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수상에 대해 그는 “내가 개발한 기술이 실용화됐다는 사실보다 분뇨만 만진 것을 높이 사서 운이 좋게 수상한 것 같다”며 겸손하게 소감을 전했다.
최근에 영화나 TV도 볼 여유가 없을 만큼 바빠졌지만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삼백(三白)의 고장, 경상도 상주가 고향인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인 농잠고등전문학교로 진학했다.
“학창시절 학교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박완철 박사. <일요주간>이 지난 2일 우직하게 한 길만 고집해온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 중학교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역사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으면서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고 나는 농잠고등전문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예전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고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전문학교 시절 5년 내내 하기 농사일을 하고 또 서울로 올라와서 농대로 진학했는데 다른 과로 갈 생각은 안했나.
▲ 내가 다닌 농잠고등전문학교는 5년제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변경됐는데, 여기 다니면 대학 2년 과정을 버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서울대는 편입생을 받지 않았고, 농대가 있었던 고려대와 건국대만 편입생들을 받아줬다. 법대를 가려고 입시 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건국대 농대로 편입했다.
- 그토록 바라던 서울로 올라와서 좋았겠지만 한편으로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 전문학교 시절 농사일도 하면서 공부하느라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일주일에 영어와 수학을 한,두 시간씩만 배웠고, 실력도 바닥이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열심히 공부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고시원 같은 곳에서 한 방안에 5~6명이 지내며 밤에 잘 때는 책상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새우잠을 잤다. 암기력이 좋아서 공부하는 게 힘들진 않았지만 내가 대학을 다녔던 시대는 풍요롭지 않아서 항상 배가 고팠다. 그게 조금 힘들었다. 물론 집이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시골에서 학비를 보내주시는 것이 죄송스러웠기 때문에 하숙할 생각은 안했다.

▲ 환경과 농업은 관계가 깊다. 논에다 비료를 주는 것과 미생물로 오염물을 분리하는 것 등 비슷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어릴 적에 농사를 지으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고 보살피는 것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길러줬다.
- 미생물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 처음에는 토양 미생물을 적용 안했다. 아이디어를 낸 게 우연히 길을 걷다가 낙엽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낙엽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부식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착안해 직접 지리산, 한라산, 서울에 있는 산들을 다니면서 낙엽들을 모았고 하나하나 실험을 통해 발견해냈다. 땅 속에 있는 부엽토를 분리하고 대량 증식해 좋은 미생물만 뽑아낸다. 실험결과 냄새도 안 났고, 분해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또 모기유충 퇴치에도 굉장히 효과가 좋았다. 이 미생물을 이용해서 유충을 잡아내는 데 일조하고 싶다.
- 미생물을 덩어리 형태로 보관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보통 육안으로 보기 어려운데 저렇게 관리하는 이유가 있나요.
▲ 세계적으로 막대 미생물을 하는 나라는 없다. 한마디로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다. 영하 70도로 냉동보관해놨다가 상온에서 녹으면서 증식하는 방식이다. 액체상태라면 계속 넣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이렇게 보관하면 10년 정도 쓸 수 있다.
- 그동안 연구에만 몰두하는 박사님에게 가족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았나.
▲ 가족들은 전혀 서운해 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들은 나를 전폭 지지해주었다.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 현재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가 있나요.
▲ 앞으로도 실용성을 더 높이기 위해 미생물 분야에 몰두할 예정이다. 또 김치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연구해 폐수에 적용해보고 싶다. 정부는 과학자들이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뭐가 유명하다고 하면 그쪽으로 지원이 쏠리고 그러다가 돈이 된다고 하면 또 그쪽으로 쏠린다. 이것저것 하면 전문성도 떨어지고 자기 손해다. 나 역시 우직하게 한 분야만 연구한 끝에 오늘의 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제 키스트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4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박완철 박사. 그에게서 나이가 들어도 열정과 꿈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가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불행하든 행복하든 이 모든 게 우리의 인생임을 잊지 말고 가슴 속에 등불을 켜고 한 길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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