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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사진 = 효성그룹 제공) |
[일요주간 = 이수근 기자] 1935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자와 하정옥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3남 2녀 중 장남으로 경기고등학교 재학 중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히비야 고등학교와 와세다 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공과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국제적인 교육 배경은 이후 효성그룹의 글로벌 진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6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효성에 합류한 조 명예회장은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 회사인 동양나일론의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며 그룹 내 주요 사업인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을 이끌었다. 1982년에는 조홍제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에 효성그룹의 회장직을 맡으며 그룹을 이끌어갔고 2017년 건강상의 이유로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조 명예회장은 기술 중심의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공학도로서 기술개발 능력을 기업의 미래로 보았기에 1971년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개발을 주도해왔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기술 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는 효성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71년에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새로운 기술 개발을 주도했으며 이는 효성그룹이 세계 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조 명예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의 리더십 아래 효성은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주요 국가에 제조 및 판매 자회사를 설립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이러한 글로벌 전략은 효성의 매출에서 해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조 명예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2000년 한미 비즈니스 미팅에서 처음으로 한미 FTA의 필요성을 제기한 그는 FTA 체결 후에는 직접 미국 의회를 방문해 설득 작업을 벌임으로써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조 명예회장의 이러한 노력은 한국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나아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효성그룹은 기술 혁신과 글로벌 진출을 통해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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