니체의 삶의 스타일이 나는 좋습니다. 사랑 혁명가 예수의 삶의 스타일을 나는 지지합니다. 헤겔의 변증법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모든 것이 좋고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100퍼센트 신뢰합니다. 삶은 문제가 없습니다. 경험해 볼 잔치만 있습니다.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신상에 이롭습니다. 나는 긍정만큼이나 부정도 사랑합니다.

● 예선영 작가의 글은 고정 관념적 언어적 문법을 파괴하곤 한다. 해학인가 아니면 역설인가, 이도 아니면 심층 숙고한 되새김질의 산물인가?

▽ 반듯반듯한 모범을 따르는 교육을 받아왔지요. 그래서 나는 바르고 서정적인 글도 쓸 줄 압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글이 시시합니다. 나는 필요했어요. 책에 있거나 유명인이 한 말이 아닌, 어눌하지만 내 말을 하고 싶고 내 생각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세상에 없는 나만의 유니크한 화술을 구사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부터 나만의 문체와 화법을 만들고 키워왔어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방법으로 말하려고 했어요. 다르게 생각하려고 시도를 했어요. 생각을 뒤집어 봤어요. 경계를 자유자재 넘나들고요.

그래서 지금도 메모와 독서,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내 속의 작은 목소리에 특히 귀 기울입니다. 꾸준히 계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문법과 문체, 개성 있는 표현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삶의 매혹자’ 의 미즈 예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문법의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어요. 해학과 역설이 있지요. 풍자가 있고 ‘뻥’이 있어요. 웃자고 한 얘기를 합니다. 힘이 드는 삶을 웃으면서 좀 가볍게 살아보자는 겁니다.

이런 화법과 문법을 구사하는 것은 나 밖에 없어요. 내 언어가 점잖은 분들에게 언어도단이 되든 상관 않습니다. 제가 까부는 것 같지만 나는 본질에 가 닿아 있습니다. 나는 솟구치는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창조적인 불평이어야 좋습니다. 진통이 있어야 경상도 사투리로 ‘알라’(아기)를 낳지요.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있잖아요.

● 현대인은 누구든 너무 바쁜것 같아 자가 성찰의 계기가 약한 것 같다. 자기 내면을 감성적으로 관조하면 삶에 생기가 올라올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 현대인은 누구나 바쁘지 않아요. 바쁜 것을 선택한 사람이 바쁘지요. 바빠서 자기성찰의 계기가 약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빠서, 자기반성도 선택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더 바쁠 수 있겠지요. 자기성찰도 훌륭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성찰의 계기가 약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자기 집착이 있는 성찰보다는 방치를 권장하니까요. 자기성찰을 잘해야만 훌륭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처럼 자기성찰을 할 필요가 없으면 어떨까요? 나는 자기 성찰을 할 필요 없이 순간순간에 깨어있고 기쁘고 즐겁게 존재했으면 그것으로 그뿐입니다. 그때는 성찰과 반성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음처럼 감성적으로 내면을 관조하면 삶에 생기가 올라올 수 있었다는 체험은 굉장하지요. 삶에 생기는 자신이 하기 나름입니다. 그저 무한정 사랑과 생명이 자기를 통해 흐를 수 있게 허용하고 허락하면 되니까요.
● 어떤 환경에서든 개개인의 삶의 충만함을 주관적으로라도 생생하게 감지하려면 어떤 심성이 필요한가?

▽ ‘활짝!’, 저의 경험상 활짝 열려 있으면 모든 것을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없는 나만의 유티크한 화술을 구사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활짝 열려있다고 의식을 해도 좋고요. 나는 그러면 좋고 나쁘고의 분별이 사라집니다. 그냥 듣고 그냥 봅니다. 그냥 관찰합니다. 3인칭 작가시점, 또는 전지적 시점으로 자기를 보는 것도 재미가 있어요. 그러면 거저 행복입니다. 그저 복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고 의식입니다.

자기가 원래 기쁨이고 행복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행복해도 좋고 슬퍼도 좋고 고생 죽도록 해도 좋은 것입니다. 의식을 시나브로 혁명하든지 단 번에 혁명 하든지 그것은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일 이 이상향을 상상력을 쥐어짜서라도 계속 꿉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것을 물음대로 70억의 사람들이 ‘동시적 자발적’으로 하면 세계는 단 번에 뒤집어 질 수 있습니다. 아마 5분도 안 걸릴 겁니다.

