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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락센터’ 실무자 쌍용차피해자 가족 조은영 |
정리해고 후 3년여가 흐르면서 돌연사 또는 자살로 22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피해자들은 더욱 고통스럽다. 또 노동자뿐 아니라 현장을 함께 겪은 가족들은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자녀들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고 이들을 보듬어 줄 곳은 없었다.
이에 지난해 3월부터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를 비롯한 각종 단체, 개인들의 지원으로 쌍용자동차 피해자 가족들은 치유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30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피해자 가족의 심리를 치유해 주는 목적으로 설립된 ‘와락센터(대표 권지영)’는 피해자와 배우자, 해고자녀들의 심리 치료와 아이들을 위한 배움의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지난 5일 <일요주간>은 ‘와락센터’를 방문했다. 쌍용자동차 피해 노동자 가족으로 ‘와락센터’에서 상근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조은영(39)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문>
“시간이 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세월이 가서 망각되고 흐려지는 기억들도 있지만 이 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청문회를 지켜보면 그 때의 기억들이 막 살아나더라고요. 온몸이 감정적으로 떨려옵니다.”
- 일문일답-
▶‘와락센터’를 통해 심리적 안정은 도움이 됐나요.
- 남편도 계속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늘 평온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조금 더 마음을 기대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편안해요.
▶2009년 해고 후 ‘와락센터’가 설립되기 전 1년 반 정도의 생활은 어땠나.
- 몇 달 동안 실업급여를 받고요. 근데 징계해고자 같은 경우는 실업급여를 처음에 안 주었어요. 저희 남편이 징계해고자였는데 소송을 걸어 결국 실업급여를 받았고요. 부인들이 일자리를 급하게 찾게 되었죠. 부인이 버는 벌이가 남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보험을 다 깨고 아이들 학원을 다 끊었어요. 그리고 심리치료 해주시는 정혜신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오히려 저희가 마음이 고통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하는 것이 나만의 문제인 줄 알고 있었죠. 정리해고의 후유증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어요. 일반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그러지는 않았고요.. ‘저희가 의례 이렇게 돼서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짜증나는 것이 당연하지’ 라고 생각을 했고 정말 나 자신의 상태를 몰랐어요. 선생님을 만나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그렇지 않았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와락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어떠한 점을 알게 되었나요.
- 다 각자 자기 안에 가두어 둔거에요. 처음에 저희가 정혜신 선생님에게 집단상담 권유를 받았어요. 사실 당시 이것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했어요. 제가 1기로 상담을 받았지만 조금 우려가 되었어요. ‘와서 얘기를 한다고 편안해지고 화가 나고 하는 것이 없어질까’ 하는 의문이 컸어요. 하지만 실제로 참여를 하면서 달라졌어요. 한 기수가 8주 상담을 받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와요.
어느 누구에게도 못했던 이야기들하고 실제로 상담 자리에서 자살시도를 한 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가끔 만나는 동생이고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동생인데 그 친구가 자살시도를 한 것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고 너무 놀랐어요. 처음에 반신반의 했던 부분이 나중에는 ‘심리치료를 하면서 치유해 나가는 게 낫게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게 되었어요. 실제로 참여를 하지 않고는 어떻게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이것을 받으면 주사를 맞은 것처럼 확 좋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를 해서 치유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해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많이 좋아지셨나요.
- 그럼요.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요. 그 시간이 힘들지만 제 마음이 다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큰 힘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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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락센터’에서 해고자녀들에게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야금을 가르치는 기인숙 선생님은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을 대할 때요.”라고 가르치면서 느낀 점을 흐느꼈다. |
▶피해자 가족으로서 ‘와락센터’에 와서 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 해고된 이 후에 같은 경험을 통해서 ‘와락센터’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희 평택만 공장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창원에도 있고 한데 저희만 이런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미안해요. 워낙 많은 분들이 고통을 받고 있어요. 한편으로 제 2의 ‘와락센터’는 없어야지 하면서도 이런 공간이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만들어 졌음 해요.
▶남편분이 해고가 되고 어떤 점이 가장 힘이 들었나요.
- 아이들 문제가 가장 커요. 내가 학원을 못 보내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에 접하게 되는거에요. 신학기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는데 아빠 직업을 적어 내는 것을 주었을 때 당황스럽더라고요.
▶‘와락센터’를 통해 피해자 가족 분들이 심리적 부분을 치유하게 되나요.
- 사실 치료를 거부하는 분들이 많아요. 단절되어 있는 분이 많더라고요. 근데 한 분 한 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명절도 있었고 가을이고 쌀을 보내준다고 했는데(피해자 가족분)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어요. 처음 ‘와락센터’가 설립 되었을 때는 아이들 학용품을 준다고 해도 반응이 거의 없었는데요. 이제는 피해자 가족 분들이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같아요. ‘와락센터’가 피해자 가족 분들에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문재인 대선후보가 ‘와락센터’에 방문에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같이 느꼈을텐데요. 당시 피해자 가족 분들이 어떠한 사항들을 이야기 했나요.
- 일단 국정조사를 꼭 하게 해 달라 고 요구했어요. 당장 복직을 시켜달라는 것 보다 당시 저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경영진, 경찰청장, 책임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어요. 우리를 짐승처럼 대하고 했는데요.. 그것을 어떻게 잊을 수 가 있겠어요.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에게 울분을 터트리고 뛰쳐나가신 분들도 있고요.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든 분들이 많아요. 여러 가지 환경이 힘들게 하고 있어요. 이러면서 사람이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치료를 받으면서 피해자 가족 분들에 대해 서로 몰랐던 점을 알게 되었을 텐데요.
- 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23번째로 죽어야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아이들도 일탈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해고자 자녀라는 아이들의 피해의식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에요.
▶개인적으로 또는 ‘와락센터’의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 제가 이 질문을 받고 잠깐 동안 생각이 든 것이 무언가 계획을 하고 산 것이 굉장히 오래된 일 같아요. ··· ‘와락센터’ 설립 후에도 여러분이 돌아가셨어요. 와락은 이런 것(자살)을 막아보자는 취지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한 분 한 분 석연치 않은 일이 있을 때만다 자괴감, 죄책감이 굉장히 컸어요. 무엇을 놓치고 잘못 하고 있는 것처럼요. 22번째 돌아가셨을 때는 이곳에서 일을 안 하려고 그만두려했었어요. 개인적으로나 저희 피해자 가족들의 모든 바램은 앞으로 이런 일이 없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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