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에세이] 이춘명 ‘봄은 빨리 와 주었다’

작가 이춘명 / 기사승인 : 2018-03-20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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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조우는 엔돌핀…콧노래는 명곡이었다’
▲  작가 이춘명
▲ 작가 이춘명

기고 서고 걷고 뛰고’ 말배우는 동안


‘서로 싸우고 꼬집고 밀면서’ 정 들어


● 맹모 삼천지교 대신 ‘할미환승지교’


곧 도래하는 3월 2일은 장위 1동 국공립 어린이집 입학식이다.


대한 추위를 뚫고 봄은 빨리 와 주었다. 43명 정원 33명 재학 중 10명 대기자에서 9번째였다. 종일반 0순위로 원서를 받아 오는 날은 영하 17도 체감 온도 23도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추운 줄 몰랐다. 돌아보며 건물을 다시 보고 또 다시 보며 입술 끝은 올라갔다.


맹모 삼천 지교를 깃대 잡아 - 할미환승지교-라고 되내이며 지낸 3개월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다녔을까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은 거리와 노력이 긴 숨으로 주저앉게 한다.


지난해 12월 3일 종암동에서 이사를 왔다. 학기 중에 옮길 수도 없었고 갈 곳도 막혀 방법이 없었다. 32개월 아이가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낯설음과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장위동에서 편도 30분 버스 타고 내려 한참 걸어가는 종암동 꿈을 키우는 어린이집을 2월 28일까지 다니고 있다. 진급 하는 시기에 옮기는 것이 나아서 아이도 힘들고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부모도번거롭지만 추운 겨울 안고 업고 척추 협착증이 생길 정도로 힘들게 보냈다.


매일 지나치면서 가까운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얼른 발표가 되어 동네 입구에 있는 곳에서 걸어서 느긋하게 다니는 봄을 매일 꿈꾸며 기다렸다. 그곳으로 가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웠다.


엄마는 오전 7시 40분에 출근하면 오후 7시 15분쯤에 집에 온다. 할머니가 버스를 환승하며 손자를 위해 매일 등하원 하는 날을 위로하는 주문으로 스스로 만든 말을 입속으로 씹으며 남은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보낸 석달은 참 길고 추웠다. 그래도 기다려주는 선생님과 친구들로 힘을 얻었다.


하월곡동에 살 때 생후 6개월부터 다닌 그 곳은 성북구 종암동 서울사대부중 앞에 있다. 3층 건물 중 1층을 임대하여 비록 시설이나 평수는 좁아도 보육 교사의 경력이나 실력은 다른 곳 못지않게 좋다.


야간 연장, 토요일 통합 교육의 장점도 있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입소문으로 계속 다니고 있다. 원장의 마인드가 학부모들 사이에 인정을 받아 주변 엄마들의 추천도 계속 이어진다.


석관동으로 옮기고 다시 종암동으로 오는 동안 2년 6개월 같은 친구 6명이 영아반과 유아반을 함께 지내면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남자 아이 5명, 여아 1명이 같이 기고 서고 걷고 뛰고 말을 배우는 동안 서로 싸우고 깨물고 꼬집고 밀면서 정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3번 바뀌어도 같은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어울리는 시간은 집보다 편안하였다. 병설 유치원 갈 때까지, 아이가 발음이 정확할 때까지, 5살까지, 1년을 더 다니고 싶었었다.


● 봄은 카라 꽃잎을 따라 부풀고


다행히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가게 되는 3월은 눈빛을 달콤하게 만들고 있다.


2일 입학식을 하고 더 크고 시설이 좋고 다양한 놀잇감과 젊은 담임선생님과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 낯선 친구들을 만나는 꿈은 매일 밤마다 오고 있다. 완전한 장위 1동 어린이가 되는 봄은 하얗게 피어나고 있는 카라 꽃잎을 따라 부풀고 있다.


엄마보다 지긋하고 할머니보다 젊은 선생님들의보살핌으로 어리광을 부리며 대부분 4-5년 다니고 있는 형아 누나들 틈에서 쑥쑥 커 오던 아이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


처음 보는 친구들, 20-30대 선생님들의 젊은 목소리와 진행에 잘 따라갈지 걱정이 먼저 앞선다. 믿고 맡기세요 라고 위로하고 격려한 기관장들의 파이팅을 다시 떠올리며 온종일 부모 다음으로 돌봐줄 그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본다.


급식 조리장의 식단도 궁금하고 건물 통째로 있는 고급 시설에 색다른 경험을 할 아이의 환호성이 벌써 들리고 있다. 바꾼다는 것은 어쨌든 두근거리고 새싹이 오르는 설렘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은 원장의 운전으로 차량 운행이 매우 안전하고 안심 먹거리로 직접 조리하여 영유아 검진 때 과체중으로 토실토실 5대 영양소를 섭취하게 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모두 40대 이후여서 아이들을 다 키워 본 경력으로 부모가 도리어 늘 배우고 의지하는 멘토가 된다.