▲ 내 언어가 점잖은 분들에게 언어도단이 되든 상관 않습니다. 제가 까부는 것 같지만 나는 본질에 가 닿아 있습니다. 나는 솟구치는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 십인십색 각 개인은 나름대로의 특질과 개성이 있다. 이러한 개별적 성향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융합해야 행복(해피니스)의 본질에 손쉽게 다가설 수 있나?

▽ 질문처럼 ‘나름대로’라는 말이 멋집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특질을 지닙니다. 개성이라고 하지요. 참 근사한 일입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성격이 좋다고 봅니다. 좋은 성격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좋은 성격은 무슨 성격을 말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순하고 지적이라면, 끔찍합니다.

나는 자신만이 가진 개성에 옳다!, 옳지 하면서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지금의 자기에게 땡큐! 라고 적극 외칩니다. 멋지다!, 받아들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가진 개성 그래도 창조력을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다른 이가 보기에 별 볼일 없는 나를, 쥐뿔도 없는 지금의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행복임을 알았고 행복하게 살려고 왔습니다. 우리는 행복의 본질에 손쉽게 다가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가 행복의 본질에 닿아 있으니까요.

● 글에서 신앙적 어투를 용해시킨 흔적이 엿보인다. 본인의 신앙이 글의 표현과 글의 심성에 음양으로 견인력을 부여하는 요체라면?

▽ 신앙의 느낌이 있는 단어를 사용해 보는 것은 참 재미가 있습니다. 나는 일부러 종교용어를 사용합니다. 신앙적 어투는 신앙적이라 멋집니다. 그래서 나는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 생활 언어, 과학, 철학, 문학적 언어 등을 자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너무나 거룩하고 범접할 수 없어서 금지시켜 버린 것들,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 모든 단어와 느낌들을 햇볕에 꺼내어 옵니다. 친숙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공유하고 유쾌하게 즐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인 삶이 참 좋은 것이라고, 고마운 것이라고 찬양하고 싶습니다.

● 중년에 접어들고 계신 것 같은데, 다른 세대와 차별화된 젊은 세대의 장점(예찬론)과 미성숙 특질(잠재력)의 성향을 든다면. 덧붙이면 이들에게서 무엇을 수혈 받아야 하나?

▽ 물음처럼 흔히 말하는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나는 기성세대 보다 지금 아이들이 의식수준이 훨씬 높게 태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오죽하면 인디고, 크리스탈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요즘 아이님들’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방법이 옳다고 주입하고 가르치는 것은 자제하면 좋겠어요. 그저 아이들이 그들의 멋을 잘 부릴 수 있게 잔소리 말고 길을 열어 줘야 합니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주는 떡고물이라도 좀 받아먹으려고 합니다. 돈 써서 먹을 것 갖다 바치면서 요즘 아이들을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 나를 젊은 세대라고 자부합니다만 젊은 세대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면서 살 것입니다. 만약 이들의 의식과 정신 같은 것을 수혈 받을 수 있다면 저는 절대 늙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요즘 아이들을 백 퍼센트 신뢰합니다.

▲ 모든 다른 이가 보기에 별 볼일 없는 나를, 쥐뿔도 없는 지금의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 예선영 작가는 삶의 중반에서 소쩍새의 진통을 통과한 삶의 여유와 관조가 돋보인다. 천성적 요소인가? 아니면 시련과 고뇌와 진통후의 풍성한 자양분의 결실인가?

▽ 둘 다입니다. 진통 없었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도 다른 사람만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진통이 있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소쩍새 보다는 못하지만 노래도 곧잘 합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슈퍼긍정종자였습니다. 삶의 여유와 관조는 천성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살면서 깊게 숙련했고요. 진통이 사실 얼마나 정다운 나의 날개인지를 알았습니다. 고뇌가 얼마나 지금의 나를 멋있게 만들어 주었는지 압니다.

