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우리시대의 사명”

공은비 / 기사승인 : 2013-03-19 15: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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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운찬 동반성장 연구소 이사장
정운찬 동반성장 연구소 이사장
[일요주간=공은비 기자]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관적인 행복이라 해도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입을 옷이 없고, 마음 편히 누워 잘 수 있는 집이 없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될 수 없지 않을까? 각자가 원하는 행복은 주관적일지언정 그 행복을 고민하고 누리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매우 간단하고도 명확하다.

100일 전, 박근혜 호가 출범했다. 앞으로 5년 간 항해할 박근혜 호의 목적지는 국민행복이란다. 박근혜 선장은 이를 위해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다. 과연 이 두 가지 기치를 통해 앞서 이야기한 간단한조건들은 충족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정운찬 동반성장 연구소 이사장을 만나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을 위한 행보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이사장님을 포함한 국민, 우리 모두에게 행복은 무엇이라고 보나.


- 한 개인이 행복하려면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돼야 한다. 사회 전체 행복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균형은 중요한 요소다. 빈부 격차가 심하다든지 지역 간 격차가 심하면 국민들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대학에 다닐 때 버트런드 러셀의 책에서 행복은 만족에 있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만족이란 것도 인간의 삶에 최소한 갖춰져야 할 요소들의 균형이 이뤄졌을 때 가능하지 않나.


균형이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아주 중요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균형을 이루기 위한 동반성장이야말로 행복을 위해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내세웠고, 그 방편으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장의 정당성과 가능성은 논외로 하고 박 대통령이 주장한대로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어떻게 보시나.


-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인 대표적 사례가 기초연금에 관한 방황이었다. 우선,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기초연금제도 자체는 좋은 뜻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단지, 보편적 복지건 선별적 복지건 간에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구분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심을 쓰듯 복지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지금 꼭 (복지를)하겠다고 하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증세를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주장일 테니 아무도 쉽게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증세를 하지 않고, 예를 들어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서 복지정책을 한다면 그 채권을 언젠가는 갚아야 하고 그걸 갚으려면 언젠가는 또 세금을 걷어야 하지 않겠나. 그건 결국 미래 세대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이다.


현재 무상급식만 보더라도, 보편적 무상급식은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 증명 되고 있다. 내가 직접 학교들을 방문해 보니 여러 학교가 무상급식을 하느라 예산이 부족해 다른 일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실 전구를 바꾸지도 못하고, 운동장에 구덩이가 파였는데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더라. 이러한 문제들에 부딪혀,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한 보편적 복지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재벌의 손자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우리 상황에는 선별적 복지가 맞다는 이사장님과는 반대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측에서는 보편적복지가 불가능한 이유로 거론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국가재정 문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다른 부문의 불필요한 것을 줄이면 가능하다는 주장인데, 실질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국가의 340조 예산을 지출하는 것 중 필요 없는 예산은 별로 없다.


예를 들어 그들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4대강에 지출하는 돈을 줄이거나 쓰지 말고 무상급식을 하자 이런 건데, 금년에 4대강 사업은 끝이 날 거다. 4대강 예산이 원천적으로 끝나면 어떤 부분에서 메운다는 건가.
조금 극단적인 예일 수 있지만, 국방비에 대한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평화주의자의 시각에서는 지금 지출하는 국방비가 너무 많다며 그 예산을 줄여서 무상급식을 하자고 주장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정보가 바탕이 되지 않은 주장이고 각자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개인생활과 마찬가지로 사회운용에서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주장해야한다. 보편적 복지는 우리(국가재정)능력을 벗어난다. 현재 한국이 굉장히 잘산다면 모를까, 아직 그 정도의 재정적 여건이 충분한 나라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은 물론, 정치권의 보수, 진보, 여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의 필요에 대해 큰 틀의 동의가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선출마 이후 줄곧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는데 제대로 가고 있다고 보나.


- 사람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성장과정으로 보나 또는 정치적 배경으로 보나 경제민주화에 본래 관심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총선이나 대선 전에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해 본적도 없었다. 그래서 선거용이려니 했는데 당선되고 중소기업중앙회를 가장 먼저 찾는 것을 보고 이제 옳은 방향으로 가려나보다 했다. 그러나 며칠 전 나온 국정수행과제 발표내용을 보니 경제민주화가 빠져있고, 취임사에도 억지로 끼워 맞추듯 넣은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는 우리 시대의 사명이기 때문에 그걸 무시하거나 등한시 했다가는 경제적 약자는 물론 경제, 더 나아가 사회전체가 붕괴될 위험마저 있다는 것이다. 즉 국민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짚어주지 못한다면 국정운영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결국은 이 방향(경제민주화)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동반성장에는 남녀간 동반성장도 포함될 텐데, 남녀차별의 문제는 식상하리만치 오랫동안 진행돼 왔으나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치를 내걸기도 했는데, 이런 주장에 진정성을 실으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주요 공직과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여성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능력이 있는 여성임에도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보다 평가절하 되는 경우가 아직도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최초로 여성교수들을 연구처장과 학생처장으로 세웠다.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된 보기를 보여주고 이슈화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리라 본다.



얼마 전 한 강연에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두 중요한 해결과제라 해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동반성장에 있어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 그건 당연히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의 문제다.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이 되면 다른 동반성장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넓은 의미로 도시 농촌간, 빈부간,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등에서의 격차 문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동반성장 문제 안에 포함된다. 대기업에 부자가 많고 또 부자는 도시에 많고 수도권에 많지 않나. 한 부문씩 보면 모두가 중요하지만 범위를 좁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문제를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부분이 많아질 거다.


