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묵언의 세계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5-05-16 1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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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봄인지 여름인지 계절이 제철을 잊은 듯 어중간한 날의 연속이다. 건조한 날씨 탓에 비가 언제 오려나, 관심 끄는 일기예보는 오후 늦게 비가 온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대구지방은 워낙 강수량이 적어 오늘도 비는 오지 않을걸"이라는 직원의 단정으로 동료 직원, J 후배와 함께 길을 나섰다. 숙제처럼 오래 미뤄온, 천년의 세월을 견딘 목조건축물을 눈에 넣을 생각으로 마음은 한껏 고무되었다. 오랜 과거인 고려시대로 회귀한 여행은 내겐 잠시나마 억겁의 시간을 넘는 시간이다. 유한한 시간을 살며 무한의 시간을 거슬러가는 여정, 시공을 초월하며 떠나는 여행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섯튼 낮설음에 나는 가장 깊은 기쁨의 순간을 맛보며 가슴이 벅찼다.

내비게이션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입력하고 기기가 가리키는 길 위에 앞에 섰을 때 여행자는 기계의 화살표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며 어떤 영감을 느낀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사찰의 고정관념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내게 오래된 고찰의 개념은 평화와 안식을 의미했다. 오월 햇빛에 자란 연두의 빛깔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산길을 접어들며 느낀 건 도시에서 호젓한 산사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일상의 바쁨으로 잊고 지낸 나를 찾는 길이다.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오염 안 된 산속으로 들어 섯을 때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있었다.

거조사로 가는 길은 산길을 걷는 험한 노정이 아니다. 사찰 입구까지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된 순탄한 길로 조성돼 있었다. 허위단심에 당도한 거조사는 오백나한을 모신 기도 도량으로 팔공사 동쪽 외곽 산자락 끝에 자리했다. 한눈에 담기에도 비교적 작은 규모 사찰로 영산전, 영산루, 국사전 등 4곳의 요사체가 일렬 형태로 배열되어 있었다. 명승도 절경도 아닌 산자락 평평한 평지에 숨은 듯 소담한 사찰의 풍경은 한없이 고요하였으며 포근했다. 천년이 지난 가람답지 않은 깔끔한 모습, 단순 소박한 꾸밈새와 단촐한 모습에 경외감이 절로 일었다.

거조사 입구는 일주문이 생략된 체 '집 거(居)자처럼 웅크리고 있다. 요사체 주변은 인적이 머물면서도 없는 듯한 적요로 나를 말 없이 감싸 안으니 그곳 풍경이 기갈처럼 몸속을 파고든다. 전율을 느끼는 이 기분은 감동이라 해도 좋고 천 년의 속살을 보는 개안이라고 해도 좋았다. 세월의 풍상을 겪었건만 어찌 이다지도 제모습을 간직하고 있단 말인가. 낯설었지만 낯익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오래된 과거. 아름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바 세상을 살피려는 붓다의 의지가 드러내듯 하다. 꾸미지 않는 꾸밈으로 여여(如如) 함이 그 어느 모습보다 청정하다.

주차장과 이어진 영산루는 천년 역사를 간직한 절 치고는 작고 낮은 누각이다. 일 층은 출입구로 이 층은 범종각으로 사용토록 설계된 전형적인 사찰 누각 형태를 갖추었다. 모든 중생들이 편하게 들어설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계단에 올라서니 3층 석탑이 전면에 상징으로서 사찰의 엄숙함을 일깨웠고, 훤히 뚫려 탁 트윈 넓은 공간에 자리한 가람 앞뜰에는 영산전 지붕이 가지런히 펼쳐지며 시각적 공간감을 더했다.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영산전'은 목조건축물로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거조사의 주불 전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국보로 지정된 건축물이 내 고장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 못 했다. 경내 동선은 길게 뻗은 일자형으로 참배 시간을 제외하면 15분 정도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끼 낀 돌계단과 석축, 한 아름 소나무 기둥에서 느낀 고품(古品)의 수려함.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청의 울긋불긋한 색조는 일체 배제된 말쑥함. 나무와 흙으로 단촐하게 벽을 쌓은 곳에는 수시로 통풍이 가능하도록 벽 중간에 통풍창을 설치해 흡사 해인사 장경각의 자연 통풍 장치를 연상케 했다. 그 열린 창으로 드나드는 것이 어찌 바람과 햇빛뿐이랴. 있음과 없음, 실체와 허공이 분리되지 않고, 모든 중생의 혼(魂)이 드나들며 극락에 이르는 창이다. 주불전인 영산전은 정면 일곱 칸과 측면 세 칸으로 정면은 긴 데 반해 측면은 짧다. 지붕 또한 홑처마로 정중함이나 권위를 드러내지 않고 다만 사람 人자인 맞대 지붕으로 간결한 뜻을 그린 단정한 모습이다. 법당 내부도 엄숙함보다 대중과 소통하는데 중점을 둔 듯 마치 강당처럼 넓은 공간에는 이중 배열로 대들보가 널찍하게 지붕을 받치고 있다. 천장도 장엄하지 않고 촘촘한 석가래를 드러냈다. 넓고 높은 굵직한 선이 서로 교차하며 나한과 대중의 마음은 그렇게 소통됐을 것이다. 꾸이지 않은 꾸밈이 그 무엇보다 화려하고 장엄하다.

