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국군 유해, 1만 5470km 돌아 가족 품으로

최종문 기자 / 기사승인 : 2022-07-15 11: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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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에서 발굴되어 봉환된 유해, 고 박진호 일병으로 확인
-카투사로 입대, 미 7사단 소속으로 장진호 전투중 전사 추정
▲ 지난해 백마고지를 방문한 참전 영웅들이 국군 추정 유해 앞에서 약식 제례를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일요주간 = 최종문 기자]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가 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은 15일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을 거쳐 국내 봉환된 6·25 전사자 신원이 고(故) 박진호 일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 일병의 유해는 북한지역에서 발굴돼 1990~1994년에 DPAA에 인계된 유해 중에 포함됐다. 국유단과 DPAA가 공동으로 신원 확인을 진행하다 국군 전사자로 추정돼 국내로 봉환됐다.

고인의 유해는 북한과 DPAA 하와이지부를 거쳐 총 1만5,470㎞에 이르는 긴 여정을 거쳐 고향 땅을 밟았다.

봉환 당시에는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같은 해 고인의 남동생은 6·25 전사자 유족임을 알게 된 지역 농축협 관계자의 권유로 유전자(DNA) 시료 채취를 신청했다.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은 동두천시 보건소를 통해 채취한 유족의 유전자 시료를 분석해 가족관계 가능성이 있는 유해를 특정했고 추가검사를 거쳐 지난달 형제 관계를 확인했다.

감식다에 따르면 1928년 출생인 고인은 6·25 전쟁이 터지고 두 달 후 1950년 8월 16일에 부산에서 입대했다. 일본 징용 경험으로 일본어와 영어가 가능했던 고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군사교육을 받은 후 미 7사단 31연대에 카투사로 배치됐다.

미 7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부산항을 거쳐 북한 이원항에 상륙하는 원산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함경남도 장진읍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1950.11.27~12.11)에서 전사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북진하던 미군과 중공군 간 전투로, 당시 미 제1해병사단(미 7사단 31연대 배속)은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돼 큰 타격을 받으면서도 적 포위와 장진호의 혹한을 극복해 성공적인 '돌파 작전'으로 평가받는다.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에 남동생 박진우 씨는 “집안을 위해 희생한 형님이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니 억장이 무너지지만, 형님을 찾았다니 감개무량하고 형님을 그리워하셨던 부모님 옆에 하루라도 빨리 함께 고이 안장해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오는 19일 오후 3시 동두천 국민체육센터에서 지역 주민과 자치단체, 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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