문제가 있다하면 있는 것이고, 문제가 없다하면 없는 것이잖아요. 저는 살면서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라고 보는 눈이 없습니다. 겪어볼 신비만 보입니다. 삶은 확실히 축제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 그저 고맙습니다.
나는 삶 전제를 사랑합니다. 나는 내가 숨 쉬고 있는 것이 감히 기특합니다. 나는 살아있어요. 그래서 시련도 겪고 고뇌도 체험할 수 있으니 짜릿합니다. 나는 행복이어서 행복합니다. 나도 당신만큼 행복하고 멋을 기른 사람입니다. 당신도 나만큼 풍성하고 깊은 멋을 지녔습니다.

● 예선영 작가만이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언어의 힘과 무한 유용성에 대해 신명나게 자랑해 달라.

▽ 언어는 나의 힘입니다. 이 힘은 체험에서 나옵니다. 명상록 백 번 읽어도 소용없습니다. 겪어야 알더라고요. 내 몸으로 긁히고 부딪쳐 봐야 살아있는 진짜 언어가 나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쓰려면 몇십년이 걸립니다. 울고 웃고 걱정하고 한숨짓고 조바심을 내 봐야 겨우 씁니다. 나는 이 체험들을 깨끗이 쓸어 모아서 내 안에 장착한 말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리고 숙성을 시킵니다. 좋은 향기가 날 때까지 발효합니다.

나는 생활 하다가 재밌는 대화나 단어가 있으면 즉지 스마트폰에 메모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산책하는 것도 즐기고요. 삶에 부루퉁해지면 물구나무를 서고요. 그리고 명상과 기도로 천상정부와도 교류를 합니다. 아줌마들과 수다, 아이들의 칭얼거림, 개구리 소리, 생명이 내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내 언어가 독특하다고 자부합니다. ‘듣보잡 버전’이라고 불리는 것을 즐깁니다.
지금은 4차원이니 해도, 내 매력적인 세계에 안 빠질 사람 빼고 모두 빠질 것이라고 봅니다. 시대가 나아갈수록 빛을 발하겠어요. 사람들이 나의 이 언어와 삶을 공감하고 대중들과 즐거이 소통하는 지금이 더없는 기쁨입니다. 나는 말과 언어로 즐거이 먹고 살 것입니다. 내 말은 살아 뛰어서 현실과 물질이 될 것입니다.

▲ 사람들이 나의 이 언어와 삶을 공감하고 대중들과 즐거이 소통하는 지금이 더없는 기쁨입니다

● 남녀노소 각 계층별 각 세대별 여러 제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구든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는 통념적 메시지 대신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가?

▽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도 좋을 때입니다. 기꺼이 어려움에 예스, 예하고 삶에게 대답하면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저 위풍당당 나아갑니다. 그러면 위로 따위는 필요 없더라고요. 나는 나 자신과 싸우는 방편 보다는 자신과 삶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편리하고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감을 잡았습니다. 빼앗기지 않습니다.

사실 잘 보면 누구든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다.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니 어렵지요. 어려움도 생각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난이라는 것도 생각의 오류일 수 있으니까요. 이름표를 잘 붙여야지요. 창조가 일어날 수 있게요.

하여튼 생각 경영에 성공하는 사람이 인생에 걸림이 없이 즐거울 테니까요. 지적인 사람이 인생 즐기고 살아요. 무지하면 망하지요. 옆 사람들 고생시킵니다. 삐삐가 내일 꽃밭에 물을 줘야지, 했지요. 내일이 왔어요. 비와 천둥이 때렸습니다. 그런데 삐삐는 춤추고 노래하면서 꽃밭에 물을 주더라고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건드릴까요?

■ 예선영작가의 인터뷰 후기
원래 ‘삶의 매혹자’ 책은 보름정도 걸려 만든 책입니다. 그전에 ‘새로운 귀족이 온다!’ 라는 책을 먼저 써 놓았지요. 2권 분량인데 지금 1권으로, 보들보들한 느낌으로 편집 중입니다. 그리고 ‘키스 kiss’(Keep it simple, stupid)와 ‘S.s’(The show of the spirit) 연이어서 낼 계획입니다.

곧 즐거운 시대가 옵니다. 자기의 세상이 옵니다. 즐거운 시대가 들이 닥치기 전에 저는 준비합니다. 먼저 선수를 쳐야지요. 이런 어마어마한 사람이 다 있나, 머리를 조아리게요. 우리는 되어가는 길을 가기 때문에 잘 되게 되어 있어요. 또 반가이 만나요. 잘 되는 사람끼리요.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들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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