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일 만에 사과한 동국제강…산재 사망 유족 “좀 일찍 하지 ‛오열’”

성지온 기자 / 기사승인 : 2022-06-17 16: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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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 포항공장 30대 하청 노동자 고 이동우 씨 숨진 지 88일 만에 사과
-8차례 협상 끝에 경영책임자 공개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받아낸 유가족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이하 해결촉구모임)’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문 도출 소식을 전했다. <사진=해결촉구모임 제공>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동국제강이 산업재해 사망사고 88일 만에 유족에 고개를 숙였다. 50여 일간 천막농성 끝에 받아낸 회사의 사과에 유족들은 허망한 눈물을 흘렸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이하 해결촉구모임)’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돌아가신지 88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사측과 유족이 여러 차례 협상 끝에 합의하고 조인식을 했다”라고 밝혔다.

합의에 따라 원청인 동국제강은 장세욱, 김연극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공식 홈페이지에 7일간 게시하게 됐다. 사과문에는 사고에 대한 사측의 잘못과 책임의 주체를 적시하기로 했다. 애초 유족은 두 대표이사의 대면 공개 사과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 측은 중대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자체 사고조사보고서와 ▲ILS 시스템 설치 및 운용 개요가 추가된 재발 방지 대책안을 제공키로 했다. ILS 시스템은 전기로 작동되는 기계설비의 보수 작업 시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다.

또한, 동국제강은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 외에 민사배상금,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유족도 민사배상과 관련해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이번 사고와 관련해 회사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별도로 협의하기로 했다. 합의서 체결 이후에는 양 측이 신의성실 원칙에 따르기로 했다. 

 

▲동국제강이 지난 16일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진=동국제강 홈페이지 캡처>

이번 합의문은 8차례 결렬 끝에 도출됐다.

지원모임은 “협상은 회사의 입장이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돼, 일정하게 합의된 내용도 다음 협의 자리에서는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번복돼 난항을 겪었다”면서 “6월 14일 협상에서 회사는 형사상 이의 부제기 조항과 합의 체결 이후 본 사고와 관련해 회사를 비난하는 의견 표명, 집회 등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들고 나와 협상과 정회를 수회 반복하며 9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산재사망을 대하는 자본의 입장이 얼마나 완고한지 새삼 확인한다”면서 “하지만 유족들은 협의 과정에서 세운 원칙과 기준을 관철했다. 형사상 이의 부제기나 합의 이후 회사 비판 제한과 같은 족쇄 조항을 배제했다. 아쉬운 점은 대면 사과와 징벌적 손해배상의 배상 기준을 양보한 점”이라고 밝혔다.

유족 대리인을 맡은 권영국 변호사는 “여러 난관과 어려움 끝에 오늘 드디어 동국제강과 합의를 하고 조인식을 하게 됐다”면서 “지금까지 고인의 목숨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유족들에게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앞서 3월 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근무하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고 이동우 씨는 천장크레인 보수작업 중 추락 방지용 안전띠가 몸에 감기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그러나, 당시 동국제강은 사과는커녕 유족에게 보험금 지급을 대가로 사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유족들은 포항에서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상경해 회사의 공식 사과 등을 촉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날, 고인의 아내 김금희 씨는 조인식에서 이찬희 상무(동국제강 동반협력실장)가 합의가 늦어진 점에 대해 사과하자 “3월 21일이라는 말만 나오면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난다. 지금 이 자리도 남편에게 너무 미안합니다”라면서도 울먹거렸다. 또한 합의문을 보며 “이 종이가 우리 남편을 대신하는 것이냐”라며 오열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모친인 황월순 씨 역시 “좀 일찍 해결됐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라면서 “이렇게 날짜가 지나도록 모른 척하다가…지금 우리 아이는 태동을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국제강이 공식 사과하면서 포항 성모병원에 안치된 고인의 장례도 비로소 지낼 수 있게 됐다. 전날 영결식을 치른 해결촉구모임은 17일 포항에서 장례식을 진행한 뒤 18일 발인 예정이다.

 

 <동국제강과 고(故) 이동우 님 유족 간 합의문 주요 내용 전문>

 


1. 동국제강과 창우이엠씨(하청업체)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고인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아 유족에게 사과하되, 동국제강은 각자 대표이사인 장세욱과 김연극 대표이사 공동명의로 동국제강 홈페이지 1면에 1주일 동안 합의된 사과문을 게시한다.

2. 회사는 본 사고와 같은 중대산업재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유족에게 본 사고에 대한 자체 사고조사보고서와 ILS시스템 설치 및 운영 개요가 추가되는 재발방지대책안을 제공한다.

3. 본 사고와 관련해 회사(동국제강과 창우이엠씨)는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제외하고,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한다. 민사배상과 관련하여서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

4. 다만, 본 사고와 관련하여 회사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어 형사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협의한다.

5. 본 합의서 체결 이후에는 쌍방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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