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스크 누락 의혹' 한전, 15조 채권 공시 위반으로 SGX에 신고돼

임태경 기자 / 기사승인 : 2025-05-23 0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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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솔루션 "화석연료 리스크 축소·과장 공시"…한전 해외 자금조달 신뢰성 타격 우려
▲ (사진=AI 생성 이미지)


[일요주간 = 임태경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15조 원 규모의 글로벌 채권을 상장하면서 기후 리스크 관련 정보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에 한전의 공시 위반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공식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 19일 기후·에너지 전문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한전이 SGX에 제출한 글로벌 중기채권 프로그램 투자설명서에 석탄 및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의존에 따른 주요 위험 요소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의 채권은 지난 2월 SGX에 상장된 것으로, 총규모는 110억 달러(한화 약 15조 3500억 원)에 달한다.

 

◇ 기후솔루션 “수소와 암모니아 혼소 기술, ‘탄소 제로’ 기술로 과장해 소개”


기후솔루션이 제기한 신고 내용에 따르면, 한전은 파리기후협정과 국제 탈탄소 목표에 따라 반드시 명시해야 할 석탄 발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30년까지 석탄 발전을 전면 퇴출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과 달리, 한전은 자사의 퇴출 시점을 2050년으로 잡고 있다.

또한 LNG의 가격 변동성이나 관련 사업 지연에 따른 주요 재무 리스크 역시 축소해 공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소와 암모니아 혼소 기술에 대해서도 ‘탄소 제로’ 기술로 과장해 소개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제공한 것으로 지적됐다.

싱가포르의 증권선물법(SFA)과 SGX 거래소의 메인보드 규정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정보를 반드시 공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 신고를 통해 한전의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한전의 해외 채권 발행 및 자금 조달 능력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게 기후솔루션의 주장이다.

한전은 최근 몇 년간 누적된 수십조 원의 적자 속에 2022년부터 총 7차례에 걸쳐 42억 달러(약 5조 9000억 원)의 채권을 글로벌 시장에서 발행해 왔다. 특히 2024년까지는 이를 ‘그린’ 또는 ‘지속가능’ 채권으로 분류해 발행했으나, 실제 자금 집행이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불투명해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신고된 바 있다.

◇ 에일린 리퍼트 연구원 “화석연료 관련 리스크 왜곡·축소 공시는 투자자 신뢰 훼손”


올해 2월에는 지속가능 채권이 아닌 일반 채권 형태로 자금 조달 방식을 전환하면서, 기후 리스크 공개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한전이 발행한 채권 규모도 당초 예상됐던 10억 달러에서 4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든 바 있다.

기후솔루션은 한전이 투자설명서에서 기후 리스크를 누락한 사실이 명백하다고 주장하며, SGX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필요한 규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한전의 공시 관행이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금융시장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을 퇴행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관행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록 외국변호사는 “투자자들은 발행 기업이 직면한 기후 리스크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며 “기후 리스크는 곧 재무 리스크이고, 이를 누락하는 것은 시장을 오도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신고는 SGX가 기후 공시와 관련된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규제적 대응을 보일지를 가늠할 중요한 사례로 주목된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은 그린워싱, 좌초자산 리스크, 화석연료 의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에 있다.

에일린 리퍼트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연구원은 “이번 사안은 단지 한전이라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중요한 계기”라며 “화석연료 관련 리스크를 왜곡하거나 축소한 공시는 투자자 신뢰를 훼손하고, 책임 있는 금융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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