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백대현 프로 8단] 최근 한국 바둑이 세계무대에서 주춤하는 사이 일본 바둑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6월 30일 도쿄(東京) 아카사카(赤坂)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제25회 TV바둑아시아 선수권 결승전에서 일본의 이야마 유타(井山裕太) 9단이 박정환 9단에게 198수 끝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두며 세계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야마 유타 9단(25)은 현재 일본에서 5관왕을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1인자다. 하지만 그 동안 일본 바둑의 침체 속에 세계대회에서는 한 번도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TV아시아 선수권전이 전체가 아닌 몇몇만 출전하는 제한 기전 이라고 해도 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사들이 출전하는 대회인 만큼 이야마 유타 9단의 우승은 일본 바둑에 부활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야마 유타 9단은 이번 대회 본선 1회전에서 이창호 9단을 2회전에서는 중국의 강호 왕시 9단, 마지막 결승전에서 한국 랭킹 2위인 박정환 9단에게 승리,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우승하기에 충분한 전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결승 대국에서 초반에는 박정환 9단이 앞서 나가는 느낌이었다. 발 빠른 속력 행마를 주무기로 국면을 지배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이야마 유타의 뒷심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특히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중앙 전투에서 이야마 유타 9단은 박정환 9단을 압도하며 승부의 쇄기를 박았다.
본 대회 두 번째 출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이야마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국제대회에서의 부진을 털고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 첫판에서 이창호 9단에게 승리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일본 바둑은 최근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예로 올 초에 일본기원과 관서기원이 손잡고 국제기전에서의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한 취지로 창설된 바둑 국가대표팀이 있다.
그 동안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기사는 일본기원의 추천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팀의 창설과 함께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모든 결정권을 갖게 됐다.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대표팀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국제기전에 출전하는 자격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일본 바둑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이야마 유타의 이번 대회 우승은 일본의 변화의 분위기 가운데 얻은 첫 수확이 아닐까 싶다.
세계 바둑계가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 국가 독주하는 것은 득이 별로 없다.
바둑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함께 성장해 나갈 때 그 힘을 바탕으로 해서 바둑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약진은 반가운 면이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한국 바둑이 최근 세계무대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최근들어 변화를 시도하며 기분 좋게 첫 수확을 거둔 것처럼 한국 바둑도 바꿀 건 과감하게 바꾸고, 투자해야 할 것은 충분히 투자하며 미래의 재목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8년 만에 일본의 대회 열 번째 우승을 결정지은 이야마 9단은 우승상금 250만엔(円)을, 준우승한 박정환 9단은 50만엔의 상금을 받았다. 한국의 KBS, 중국의 CCTV, 일본의 NHK가 공동주최하는 제25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는 제한시간 없이 30초 초읽기를 하며 도중 1분 고려시간 10회를 사용할 수 있다. 내년 대회는(26회)중국에서 열리게 된다.
집중분석
2013 KB바둑리그 5라운드 4경기 제1국
흑: 안성준 4단 백:최철한 9단
결과: 89수 끝 장생 무승부
한국 바둑 사상 처음으로 공식대국에서 장생(長生)이 등장해 화제다.
6월 29일 2013 KB바둑리그 '정관장-SK에너지'의 대결 제1국, 최철한(백)-안성준(흑)의 판이 장생 출현의 대국이다. 장생은 같은 모양을 이뤄내므로 ‘영원히 산다’, ‘영원히 반복한다’ 라는 뜻으로 장생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추측한다.
그 동안 3패빅이나 4패빅은 종종 등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장생은 세계 바둑의 역사를 살펴봐도 손가락에 꼽을 만큼 보기 드문 진귀한 형태이다.
공식적으로 장생은 두 번 등장한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93년 9월 2일 제49기 본인방전 본선리그 고마쓰(小松英壽) 8단과 린하이펑(林海峰) 9단과의 대국에서 장생의 형태가 나타났다.
이 대국은 반집을 다투는 미세한 승부였다. 결국 무승부로 처리하고 재 대국을 갖게 됐다.
두 번째는 2009년 9월 14일 후지쯔배 예선에서 왕밍완 9단과 우치다 슈헤이 2단이 장생이 나왔다.
이후 장생은 공식대국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기성이라 불리는 우칭위안(吳淸源)선생은 장생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장생은 백만 판을 두어도 한 번 생긴 일이 없다. 만일 생긴다면 경사스런 일이므로 팥밥을 지어 축하해야 한다’.
이렇게 확률적으로도 나오기 어려운 장생이 한국 바둑에서 출현한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최철한 9단과 안성준 4단은 한국 바둑계의 역사에 남는 대국을 남긴 셈이다.
한국 바둑계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생의 출현 과정을 함께 살펴보자. 바둑은 초반부터 좌상귀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장생의 첫 시초는 1도의 패싸움이다. 2도에서 패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백이 자체 팻감이 워낙 많아서 백 대마가 잡힐 돌은 아니다.
최철한 9단은 백 대마를 살리기 전에 3도 백 1로 찔러가며 좌변에서 응수타진 했다.
안성준 4단은 기분 좋게 흑 2로 중앙 백 한 점을 선수로 빵따냄하고, 후수이긴 하지만 흑8, 10, 12로 두터움을 선택한다. 수순 중 흑 8로 9에 곳에 둔다면 백 8, 흑 10으로 백11로 좌변에서 흑이 활용당한 모습. 여기서 최철한 9단은 좌변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백13으로 붙여서 좌상귀 흑 돌을 압박해간다.
이때 안성준 4단이 4도 흑 1을 선택했다면 장생의 출현은 없었을 것이다.
백 2에 흑 3으로 차단하는 것이 선수여서 흑 9까지 좌상귀는 빅이 나는 정도이다.
하지만 수순 중 흑 3으로 차단해 둔 것이 워낙 악수여서 바둑은 긴 승부. 결국 5도가 실전 진행이다.
흑 1로 밀어간 이상 이후의 수순은 필연이다.
흑 13이 본 대국의 마지막 수인 흑 89이다. 장생으로 빅이 되는 순간이다.
6도는 바둑이 무승부로 끝난 형태. 백 A에는 흑 B로 백 두점을 따내고, 백 C로 먹여치면 흑 D로 두어서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동형반복이 계속된다.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하는 토너먼트 승부라면 재 대국을 해야 하지만 본 대국은 단체전이기에 결국 두 기사의 승부는 재 대국 없이 무승부로 귀결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 정관장과 SK에너지가 2승씩을 주고받아서 팀 간 전적도 2승 1무 2패로 무승부가 된 것. 이 역시 KB리그가 5판 다승제로 치러진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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