이사장님은 더불어 함께 잘 살자는 동반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초과이익공유제를 꾸준히 주장해 왔다.


- 초과이익공유의 개념은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시작했다. 제작자가 배우도 고르고 감독도 고르고 배급처도 골라야 하는데 그 영화의 성공여부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최소의 비용만을 주는 거다. 영화가 흥행하지 못해 이익이 별로 없으면 그대로 최소비용만 받고, 영화가 잘 돼서 이익이 많아지면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 게 초과이익 공유다.


그걸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수출의존국으로 GDP55%를 수출이 차지한다. 수출을 안 하면 못 산다. 수출을 많이 하려면 물건이 좋거나 값이 싸야한다. 하지만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또한 수출대기업의 임직원들이 단기실적 위주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 개선보다는 가격경쟁, 가격 인하의 유혹을 받게 되는 거고 이게 바로 부품하청업체에 대한 납품가 후려치기로 이어지는 구조적 모순을 만든다.


분명한 불공정 거래지만 그걸 사회에서 눈감아주지 않으면 수출단가가 떨어지지 않아 수출이 어려워지니 일단은 용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런 방법으로 이익을 누린 수출대기업이 그 이익의 일부를 협력중소기업과 나누라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그 이익이 중소기업들, 납품해준 업체들에게 분배되면 그 기업들 역시 기술개발에 더 투자할 수 있고, 더 좋은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이익은 대기업들에게도 다시 돌아오는 선순환적 구조가 형성된다. 그걸 대기업들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수익을 빼앗아 중소기업에 나눠줘? 이게 자본주의야?” 얘기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대기업이 이익을 올린 건 중소기업이 좋은 부품을 만들어준 대가 아닌가. 또 불공정한 거래의 방법으로 납품가 후려치기를 한 데 대한 보상적 차원해서 이익을 분배하자는 거다. 너무 당연하지 않나.


언론에서 크게 회자된 부분이기도 한데, 이사장님이 주장하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 경제학 책에서도 배우지 못한 말이다라고 비판한 사실이 있다.


- 근시안적 사고다. 중소기업이 잘돼야 대기업에게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또한 보상적 차원을 시혜적 차원으로 오해해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를 지낸 세계적 석학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말하지 않았나. “21세기는 이기적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한다. 미국의 빌게이츠, 워런 버핏, 마이클 블룸버그 등도 그들이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자고 하는데 현재 우리대기업, 재벌들은 아직 그런 모습이 없다. 그건 사실 궁극적으로 그들을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아프리카에도 빨리 가려면 혼자가도,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한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재벌기업들만 (동반성장의 의미를)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 모르고 있거나 또는 마지막 한 푼까지 챙기려는 탐욕이겠지.


동반성장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게 아닌 것 같다. ‘분배차원에서의 동반성장이 아니라 함께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본론적인 입장에서도 필요한 개념인 것 같은데.


- 그렇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 경제학의 시초라고 하지만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을 쓰기에 앞서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절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게 사실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였다. 중상주의가 지나치게 만연해서 독점 기업들이 제멋대로 하니까 그걸 깨기 위해 자유주의 사상이 나온 거다. 근데 이걸 갖다 방종, 내멋대로 하는 것으로 오인한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부터 우리 대기업들이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동반성장을 오랜 시간 추진하면서 이사장님이 이뤄온 정책들이 실제 국민들의 행복에 연결됐다고 생각하나.


- 몇몇의 일화가 있다. 내 자랑인지 모르겠지만.(웃음) 작년 부산에 갔을 때 건장한 청년이 갑자기 다가와 나를 붙잡더라. 무슨 봉변을 당하나 하고 잔뜩 겁을 먹었는데 아휴 걱정하시 마십시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선생님 덕분에 이제는 재벌들이 수입차 파는 일은 없어질 것 같네요.”했다. 또 광주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분이 불쑥 오더니, “정운찬씨 저녁 값 내드리려고 30분이나 기다렸습니다.”라며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LED조명 생산업을 선정해줘서 대기업들에게 밀리지 않고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경제적으로 저 끝에 있는 분들까지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이 충족되도록 일조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낸 것에 이어, 개인적으로도 동반성장연구소를 운영 중인데, 애로사항은 없나.


- 내가 사회에서 받은 혜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동반성장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점이 많다. 하소연일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지난 대선당시 문재인, 박영선 의원이 연구소로 찾아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그게 언론에 왜곡 보도돼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둥, 정운찬은 좌파였다는 둥 별 얘기들이 많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연구소에 들어올 예정이던 기부금이 끊기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 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연구소 입장에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나는 항상 중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디서든 건설적 비판을 할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동반성장과 관련된 연구에 아직 할 일이 많다. 세부적인 것들을 연구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연구소에서 포럼을 열 예정이다. 동반성장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무엇인지, 그 걸림돌을 어떻게 치워낼 것인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야한다. 구체적 계획 중 하나는 ·을 문화 개선 캠페인이다. 또 좀 더 적극적으로 관련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애로사항을 수집해 사회에 알리려 한다.


이번에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내가 주장해온 동반성장의 의미부터 구체적인 계획까지 쉬운 언어들로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펴냈다.

사실 책 제목을 처음에는 '행복의 경제학, 동반성장'이라고 하려다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으로 바꿨다. 독자들이 보기에 행복추진위원회 등 정치권에 있는 용어를 베껴썼다는 오해를 하거나 또는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어렵게 느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누차 말하지만, ‘동반성장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또 어려운 경제적 용어가 아니다. 독자들이, 우리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가장 주목해야 할 문제다. 그 이야기를, 연구를 끊임없이 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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