일반 법당과는 달리 측면에 출입문이 없는 것은 법당을 이용하는 사부대중 누구에게나 차별을 두지 않는 배려 때문이리. 소박한 어간 문을 여니 중앙에 고려시대 분위가 서린 검붉은 탱화를 배후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좌우에 협시하며 자비심 가득한 모습으로 좌정하여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신다. 법당 속 측변에는 겹으로 526분의 나한성중이 저마다 다른 얼굴로 모셔져 있었다. 법당 현판이 '영산전'이라 쓰인 연유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 영산 회상을 재현한 것이라 했으며, 당시 설법을 들은 나한성중이 봉안되어 있었다. 부처님과 나한성중 모두 석조물로 이곳 산지에서 출조된 돌로 다듬었다고 한다.

은은한 촛불이, 향 내음이 법당 분위기를 엄숙하게 했고 나한들은 내게 말 걸어오지 않지만, 나는 끝없이 말을 걸었다. 말하지 않는 나한들과 오랜 묵언의 대화. 해학스러운 표정의 오백 나한과 마주한 적막은 침묵의 언어가 빚어지기 이전 나의 가슴을 건너며 침묵 속에 오가는 온정을 느꼈다. 감정의 바람들이 억겁의 시간들을 들쑤시며 지나간 자리에 신비한 속삭임을 몇 줄기 바람이 법당 속을 흔들고 있다.

고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세 개의 나무토막을 깎아 하늘로 던졌을 때 한 마리는 순천 조계산 자락으로, 다른 한 마리는 거금도 용두산, 남은 한 마리는 여수반도 금오도에 이르렀다. 만대에 걸쳐 불법의 진리가 피어날 땅에 스님은 그 세 곳에 불사를 일으켰다. 고려말 타락한 고려 불교의 쇄신을 위해 정혜결사를 시작한 지눌국사에게 거조사는 중생들의 삶의 냄새가 가까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스님은 교(敎)는 붓다의 말씀이고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선교일원론'을 통해 불교사상의 큰 획을 그었다. 지눌은 불법의 세계와 사바의 세계가 한데 어울려 공존하며 피안의 언덕에 이르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평생을 불법고양 위해 수도한 지눌이 거조사에서 바라보는 산기슭의 가람 풍광은 신령했을 것이다. 천여 년 전 그 사찰의 신성함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신령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에 일어 잠시 넋 놓고 공상에 잠겼는데, 옆에 있던 후배가 다가와 "형님, 무얼 그리 깊은 생각을 하십니까?"라며 나를 깨웠다. 깜박 환상에 깨듯 생각을 정리하니 어느새 천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의 순간으로 돌아왔다.

거조사에서 마주한 나한의 모습은 공간에 놓여진 신성(信惺)이 아니라 시간 속을 달리는 신성 (神聖)으로 떠 오르기 십상이기에 신령(神靈)스럽다. 그 모습은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설명하려는 자에게 침묵을 가르치는 듯하다. 기도하는 마음과 정진하는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영산전 얼굴들이 절로 묵언으로 새겨진다.

먹구름이 동쪽에서 몰려오며 빗방울이 점점 잦아졌다. 주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화본 역사를 방문할 계획을 취소할까 망설이다, 가까이 온 지금 못 가면 다음에 일부러 찾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옛 정취가 머무는 화본으로 향했다. 봄비 속에서 흔연히 서 있는 화본 역사(歷舍)는 시골 간이역답게 아담하다. 폐철길 변에는 오래전 증기기차가 지나다니던 흔적으로 검은 물탱크 구조물이 괴물처럼 온몸에 비를 맞고 서 있다. 잘 꾸민 모습에서 인위적으로 주변을 가꿔 관광객을 모으려는 것이 눈에 드러나 보였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없이 연인들은 붐볐고 연신 찰각거리며 휴대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두워진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일정을 마치고 들른 카페는 여행객의 주머니를 넘보는 듯 산길 주변 목 좋은 곳에 꾸며 놓았다. 그곳에서의 비와 커피, 빵 한 조각이 오래 입안에 여운으로 남았다.

25년. 5월 초 천년 세월의 고찰 영천 거조사 답사기. 최철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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