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관제
강인한
밤의 장미꽃에서
화약 냄새가 난다.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내 일곱 살의 하늘
비행기 소리, 무서운 맷돌 소리
밤
장미꽃
꽃이파리 떨어져 어둠 속에
새빨간 호루라기 소리 한 가닥
똬리 튼 뱀처럼 눈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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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일을 마친 아버지는 장대에 열 마리 정도 닭을 매달고 집에 오셨어요. 닭들이 총소리에 놀라 죽었다며, 양계장 주인은 닭들을 매몰하기도 힘든 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고 해요. 어머니는 “축사의 닭을 다 잃은 그 마음 오죽할까?” 사태를 안타까워했어요. 이어 어머니는 솥에 물을 끓이고 저는 샘가 저만치 거리를 둔 채 아버지의 움직임을 보았지요. 닭 잡는 모습을 제게 보이지 않으려던 아버지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었거든요.
닭을 네 마리째 잡고 있을 때였어요. 장대에 묶여 있던 닭이 깨어나 홰를 취며 파닥대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놀라 움직임을 멈췄어요. 한 마리가 깨어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뒤이어 다른 닭들도 깨어났지요. 깨어난 닭을 더는 잡을 수 없어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지 아니면 모르는 척해도 될지 갈등하던 두 분의 표정이 읽혔지요. 그때는 닭 한 마리도 귀한 시절이었으니까요.
이른 아침 아버지는 닭을 장대에 매고 외출에서 돌아왔어요. 놀란 닭은 산란을 못 하니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며, 어머니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지요. 부모님은 양계장 소문을 듣지 못해 닭을 얻지 못한 옆집에 몇 마리 나눠 준 뒤 다시 물을 끓이기 시작했어요. 그날 오후 아버지는 양계장 주인께 인사로 담배와 소주를 건네고 와 삶은 닭을 안주 삼아 술을 드셨지요. 두 분의 표정이 밝지 않아 어린 저는 눈치를 살피며 먹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그날 이후 양계장 주인과 아버지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답니다. 마을 사람 중 닭이 깨어났다고 닭을 가져다준 사람과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사람은 유일하게 아버지뿐이라며, 이를 계기로 그분은 아버지를 형처럼 가까이했지요. 축사 일을 마치고 이른 아침 우리 집에 올 때면 시중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큰 왕란을 가져와 조심스럽게 제 손에 쥐여주던. 또한 수시로 파란을 가져다준 덕에 저는 중학교까지 도시락에 계란 반찬을 싸갈 수 있었지요.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내 일곱 살의 하늘/ 비행기 소리, 무서운 맷돌 소리’ 화자의 기억은 일곱 살이군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저 역시 시간은 다르지만, 화자와 유사한 하늘을 만난 것 같아요.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자, 피난민처럼 가방에 옷과 귀중품을 챙기던 부모님. 그리고 불을 끈 채 야산으로 숨어야 하나, 밖을 살피던. 그런 날이면 저는 뱀에게 물릴까 걱정하며 어머니 옆에서 밤새 졸던 기억 생생해요. 오월이 다 가도록 그 가방을 풀지 못하던 기억. 송홧가루 날리고 녹음 짙어가던 오월이었지요. 그해 오월 애기똥풀은 제 꽃을 무사히 다 피우고 졌을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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