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철원 논설위원 |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늘 머뭇거리며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인용해 썼다. 본래 그러한 것들을 향해 입을 벌려 말을 할 필요는 전혀 없을 터인데 나는 일삼아 주절거렸다. 나름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이 지나니 색이 바래고 낡아서 모두 쓸모가 없게 변했다. 그래서 세상의 올바름을 말할 때 세상이 올바르지 못함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깨끗함이 아까워 가슴 아팠다. 아마도 내 비틀거림은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러므로 나는 말할 수 있는 것들, 말하여질 수 있는 것들의 한계 안에서만 겨우 쓰려고 한다.
이태원참사 49재 봉행에 유족들이 오열하는 TV 화면을 보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졸지에 떠난 자식이 '보고 싶다'는 감정은 단순하기에 저토록 처절한 것이다. 그 감정은 정서라기보다는 생명현상에 속한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유족들의 눈물은 그리움의 통곡이다. 그리고 이 울음은 잃어버린 슬픔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다. 이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그런 물음에서 이태원 참사 그날을 기억해 보았다.
누가, 젊은이들에게 이태원에 가라고 등 떠밀거나 부추기지 않았다. 젊은이들끼리 자발적으로 할로원 축제를 즐기려고 갔다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대통령은 즉각 7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7번씩이나 분항소에서 넋을 위로하며 조문했다. 조계사 행사에 참석하여 진상규명과 사과도 했다. 이만하면 대통령은 직무수행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물론 자식을 잃은 유족의 아픔이야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하랴만, 어떻게 사과를 해야 진심 어린 사과인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계사 사과는 억지춘양으로 한 것인가. 내 귀에는 말같이 들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발생된 대형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101명사망)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228명) 삼풍백화점 붕괴사고(502명)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대형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지만 이렇게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어 정쟁화되지는 않았다. 슬픔에 젖은 유가족들은 차분히 사고처리 과정을 지켜보며 결과를 기다렸고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경찰 수사로 재판을 받아 모두 법적 책임을 지며 처벌을 받으며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는 우리 사회 담론을 기어이 두동강으로 갈라치며 국론을 끝없는 블랙홀로 끌어드리려 한다. 시민단체와 진보세력은 각종 현안으로 갈 길이 바쁜 윤석렬 정권의 발목을 잡으며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 무슨 건 수를 잡은 듯 유족들을 부추기고 유족들은 이에 편승하여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다. 야당도 신이 난 듯 국정조사와 수사도 시작하기 전 행안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며 상처에 연일 휘발유를 뿌리고 있다.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박근혜 정권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며 정권을 잡는데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며 정치적 재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보수 우파도 소신있게 이 사건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비겁하게 숨을 죽여 기회를 노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쥐 죽은 듯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무슨 소리만 하면 좌파세력이 뭉쳐 벌집 쑤신 듯 달려들어 물어뜯는 게 겁이 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정쟁이 발생할 때마다 우파는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이며, 우파는 이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 당해야만 하는가. 이런 답답한 질문에 보수 진영에서 아무도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다. 내가 생각건대 이태원 참사는 누구의 잘못을 구분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비극일 뿐이다. 사고의 책임은 늘 그랬듯이 수사 과정에서 큰 잘못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직무 태만으로 규정하며 죄를 단재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TV 화면에 비친 유족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나도 인간이므로 고통받는 유족들과 함께 진정어린 고통을 나누고 싶다. 고통을 내 마음에 새겨두고 싶고, 그 고통의 근원을 사유하고 싶다. 참사는 왜 일어나 이 지경이 되었으며, 우리는 왜 이 문제로 분열하며 다투어야만 하는가 라는 난감한 질문에 대해, 유족들이 고통받는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만으로 대답이 될 수 없다.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부모의 표정에서 그냥 할 말을 잇지 못하기에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누구의 잘못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 총체적 비극의 상황 속에서 마냥 쳐다보기만 하는 것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가. 이 안타까움을 진실로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이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영원히 대답을 못 할 것이다. 나는 모든 진상은 밝혀져 규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책임 한계에 있는 사람은 정치적이든 법적이든 분명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 아픈 문제를 숙주로 삼아 정치적 이익을 보려고 주판을 두드리는 세력, 또 이 국가적 불행에 몸을 사리며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세력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떠드는 것 이것은 다 기만이며 위선이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