마음 놓고 맡기고 지낸 시간들이 새삼 고맙게 다가와 가슴이 찡해 진다. 막상 떠난다고 1달 전에 말 할 때 이사 결정으로 먼 거리가 짐작은 했지만 서로의 정든 정으로 쉽게 돌아서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초등학교 진학과 개인 사정으로 떠나는 아이들 사이에 한명으로 2월 겨울을 정리하고 봄을 여는 아쉬움과 들뜸이 교차하고 있다. 매일 들고 다녔던 가방 모서리가 낡아졌고 도시락과 수저 포크가 닳아질 만큼 고운 정 미운 정 묻은 순간들은 한편의 추억의 파노라마가 되고 있다. 매일 주고 받은 키즈 노트로 아이의 활동 상황과 심리 변화를 주고받고 있다.


엄마와 할머니가 각각 매일 쓰고 있는 맘스 다이어리 육아 일기도 1000일째 되어가고 있다.


계약 기간이 6개월 남은 가을 갑자기 이사 하게 되었을 때 동네를 결정하는 것으로 가족들은 며칠 머리를 맞대었다. 우이 전철역이 생긴 서경대 앞 정릉과, 평지와 전철역이 가까운 석관동은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포기해야 하는 거리였다.


주택 공사 매입 임대 주택 당첨은 로또보다더 큰 행운이었다. 반갑고 고마운 순서에 통장을 빡빡 긁어 준비했다. 4살 아이가 실컷 뛰어 놀아도 되는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 분쟁이 없는 2층이 목표였다. 동호수를 결정하는 날의 긴박감과 초조감은 지금도 떨게 한다. 다행히 원하는 곳의 호수를 받았다.


같은 공간서 어울린 시간 ‘집보다 편해’


뛰어노는 아이 봄! ‘성큼 성큼 달려와’


● 더 친근하고 정이 깊어지던 겨울


도시 재생 구역 아동 특화 지구 장위 1동으로 이사 온 12월에 봄은 이미 뛰고 있었다.


새집 증후군 입주 청소를 하고 포장 이사로 출근한 엄마와 어린이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 오후부터 닦고 옮기는 첫 날의 석양은 온 몸을 달구어 주었다. 매일 일출로 창문이 연지 곤지 물드는 인사는 언덕 위의 집에 사는 보너스이다.


북서울 꿈의 숲이 있고 재개발로 대형 아파트가 있는 이곳은 두 곳의 초등학교가 큰 울타리를 쳐 주고 있고 장위1, 2, 3동에 각각 국공립 어린이집이 양 팔로 감싸 안고 있다.


골목마다 작고 큰 어린이집이 많아 아침 9시쯤에는 노란 차들이 많이 지나가고 줄을 서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한다. 아이들 소리가 많은 이곳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는 추운 영하 날씨를 이겨 내며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입학 원서 서류 24장을 준비하며 나오는 콧노래는 명곡이었다. 증명서, 확인서, 동의서를 작성하여 접수하고 입학 확정 메시지를 받고 설명회 날을 월차로 빼어 담임을 처음 만나는 시간은 엔돌핀이 되고 있다. 매일 손꼽으며 호기심과 기대와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참 더디다.


눈이 오면 1코스 밖에 없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 동네이다. 주민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넘어 걸어서 간다. 그 태연함에 처음에는 생소하고 놀라웠다. 1월 중 3번이나 교통이 지체 되고 지각하고 도착 정보가 꺼지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를 업고 다른 방향으로 틀기도 했다. 8차선 큰 도로로 돌아가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 환승하는 날도 있었고 눈보라가 얼굴을 마구 때릴 때는 결석하기도 했다.


근래 처음 겪는 추위였다. 수동 동파 세탁기가 얼어 아파트에는 역류하여 빨래방에 줄을 서는 겨울이었다. 계단이 없는 이곳은 경사가 심한 꼭대기에서얼음 빙판을 내려보다 쾅 넘어지고 주저앉아 다치는 어른도 많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이해하고 정이 깊어지던 겨울이었다. 매일 등원 할 때 13분 배차 버스가 늦어지면 몇 몇 그 정류장 그 시간에 만나는 이웃들의 응원과말벗으로 바람도 막아주고 손길을 줄 때 참 이사 오기 잘했다하는 흐뭇함이 컸다.


끈끈한 정은 종암동과 참 많이 다르다. 이곳의 봄은 이웃의 관심과 함께 공사 차량들의 속도로 약동하고 있다. 어린이 전용 놀이터가 만들어 지고 신축 건물들의 완성을 위한 레미콘과 땅 파는 소리에 봄을 쑥 쑥 솟고 있다.


입구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아저씨들의 작업복에도 피고 있다. 간식을 사 들고 오는 반장의 양손에 쥐어진 검은 봉지 안에서도 새싹이 나오고 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는 차를 기다리며 비켜주는 배려에도 봄은 꽉 차 있다. 입학 날을 기다리는 가슴을 뚫고 나오는 봉오리가 이웃에게 달려가고 있다. 형아 누나들 사이에서 맘껏 뛰어 노는 아이의 봄도 빨리 달려오고 있다.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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