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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전 생활씨름연합회장 이봉걸 |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지원해 선수들을
육성시켜야 전통씨름의 맥락을 이어 나갈 수 있다"
경기장 관중석이 만원이라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한 사람들이 출입문을 부수겠다고 진행 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씨름 경기장의 모습은 너무도 썰렁하고 초라하기만 하다. 경기 운영을 위해 참석한 대한씨름협회 직원들과 대회를 주관하는 관계자들... 관중석엔 선수들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지난 3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씨름의 인기가 이처럼 전락한 것인가.
이에 <일요주간>은 씨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하장사 ‘이봉걸’ 대전 생활씨름연합회장을 만나 추억속의 이야기들과 앞으로 씨름의 발전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 씨름을 시작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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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도 중학교 입학하면서 유도를 하게 되었다. 유도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때 당시 영남대를 다니고 있던 선배에게 목조르기를 당해 저승을 3번 다녀왔다. 너무 힘들어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농사도 짓고, 감자도 하고(재배), 배추도 하고, 특수재배도 하고 여러 가지 일도 해봤다.
그러다 1975년도에 중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친구들 대학교 다닐 때 난 중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해 6월 대회에 나가 나보다 덩치도 크고 키도 훨씬 큰 선수와 씨름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겼다. 처음 받은 상이었다.
이 후 씨름을 계속하게 되었다.
- 선수활동 당시에 키가 큰 선수들이 많이 있었나.
▲ 없었다. 나와 처음 겨루었던 그 친구는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 말고는 나보다 큰 사람은 없었다.
선수들의 신장은 180~190Cm정도였다.
- 남들보다 큰 키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
▲ 요즘은 큰 키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때는 에피소드라고 할 것이 없었다.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버스 천장이 낮아서 불편했던 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 은퇴 후의 생활은 어떠했나.
▲ 1990년 은퇴 후, 92년 무렵 죽염사업을 하게 되었다.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사업제의를 했던 동업자의 배신으로 모두 잃게 되었다. 혼자 새로 사업을 시작하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거래처 사장들과 이런저런 문제로 그 또한 어려워졌다. 이후 씨름 감독을 하면서 계약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일도 있었고... 힘든 일이 많았다.
지금은 대전 생활씨름연합회장도 맡고 있고,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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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장사들의 모임이 있다. 1년에 2~3번씩 모인다. 내년 천하장사 대회가 있는 날이 정기 총회다.
- 현재 우리나라 씨름단은 얼마나 되나.
▲ 지자체에서 팀을 많이 만들긴 했다. 전국체전을 목표로. 기업홍보를 위한 씨름단은 많이 없어졌다. 지금은 프로보다는 세미프로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 씨름이 인기스포츠에서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80년대 말까지는 선수들의 몸무게가 130Kg이 넘지 않았다. 115~125Kg정도였다. 순발력도 있고 기술력도 있고. 하지만 점차 대형화 되면서 순발력이 무뎌지고 특정한 기술도 없어져버리고 몸으로 밀고 힘으로 버티고...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대한씨름협회)가 160Kg으로 줄였다. 150Kg까지 줄이려고 했으나 160Kg에 멈췄다.
선수생활 당시에는 2시간에 120판씩 연습을 해서 지구력도 좋았다. 쉬지 않고 연습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경기는 30초 만에 끝내고 쉬는 건 30분 쉬더라. 예전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홍보도 잘되고,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도 좋아진 점이 있다면, 씨름의 날이 제정되고, 씨름 진흥법이 제정된 것이다. 정부에서 씨름을 지원해 주고 있으니 많이 좋아졌다.
- 씨름이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현재 국민생활체육, 대한 체육협회 산하에 대한씨름협회, 그리고 세계씨름연맹이 있다. 대한씨름협회에서 세계씨름을 키우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 세계씨름연맹에서 나서야 하는데 능력부족으로 힘들어한다. 지도자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은 많이 들어오는데 파견 보낼 사람이 없다. 아마추어, 실업팀 등 국내에 감독, 코치들로 모두 활동하고 있고, 또 파견을 가게 되면 대한씨름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는 참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나서질 못하는 것도 문제다.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지원을 해준다 하더라고 사람이 없어 못 보내는 실정이다.
씨름은 우리나라 전통이고, 외국인들도 좋아한다. 이보다 긴장감 있는 경기는 없다. 유도, 태권도 등은 운동을 하면서 쉴 수 있는 여우가 있는데 씨름은 샅바를 잡는 순간부터 넘어질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동적인 운동이라며 좋아한다.
지도자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들어줄 수 없어 매우 아쉽다.
- 경기는 주기적으로 있는가.
▲ 대한씨름협회에서 주관하는 경기들이 많이 있다. 대통령배도 있고, 선수권대회도 있고...
전국체전, 소년체전 등 1년에 6~7개정도의 경기가 있다.
- 어린 씨름선수들이 별로 없어 걱정이 많을 것 같다.
▲ 씨름이 한창 부흥을 일으킬 때는 초등학교에서도 많은 팀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 대회를 많이 치러 알리는 것도 좋지만 초등학교에 지원을 많이 해 선수들을 차근차근 육성시킬 수 있도록 해야 앞으로 전통적인 씨름의 맥락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10년 뒤에는 선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걱정을 안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스포츠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씨름이다. 양궁, 검도 등도 마찬가지다. 선조들이 군사훈련을 할 때, 창이나, 칼, 무기를 가지고 했지만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훈련에 지쳐있을 때 손에든 무기를 놓고 동군 서군으로 나눠 씨름을 하며 사기를 살렸다.
앞으로 더 발전 되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기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 올해 대한씨름협회 회장선거가 있다. 어떠한 사람이 회장이 되었으면 하는가.
▲ 새로 오는 회장님은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한다.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앞으로 어찌될지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씨름이 많이 알려지고 다시 인기 종목이 될 수 있도록 어디서든 노력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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