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 ‘이자스민’

영화 '완득이'가 2011년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주목을 받는 한 여배우가 있다. '완득이'에서 극중 완득이(유아인)의 엄마로 출연한 외국인 배우 이 자스민(34)이다.
그녀는 언론들의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많이 지칠 법도 하지만 밝은 모습으로 <일요주간>과의 인터뷰에 응해줬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자스민은 17년 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이다. 서울 시청 '생활지원과'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예쁘게 메이크업을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제가 영화랑 별 차이가 없다는 거죠.(하하)"
‘완득이’ 상영 이후 다문화가정, 이주여성의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게 자스민의 설명이다. 그래서 일까, 그녀는 뿌듯함과 동시에 왜곡된 다문화 가정의 실정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요즘 ‘완득이’의 인기만큼 자스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그녀는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라고 겸손해 했다.
문: 자스민씨 요즘 영화가 잘되니 좋죠.
답: 일단 처음에는 좋았는데...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어요.(농담) (처음엔) 영화가 잘될지 걱정이 많았는데 (흥행에 성공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한국도 이젠 이런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득이’는 코믹한 소재도 많지만 우리사회 소외계층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 장애인)을 등장시켜 소박하면서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이 그동안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들을 위해 몇 년간 많은 노력을 해온 것에 비해 아주 단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다문화 가정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해 그녀는...
G20 강의 릴레이에서 강의를 할 만큼 그는 한국어에도 유창하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많다보니 공무원 교육기관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문: 강의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답: 제가 하는 다문화 강의는 이러한 사업을 하면서 개인적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 하고 ‘대한민국 다문화 사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17년 살았습니다. 예전과 지금 한국은 많이 변했어요. 다문화 인으로서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강의를 위한 공부를 위해 학예회를 가기도 합니다. 공무원 교육기관에서만 강의를 하다가 G20 릴레이 강의를 제의 받아 광화문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문: 다문화 가정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습니까.
답: 서울시에서 하는 일 이전에 ‘물망울 나눔회’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했어요. 이곳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순수하게 이주여성의 회비로 운영되어 가는 모임입니다.
KBS ‘러브인 아시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과 패널이 모여서 한번만의 만남이 아쉬워 처음에 계를 하는 모임 형태로 갔어요. 나중에는 주변 이주여성들이 ‘한번 뭘 해보자, 도움을 줘보자’라고 생각해 시작 했어요.
일일 찻집으로 수익을 낸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들 만남은 ‘러브인 아시아’를 통해서 자스만민 자신과 같은 나라인 필리핀에서 건너온 한 여성을 돕는 것에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필리핀 이주여성인데 남편이 쓰러졌어요. 아이 둘도 장애 3급이었어요. 그분을 위해 2008년부터 계속해서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일일찻집을 하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필리핀 사람에 대한 또는 동남아 쪽 사람은 가난하다고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인식이 잘못돼 있다는 것을 자스민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문: 한국인이 생각하는 필리핀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 필리핀 갔다 온 한국인분이 ‘필리핀 도둑이 많더라... 너 중매해서 결혼 했구나... 필리핀보다 여기가 살기 좋지...’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필리핀에 대한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사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완득이를 통해 필리핀에 이런 사람도 있더라, 거기도 학교도 있겠구나, 의사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녀의 슬픔, 그리움

“영화를 찍을 때 슬픈 장면은 모두 그이를 생각했어요.”
선원 이였던 남편은 17년 전, 2박 3일 필리핀에서 머물면서 당시 17살 학생 이였던 자스민을 우연히 편의점에서 만났다. 첫 눈에 반한 그는 처음 본 순간부터 구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문: 남편 분을 어떻게 만났나요.
답: 1년 반 연애를 하면서 남편은 어쩜 많은 것을 포기했죠. 2주에 한 번씩 필리핀을 왔다 갔다 했어요. 필리핀 비자문제도 있었고요. 그 사람은 그대로였어요. 필리핀에 있을 때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고 같이 밥 먹고... 매일 나에게 헌신을 다 했어요. 학교 끝나면 정문 앞에 서있고요. 학교가기위해 아침에 나오면 집 앞에 서있고...
나이 차이는 12 살 차이였다고 한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국제결혼에 대한 생소한 관점에서 이들의 결혼은 축복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스민은 극복했다.
“17살 때 만나 19살 때 결혼을 했어요. 시댁식구들이 참석하지 않은 채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저희 아빠도 끝까지 반대했지만 결혼을 하게 됐어요.”
자스민은 남편이 아들, 딸 두 아이를 데리고 꿋꿋히 살아가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때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
“그 때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조차 흔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무료로 하는 곳도 많이 있고요.”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던 자스민은 “유일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이 ‘연세 어학당’이 있었지만 그 당시 세 달 수험료가 2,500불 이였고 남편 월급이 120만원 이었어요” 라며 회상했다.
지금 다문화 가정을 도울 수 있는 단체나 지자체, 지원센터들이 많다. 이런 부분은 좋아졌지만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털어놨다.
문: 예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 한국 생활은 어떤가요.
답: 지원 정책은 좋아졌습니다. 제가 일하는 ‘생활지원과’ 같은 곳이 생길 것이라고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어요. 외국인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정부에서 인정을 하고 이런 정책들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정치란?
“자식들이 엄마인 나를 롤 모델로 삼으라고 저는 더욱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엄마, 다문화 가정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요. 정치를 해야 한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다면, 아랫세대가 좀 더 좋아질 수 있다면 (정치를) 하겠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현재 환경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을 본인을 위해서가 아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그는 열심히 일하고 더 나아가 외국인 복지 및 다문화 가정의 나아갈 방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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